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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못 할 첫 동대문 새벽시장

06. 첫 사입

by 정화온 Feb 20. 2025

지금도 그때의 동대문 시장을 생각하면 그날의 기온, 공기, 소리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11시경부터 동대문 시장에서 사입을 할 수 있다고 하여 철저한 준비를 마친뒤 동대문에 사입을 나선 저는 처음부터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도매를 하는 ak몰과 소매를 하는 ak몰을 구별하지 못해서 소매상인 분들에게 옷을 깔별로 달라고 한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일이기도 한데 그때엔 그런 부끄럼 조차도 설레였을 정도 였습니다. 다행히 잘 못 들어간 옷가게 사장님이 도매 시장을 알려주셨고 제대로 옷을 사입할 수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영하 4도의 추운 날씨. 꾸미고 가면 초짜고 츄리닝에 편하게 입고오면 경력자라는 조언에 따라 후드티 한장, 패딩에 옷을 넣을 가방 하나를 입고 건널목에 섰습니다. 이 곳이 한국인지 동남아 시장인지 수많은 짐들과 사람들 추위를 전혀 못느낀다는 듯이 반팔에 패딩조끼를 입은 사입삼촌들,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가 섞여 들리는 기묘한 풍경에 넋을 놓았습니다. 이 곳에 내가 발을 들였다는 사실 만으로도 마음이 벅찼고 책에서나 보던 곳을 실제로 보니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었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장으로 들어가 사장님들께 옷을 달라고 해야 할 차례가 됐습니다. 우선 위치와 길을 파악하고자 한바퀴를 전체적으로 돌고 마음에 드는 옷은 얼마냐, 깔은 몇개냐 하며 미리 공부해둔 용어를 쓰며 물어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전 이곳에 압도되어 점점 길을 잃기 시작합니다. 기가 쎄고 바빠보이는 사장님들 틈 사이로 물어보지도 못하고 쩔쩔 매기 시작했죠. '아 큰일났다.무서워' 덜컥 겁이 났습니다. 11시부터 돌아본 새벽 시장은 새벽2시가 되도록 단 1벌의 옷도 떼지 못하고 심지어 단 한명의 사장님한테도 말을 걸 수가 없었죠. 눈만 마주쳐도 피할만큼 압도 되고 겁에 질려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포기하고 집에 갈까?'

집에 돌아갈 방법은 없습니다. 지하철도 차편도 없는 시간에 도망갈 곳 조차 없었습니다. 길에 잠깐 걸터 앉아 우선은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으로 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24시 카페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너무 무섭다. 말을 못걸 것 같은데 어쩌면 좋지.'

낯선 도시에 쉴 곳 하나 없고 설레임에 꽉 차던 것도 잠시 오히려 두려움에 압도된 저는 이곳에서 쉬다가 첫차를 타고 강릉으로 내려간 다음에 다시 준비해서 올라올까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누군가 저에게 말하듯이 한 문장이 스쳤습니다. '무서운걸 이미 알아버려서 내려가면 다신 안 올라올 것 같아. 무조건 오늘 옷을 가져가야해.' 이 두려움을 가지고 내려가면 더 큰 두려움에 쌓여 절대 다시 못올 걸 전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원래 가져오려던 옷이 있던 곳의 위치를 다시 파악하고 동대문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왠걸 이게 무슨 일일까요. 새벽 3시가 다 되는 시간 사장님들이 식사를 하고, 사람들이 많이 빠져 생각보다 한가한 느낌이고 사장님들도 온화해 보이는 겁니다. 나중에서야 알게된 사실로 유명하고 큰 쇼핑몰들이 옷을 가져가고 바쁜 시간대에 제가 갔기에 말을 걸 수 없었던 거였습니다. 저 같은 초보 사입자는 오히려 늦은 시간에 가야 사장님과 이야기하며 옷을 가져올 수 있었던 걸 몰랐던 거죠. 그렇기에 저는 사장님들께 보고온 옷을 보여드리고 옷을 하나 둘 씩 떼어 왔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장님은 이 옷도 있는데 이건 어떠냐고 추천도 해주시고 저는 그것도 달라고 하며 가방과 양손 가득 옷을 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와 됐다!'


현금만 가능한 동대문의 사입방식과 가득 쌓인 장끼까지 심지어 나올 때는 능숙해져서 계획에 없던 가방까지 사입했습니다. 스스로가 너무 대견하고 뿌듯하고 꿈을 이룬 것만 같은 황홀함까지 느껴졌었습니다. 손은 옷 봉투로 인해서 빨개지고 팔뚝은 모두 긁혀있었지만 전혀 아픔이 느껴지지 않을만큼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새벽5시쯤 첫 지하철이 뜨기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 다시 24시간 카페에 잔뜩 사입한 옷들을 내려놓고 쉬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패딩을 벗으니 회색깔의 후드티가 땀에 젖어 짙은 회색으로 전부 젖을정도였습니다. 그만큼 뜨겁고 열정적이던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해가 뜨고 두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한 벅찬 마음에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도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할만큼 인생에서 꿈을 꾸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다는걸 처음으로 깨달은 날이었습니다. 


사입해온 옷은 바지 2개, 맨투맨 3종류, 가방, 아우터 1개 각각 색깔과 바지는 사이즈 3종류까지 60만원치 사입을 하고 두손 가득 무거운 봉지를 이끌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에오자마자 기절했지만 그 누구보다 행복에 가득차 잠에 들 수 있었던 순간, 그 순간을 이토록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사진출처 - pinterest

꿈 꾼 것을 이루기 위해 혼자 겁도 없이 동대문 새벽시장을 간 용기와 포기하지 않고 두려움을 이겨낸 첫 동대문의 새벽시장은 이후에도 무엇이든 이겨내고 해낼 수 있다는 경험의 근거가 됐습니다. 어쨌든 이제 남은건 옷을 판매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200만원의 퇴직금에서 대략 60만원의 사입, 30만원 정도의 경비와 세금신고, 옷걸이, 배경천 구입 등 이제 남은 돈은 대략 110만원. 이 돈은 옷이 팔릴 때 까지 생활비였고, 나중에 추가로 사입을 할 때 쓸 비용으로 남겨뒀습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도 열렸고, 이제 쇼핑몰이 오픈했습니다!


"모름(Moreum) : 우리의 인생은 아무도 모르기에 옷 또한 그렇습니다. 모름(Moreum) 그런 알 수 없음에 방향을 제시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선 여전히 옷을 입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hwa_onnn/

블로그에서도 글을 씁니다 : https://blog.naver.com/hwaon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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