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대차게 날려버린 나의 퇴직금
쇼핑몰은 한 달 만에 대차게 말아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나는 친구며, 인스타그램이며 블로그 까지 쇼핑몰 한다고 잘 부탁한다며 떠벌리고 다녔는데 한 달 만에 망해버리니 부끄러울 만도 한데 이상하게도 당시엔 오히려 경험을 얻은 사실 자체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옷이 어디서 나오고, 어떻게 쇼핑몰로 판매가 되는지를 직접 내 눈과 내 돈으로 경험을 했으니 마치 옷에 대해 원리를 깨우치는 듯한 느낌이었죠. 바로 폐업신고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수익이 나지 않으니 세금이나 이런 부분에서 추가적으로 나가는 금액은 없을 것이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도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쇼핑몰을 망했다고 해도 여전히 옷을 좋아하는 제 삶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기 전에 일찍 일어나 집 옥상에서 사진을 찍고 퇴근하고 편집하고 인스타그램, 블로그에 올리는 일은 습관처럼 계속 됐습니다.
좀 더 배경을 바꿔보고자 사람들이 없는 골목을 찾아도 보고, 카드 할부를 이용해 옷을 구매 하고 계속해서 올리다보니 협찬이 쏟아졌습니다. 가방, 모자, 안경, 팔찌, 목걸이, 바지, 맨투맨, 반팔티 등 어떤 날은 하루종일 데일리룩을 찍어야 할 만큼 차고 넘쳤습니다.
'옷이 꽁자로 생긴다는게 이런거구나'
지금으로 치면 인플루언서의 삶과 같겠죠. 팔로워는 겨우 1천명 정도였지만 오히려 협찬은 끊이질 않았고 그렇다 보니 옷을 구매하기 보단 잘 안입는 옷을 친구들에게 싸게 판다거나, 동생에게 나눠줄 수 있을 정도 였습니다.
당시에 일하던 곳은 프렌차이즈 카페였고, 출근하면 유니폼을 입었어야 할텐데 어쩜 그렇게 옷을 차려입고 데일리룩을 찍고 출근을 했는지 다시 생각해도 그때 옷에 대한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낌니다.
'아 나 옷을 평생 해야겠다.'
동대문에서 사입을 하는 경험과 쇼핑몰 창업을 해보는 경험까지 이 모든게 옷을 좋아했기에 할 수 있는 경험들이었습니다. '옷'하나만 바라보고 살면 내 인생이 이토록 경험치가 늘고 삶이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지는구나 싶었죠. 실제로 당시에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스스로 멋진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나를 소개할 때 블로그나 인스타를 보여주면 누구나 '유니폼을 입을 때와는 다른 사람이네요..?' 할 정도였으니까요.
지금 앞자리가 바뀐 후에도 여전히 옷을 보면 가슴이 뛰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할 수는 없는법. 옷에는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옷은 재화, 즉 돈으로만 대체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