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육아 / 민들레 편집실 / 2017
'대담한 대담'을 함께 하는 임신 동지 하얀 님과 교환 독서로 읽은 책! 공동육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공동육아를 해야 하는 이유부터 실제 경험담, 장점과 단점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궂은 날 아이와 갈 수 있는 곳이라곤 마트와 키즈카페밖에 없다. (14)
그런 엄마들에게 "낳았으면 키워야지, 그럴 거면 왜 낳았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엄마들이라고 알았겠는가? 육아가 이렇게 힘들고,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돌아올 줄을. 공부하고 일하느라 직간접 체험이 없으니 닥치기 전에 알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16)
이 두 책은 내게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졌다. 매일같이 일터로 나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게 아니라, 몇 시간의 자발적 노동으로 삶을 꾸려나가고 남는 시간에는 하고 싶은 일을 즐길 수 있다니!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삶이었다. (...)
적게 쓰고 살자. 돈 주고 애들 키우지 말고. 그냥 내가 키우자. (27)
하지만 한 엄마가 한 명의 아이를 보는 것에서 열 명의 엄마가 열 명의 아이를 보는 것으로 확장되면 아무래도 여유가 생긴다. 한두 명은 장을 보러 갈 수도 있고, 한두 명은 쉴 수도 있다. 또 아이들은 내 엄마가 아닌 친구의 엄마까지 많은 엄마를 겪게 되고, 엄마들은 내 아이가 아닌 여러 아이를 겪게 된다. (39)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느끼는 감정의 종류와 크기가 다를 텐데, 세상은 초보 엄마들의 고민을 뭉뚱그려 '산후우울증'이라고 명명할 뿐이다. (56)
놀이터에는 어른이 없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규칙과 질서를 가지고 그 과정에서 모든 가능성에 도전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안전을 이유로 놀이, 즉 도전을 방해합니다. 어떤 놀이가 위험한지는 아이들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79)
'질서란 충분히 논 아이들 마음에 평화가 깃들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이구나!' 외부의 강요나 규칙이 만든 질서는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러나 충분히 논 후 마음에 찾아 온 평화, 즉 '내면의 힘으로 만들어진 질서'는 외부 힘에 흔들리지 않는다. (81)
- 정말 그런가요..?
이처럼 우리 사회는 삶이라는 드넓은 놀이터와 일상생활이라는 무한한 놀이를 아이들에게서 빼앗아버리고, 그 미안함을 보상하기 위해 값비싼 놀이기구로 채운 놀이터를 선물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먼 여행에서 돌아온 부모가 '자신의 미안함'을 달래기 위해 자녀 가슴에 사랑이 아니라 선물을 안기듯 말이다. 사실 이 선물의 효용가치는 자녀가 아니라 부모에게 있다. (...)
왜냐하면 지금도 아이들은 자동차가 점령해버린 골목에서, 야생성이 살아 있는 동네 뒷산을 대신해 컴퓨터 게임 속에서, 부모가 일하러 나간 빈집과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지금의 일상에 가득 차 있는 것들을 보고 느끼며 적응한다. 다시 말해 논다. 과연 그곳은 무엇으로 가득 차 있을까? 경쟁과 소비와 고립. (82)
하지만 일상을 살다 보면 다 된 밥과 반찬을 식탁 위로 가져다줄 누군가가, 식탁 위에 수북이 쌓인 책과 서류더미를 옮겨줄 누군가가,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줄 누군가가 간절할 때가 있지 않은가. 저도 모르게 식구들에게 쌓이는 불만은 어쩌면 이런 사소하고 하찮은 도움과 배려를 자발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난이도 높은 집안일까진 못하더라도 쉽고 간단한 일을 내 일로 여기고 해보게 하는 생활교육은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키우고 생활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가는 일과도 맞물려 있다. (105)
'장난감 없이 살기'가 꽤 괜찮은 결핍육아의 방법임을 확인한 후 주입식 교육의 시간도 없애고 최소한의 소비를 지향하면서 '사교육 없이', '외식 없이', '과자 없이', 'TV 없이', '스마트폰 없이', '엄마 없이' 등 간헐적으로 다양한 '없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며 지내고 있다. 몸이 조금 고생스럽고 남들 다 하는데 내 아이만 안 해도 되나 하는 불안에서 과감히 벗어나, 자본이 만들어낸 육아시작 대신 스스로 선택한 '결핍육아'는 아이들에게 자율성과 의지를, 부모에겐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136)
산책은 힘을 기르는 시간이었다. (139)
아이들에게는 놀이와 이야기가 밥이라는데 (144)
우유를 쏟은 아이에게 누구도 잘못을 따지지 않고 걸레를 들고 와 같이 닦아주는 상황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육아가 참 행복하게 느껴졌다. (...)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지니, 나와 아이의 내면에 더욱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행동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좋은 이웃들 곁에서 윤호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185)
내 마음을 소중히 여겨주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들 곁에서 나 자신이 변화됨을 느꼈다. 그래서 나 또한 주변 사람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유학 생활을 통해 나는 이런 것들을 직접 체험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이 과정은 윤호를 잘 키우는 일과도 연결된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에게도 행복한 마음 상태가 전달되기에, 내가 행복하고 편안해지는 것이 윤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193)
개개인들이 각자의 삶의 목적을 밝혀가고, 그런 개인이 모인 사회에서 윤호뿐만 아니라 더 많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면 좋겠다. 자신의 본성을 억누르거나 왜곡하지 않고, 아낌없는 애정과 진심을 충분히 경험하며 자유롭게 피어났으면 한다. (194)
우리 집은 아직 아이들이 어리지만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아이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는 편이다. 이제 19개월이 된 셋째는 식판에 밥이랑 반찬을 놓아주면 혼자 숟가락질을 해서 다 먹는다. 혼자서 할 수 있게 하는 과정에서 '과연 이것도 할 수 있을까' 싶을 때도 있지만, 그중 열에 아홉은 용케도 스스로 해낸다. (...) 오히려 엄마의 돌봄이 아이들의 능력을 떨어뜨리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할 수 없을 때는 도와주는 게 맞지만, 아이들이 미처 시도해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는 할 수 없으니 엄마가 도와줄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259)
교환독서를 하며 주고 받았던 메모도 올려봅니다. 이런 동지가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