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 영어 교사에서 호주 러쉬 직원으로
유담과는 재밌는 계기로 만났다. 대학생 때 교내 익명 커뮤니티에서 기숙사 룸메이트를 찾은 적이 있다. 당시 어떤 사람이 내건 룸메의 조건이 ‘변기 문 닫고 물 내리는 사람’이었는데, 난 원래도 항상 변기 문을 닫는 데다 이런 걸 얘기하는 사람이라면 왠지 깔끔하고 예의 바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린 룸메이트가 됐고 한창 예민한 시기인 4학년 때도 갈등 한번 없이 잘 지냈다.
부모님의 강요로 교대에 온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본 유담은 임용고시 내내 성실했다. 서울 임용에 합격하고 발령 대기 기간 동안 기간제 교사를 하며 재테크 공부도 열심히 했다. 유담의 자취방에 놀러 갔던 날, 같이 바닥에 누워 유수진의 <부자언니 부자특강>을 읽고 브런치 카페로 가 부장교사가 되겠다는 야망을 나눴던 기억이 난다.
1년 뒤, 그녀는 갑자기 의원 면직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몇 달간 직업 상담을 받은 결과 회계사 준비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면서. 평소 직장생활에 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은 적이 없던 친구라 적잖이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단호한 결단력이 존경스러웠다. 평소 성격이라면 회계사 시험도 얼마든지 잘 해낼 거라 믿으며 마음속으로 응원하던 중 우연히 그의 집 근처에 들를 일이 생겼다. 저녁이나 먹자는 연락에 그는 또다시 새로운 얘기를 꺼냈는데 바로 다음 주에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간다는 거였다. 불과 몇 주전 만났을 땐 시험 준비를 하던 사람이 갑자기 워홀을? 호주로? 용기와 실행력이 대단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로 했을 때 유담은 먼저 인터뷰 의사를 밝혔다. 할 얘기가 많다고 했다. 인터뷰하며 나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는데 의원 면직도, 워킹 홀리데이도 사실은 그가 아주 오래 고민한 끝에 내린 신중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결정은 하나도 없었다. 덤덤해 보였지만 유담은 교대를 다니고 교사로 일하며 혼자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있었다. 용기와 대담함으로 보였던 그의 결정과 실행은 사실 셀프 구제에 가까웠다.
온 집안 식구들의 강요로 교대를 갔던 고등학생 때의 얘기부터 발령 6개월 만에 의원 면직을 결심한 계기,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통해 얻은 것과 여전히 고민되는 지점까지 그의 솔직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조유담
졸업 후 2년 간 기간제 교사로 근무
송파구 A학교 발령 6개월 만에 의원면직
전문직 시험 준비 중 워홀 결심
현재 호주 룰루레몬, 러쉬, 통신사 등에서 일하며 워킹홀리데이 중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년 6개월간 초등 교사로 일하다 의원면직하고 지금은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온 조유담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유담 씨의 인생 얘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고등학교 땐 어떤 학생이었나요?
자신감이 있다가도 스스로를 의심하는 학생이었어요. 성적이 잘 나오면 이건 내 점수가 아니야, 조만간 탄로가 날 거야 이런 생각을 하다가 성적이 떨어지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거든요.
고등학생 때 신문방송학과에 가고 싶었는데요. 아무리 주변에서 ‘취업 어렵다, 여자가 살아남기 어렵다’ 얘기를 해도 나는 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어요. 근데 누가 “너 신방과가 왜 가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그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맞나 의문을 갖기도 했죠.
교대는 어떻게 가게 됐나요?
주변인의 강요가 매우 셌죠. 엄마의 강요 이런 수준이 아니라 외할머니, 친척들, 담임 선생님까지 교대 가라는 압박을 줬어요. 처음엔 일대다로 2년 정도 투쟁을 벌였는데 고3이 되니까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가족들까지 그러니까 완전히 멘탈이 나가버렸어요. 자포자기했죠. 수시 여섯 학교, 정시 세 학교 중에 제 손으로 지원서를 넣은 건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그럼 어머니께서 전부 교대에 지원서를 넣으셨던 건가요?
네. 진학사 홈페이지 아이디랑 비밀번호가 명의만 저로 되어있지 사실 제 것이 아니었어요. 엄마께서 직접 자소서 써서 내시고 면접 전날 자료를 정리해서 외우라고 주셨어요. 수시 때 제가 엄마께 여쭤봤어요. “나 그래서 어느 학교 썼나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걸 내 입으로 남에게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긴 해요.
정시 때는 나군에 있는 서울교대가 안정 합격권으로 나왔어요. 게다가 더 안정권인 교원대를 가군에 썼으니까, 다군만이라도 홍익대학교 사회과학부를 쓰고 싶었어요. 가나군에 엄마 쓰고 싶은 곳 썼고 합격권인 게 확실하니까요. 다군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걸 쓰게 해달라 했는데도 결국 제 의지대로 못 했죠. 그렇게 다군에도 교대를 썼어요.
아마 서울교대 정시 안정권이었으면 인서울 신문방송학과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었을 텐데요. 어머니께서는 왜 그러셨던 걸까요?
엄마가 걱정을 많이 하는 성격이세요. 당시 20대 취업난, 여자들이 회사에서 받는 부당함 등에 대한 뉴스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시기였어요. 친척들도 비슷한 얘기를 계속하셨고요. 그러니까 무조건 제가 교사가 되게끔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럼 오빠한테도 비슷한 강요를 하셨나요?
오빠한테는 이렇게까지 안 하셨어요. 의대를 가라 그랬는데 오빠가 완강하게 공대를 지망하니까 거기서 끝났어요. 여자로서의 회사 생활을 특히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딸이 쉽고 안정된 길을 가길 바라셨겠죠.
친척들도 유담 씨 입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셨는데, 특히 외할머니께서 유담씨가 교대 간 걸 자랑스러워하신다고 들었어요.
외할머니께서 반찬 보내주시면서 택배 주소란에 서울교대 기숙사를 적다가 우셨다고 들었어요. 할머니께서는 손자 손녀들의 입시, 진로가 인생의 원동력인 분이시죠. 제가 교대를 나왔고 교사를 하고 있다는 게 할머니께는 큰 자랑이에요.
제가 교사를 그만둔 지 1년 반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할머니께서는 모르세요. 호주에 와 있는 것도 교육청에서 보내준 특별 연수인 줄 아시죠. 할머니께서 제 사정을 들으시면 정말 진심으로 충격받으셔서 건강에 무리가 올까 봐 가족끼리 숨기기로 입을 맞췄어요.
가족의 기대가 큰 만큼 유담 씨는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어요. 원해서 온 대학이 아닌 만큼 교대 다니는 게 힘들었을 텐데요. 2학년 마치고 휴학한 건 어떤 이유였나요?
대학교 때 규칙적으로 우울감을 느꼈어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잠도 못 자고 울기만 했죠. 가족들이 교대를 강요한 게 저한테 타격이 컸어요. 저는 지지해주는 가족에 대한 희망, 욕구가 있었는데 그게 충족이 안되고 오히려 가족들과 거의 적이 된 상황이었으니까요. 휴학하고싶다고 했을 때도 계속 반대를 하셨어요. 차라리 교환학생을 가라고 하시는데 저는 당분간 쉬고 싶었어서 되게 자주 싸웠죠.
어느 날은 우울감이 너무 세게 와서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가족이 원인이었는데도 막상 너무 힘드니까 엄마를 찾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엄마께 전화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냅다 울었어요. 엄마는 저더러 당장 버스 타고 순천(본가)으로 내려오라고 하셨죠. 그때 저를 보시는데 딱 봐도 애가 심상치 않았나 봐요. 그제야 휴학을 허락해 주셨어요.
그리고 돌아와서 임용고시 준비를 한 이유는 뭐였나요?
계속 다른 길을 알아보긴 했는데 부담감이 있었어요. 내가 다른 걸 준비한다는 걸 가족이 알게 되는 순간 고등학교 때와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할 거라는. 그래서 뭘 하려면 가족들 몰래 준비하다가 합격이 된 상태에서 통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그러려면 그 과정을 절대 들켜서는 안되고 준비 비용도 제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그런 게 크게 느껴졌어요.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가족들에게 의존하던 상황이니까요. 결국 임용고시 보고 교사 월급으로 돈을 모아서 새로운 길을 가야겠다고 결정했죠.
또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뭘 하고싶었다면 진작에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교대 나와서 다른 일은 못할 줄 알았어요.
*나도 비슷한 얘기를 상담 선생님과 한 적이 있다. “제가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면 진작에 하지 않았을까요?”라는 나의 질문에 선생님께서는 “아니죠. 싹이 터서 자랄 만큼의 여유가 없었던 거죠.” 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교대 나와서 다른 일은 못할 거란 생각에 임용고시를 쳤었다. 교대 나와서 다른 곳에 취업하는 사례가 적기도 하고, ‘교대 졸업은 고졸이랑 똑같다’라는 말도 있으니 유담과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교대에서 배운 걸 다른 분야에 적응할 수도 있고, 교대 나와서 다른 일 할 수 도 있다. 이게 바로 내가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과거의 나나 유담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교대 나와서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도 곁에서 유담 씨를 지켜봤을 때 임용고시 준비를 꽤 성실하게 하던데요. 교사가 되겠다는 의지가 없었는데도 어떻게 바로 서울 임용 합격까지 할 수 있었을까요?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었어요. 이걸 빨리 합격해야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컸죠. 그리고 당시에는 임용고시에 합격하는 게 저한텐 더 쉬운 선택지였어요. 이걸 그만두려면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보니까 그냥 분위기에 맞춰 다수를 따라서 공부했던 것 같아요. 원래 성실한 성격이기도 하고요.
이후 교직 생활은 어느 정도 하셨나요?
발령 대기 2년 동안 송파, 강남, 동작구 여러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했고요, 가락동 학교에 발령 나서 6개월 일하고 그만뒀어요.
기간제 교사하실 땐 만족도가 높으셨던 걸로 기억해요. 우리 같이 재테크 공부도 하고 교장∙교감 되겠다는 야망도 품었었잖아요. (웃음)
재테크 열심히 할 때니까 꼬박꼬박 돈 들어오는 게 좋았어요. 다른 알바보다 교사 시급이 높기도 했고요. 근데 월급 인상이 그렇게 적을 줄은 몰랐죠.
가르치면서 얻는 효능감이나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만족감 같은 건 없었나요?
생각 나는 게 전혀 없네요. (웃음)
정말요?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조금 높은 것 외에 유담 씨가 느끼는 교직의 장점은 없었던 건가요?
없었어요. 저도 이 직업의 장점을 어떻게든 찾아보고 싶었어요. 임용고시 합격도 했고, 그만둔다 그러면 주변에서 말리니까 교직에 정을 붙이고 싶었죠. 교사의 장점이 빠른 퇴근이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이걸 살려보자, 그럼 이 직업을 내가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다 싶어서 퇴근 후 취미 여러 가지를 해봤어요. 춤도 추러 다니고 조주기능사 자격증도 따고 이스라엘 무술도 배워봤어요. 근데 결국 한계가 있더라고요.
취미는 취미니까요.
네. 취미와 직업은 결국 별개더라고요. 취미가 삶인 사람은 다른 장점이 없어도 이 직업에 만족할 수 있겠지만 전 취미가 주는 행복이 인생에 결정적인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럼 직업 상담은 어쩌다 받게 된 건가요?
기간제 때 얘기부터 해야 하는데요. 앞에서 제가 대학생 때부터 규칙적인 우울감을 느꼈다고 했잖아요. 원래 그러려니 하고 말았는데 기간제 교사를 하던 시기에 한번은 길을 걷다가도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보통 우울할 땐 누가 볼까 밤에 혼자 울었는데 이 시기에는 컨트롤이 안 됐어요.
이건 문제가 크다 싶어서 심리 상담을 받았어요. 1년 정도 상담하면서 가족들에 대해서도 관점을 새롭게 정립할 수가 있었고, 제 상태도 아주 좋아졌어요. 그렇게 잘 지내다가 2023년 6월에 갑자기 그 증상이 다시 나타나는 거예요.
그때 생각이 확 들더라고요. ‘아, 내가 교사를 그만두지 않고서는 이게 나을 수가 없다.’ 이미 심리 상담을 받았는데도 안 된 거잖아요? 그럼 그만두는 것밖에 답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새벽에 울다가 냅다 노트북 켜서 인터넷에 직업 상담을 검색했어요.
그때 받았던 직업 상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와이즈위너라는 업체였어요. 3단계로 직업 상담을 진행했고요. 1단계는 MBTI테스트같이 간단하게 직업 검사를 하는데요, 학생 때 직업 검사하면 100개 넘는 직업을 다 추천해 주잖아요. 그거보다는 합리적이에요.
2단계에서는 숙제를 줘요. 엑셀 파일 두세 개 정도를 채우라고 하는데 그걸 채우는 과정에서 직업에 대한 조사를 엄청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2단계 하는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됐고요. 3단계에서는 줌으로 컨설턴트님과 화상 상담을 진행했어요.
*와이즈위너 성인 진로 디자인은 현재 운영하지 않고 있다.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마음담다 (인스타: @apple1004_insta)라는 곳이 있다. 성인 대상 직업 심리 검사와 해석 상담을 진행한다.
그 상담의 결과로 회계사를 선택했던 건가요?
네. 당시엔 확신이 있었는데 사실 제가 회계사를 선택했던 건 교직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던 게 커요. 서울에서 교사를 하면 금전적인 불만이 너무 세잖아요. 그게 직업 선택에 있어서 큰 임팩트를 미치더라고요. 무조건 돈 잘 버는 직업을 하고 싶으니까 다른 직업에 대한 생각이 흐려졌어요.
아까 말했듯이 교사하면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노력하는 만큼 뭔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일을 찾기도 했고요.
그리고 남들한테 인정 받으려고 회계사를 방패 삼았던 것도 있어요. 사람들한테 저 교사 그만두고 카페할 거예요, 하면 철없다 그러잖아요. 근데 회계사 한다 그러면 다들 용기 있다, 대단하다 그러니까요.
서울에서 교사하다 보면 유독 돈 잘 버는 직업으로 이직하고 싶더라고요. 돈 말고도 직업 선택에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데 말이에요. 유담 씨가 10월 1일 자로 의원 면직하고 부모님께는 나중에 편지로 알려드렸잖아요? 이런 용기와 대담함은 어디서 나왔나요?
용기와 대담함에서 나온 건 아니에요. 더 이상은 못한다, 위기감이 들어서 선택한 셀프 구제의 방법이죠. 이게 남들에게는 용기와 대담함으로 보이더라고요. 제 멘탈로 더는 못하는 게 확실해지니까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부모님께 나중에 통보한 이유도 반대하실 게 뻔해서였어요. 전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 아직도 충격이라 그때와 똑같은 일이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죠. 부모님이 반대하시면 난 무조건 무너질 텐데, 그럼 절대 못 그만두겠지 싶어서 일단 그만두고 편지를 보내는 방식을 선택했죠.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두 분 다 잠을 못 주무셨다고 들었어요. 이런 중요한 걸 상의도 없이 할 만큼 본인들이 딸에게 별것이 아닌가 하는 섭섭함을 느끼셨다고 해요. 그래서 저도 얘기를 했어요. 엄마아빠가 반대할 게 뻔하고 나는 고등학교 때의 기억이 아직도 커서 또 그러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근데 부모님이 제가 우울감을 겪고 상담받는 과정을 다 봐오셨거든요. 그게 되게 오래됐잖아요. 그걸 알고 계시니까 더 이상 말씀을 안 하시더라고요. 원래 아빠가 엄마의 선택을 따라가는 편이셨는데 이때는 먼저 얘기를 꺼내셨대요. 나는 이제는 딸을 지지해 주고 싶다고. 그래서 엄마도 마음 정리가 되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회계사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워킹 홀리데이를 가게 됐잖아요. 그 과정이 궁금했어요.
원래 대학생 때부터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었어요. 발령 대기 기간 동안에 기간제 교사도 안 하려고 했고요. 근데 그때 코로나가 터져서 해외를 못 갔죠.
시험 준비를 하면서 독서실에 계속 혼자 있잖아요. 조용한 곳에 있다 보니 머릿속 생각들이 시끄럽고 복잡한 게 느껴지더라고요. 워킹홀리데이가 계속 생각났어요. 처음엔 공부하기 싫어서 딴생각하는 건 줄 알고 외면했는데 어느 시점이 되니까 그 생각이 너무 셌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하고 싶은 걸 미루고 조건적으로 더 나은 걸 골라왔는데, 회계사 시험 준비를 하느라 워킹 홀리데이 갈 시기를 놓치는 건 결국 이전과 비슷한 선택인 것 같아서 다녀와야겠다고 결정을 내렸어요.
저한텐 갑작스러웠지만 본인은 오랫동안 고민했던 거군요. 워킹홀리데이 가고 나선 어떻게 지냈어요?
여기 와서 원했던 게 두 가지였어요. 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영어 많이 하자, 기업 가치가 높은 회사에서 일하며 새로운 환경을 경험해보자. 실제로 러쉬와 룰루레몬에서 일했고 만족스러웠어요. 룰루레몬에서 계약이 끝나면서 지금은 러쉬랑 삼성 갤럭시 프로모터 투잡을 하고 있고요.
가자마자 업무를 한 건데, 원래 영어를 잘 했나요?
어렸을 때 뉴질랜드에 조기 유학을 다녀왔어요. 주문이나 면접 같은 간단한 의사소통은 되는데 수다 떠는 게 아직 어려워요. 빠르게 티키타카 하는 건 안 되더라고요.
인스타그램에 룰루레몬을 떠나면서 ‘amazing opportunity to learn and grow’라고 쓴 걸 봤어요. 어떤 부분에서 크게 성장했나요?
여기 룰루레몬은 제가 한국에서 일했던 학교에 비해 일하는 분위기가 훨씬 더 친근하고 수평적이고 자유로워요. 제가 피드백 받는 걸 되게 못하거든요? ‘이 사람이 날 지적하네’ 이런 생각 때문에 열등감도 들고요. 근데 여기 사람들은 건강하게 피드백을 교환하더라고요.
어떻게요?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아요. “너 잘못됐어”라는 언급 자체를 배제하고 “아까 이런 상황에서 나라면 이렇게 했을 거야.”라며 대안을 확실하게 제시하죠. 따라 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니까 제가 뭐든 연습하고 체득할 환경이 되더라고요.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깨달은 게 있나요?
요즘은 생활비를 충당하려고 삼성 갤럭시 프로모터에서도 일하고 있어요. 갤럭시S24에 있는 AI 기술을 손님들에게 설명해 주는데 일도 쉽고 돈도 잘 줘요. 근데 재미가 없어요. 성취감이나 효능감도 느낄 수 없고요. 그래서 조건 보고 일하는 건 나랑 안 맞는다는 게 확실해졌어요.
또 룰루레몬, 러쉬, 통신사 동료들의 성향과 분위기가 다 다른데 제가 어느 환경에 들어가는지가 너무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더라도 내가 잘 맞는 사람들과 조직 분위기를 찾아다니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워킹 홀리데이의 가장 큰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영향을 쉽게 받는 사람이라서요. 한국에 있으면 한국의 사회적인 기준에 대해 저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또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록 그들의 기준에 맞춰 인정받고 싶고요. 전 어딘가 속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인간이기 때문에 이게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근데 냅다 호주에 와 버리니까 진짜 마음 놓고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잖아요. 한국의 기준들이 멀어져 있고 호주 사람들이 어떤 걸 선호하는지도 잘 모르니까요. 낯선 환경에서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나에 대해 탐색해 보는 게 워킹홀리데이의 장점이에요.
*교육학에서는 ‘장의존형’과 ‘장독립형’으로 학생들을 분류한다. 장의존형 학생들은 협동하길 좋아하고 주변 분위기에 민감하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사회적 민감도’라고 한다. 나 또한 주위 사람들의 인정, 내가 속한 집단의 기준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유담과 내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다니고 남들이 보기에 대담하다 느낄 정도로 뭔가를 실행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유담도 나도 오랜 기간 상담을 받았다. 꼭 상담이라는 도구가 아니어도, 사회적 민감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나 자신과 많이 대화하며 자아를 키워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워킹 홀리데이 하면서 어려운 점도 있나요?
비자랑 근속 제한 때문에 일하는 거에 제약이 걸려요. 회사에서는 오래 일할 사람을 찾으니까요. 그리고 러쉬랑 룰루레몬에서 일할 때는 근무 시간이 들쭉날쭉해서 매주 받는 급여가 달랐는데 이러니까 되게 불안하더라고요. 요즘엔 한국에 가서 얼른 일을 시작해야 하나, 호주에 있을 거면 학교에 들어가서 스튜던트 비자로 연장해야 하나 여러 고민을 하고 있어요.
한국이 그리울 때도 있나요?
네. 아무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까 한국에서만큼 사람들이랑 빨리, 깊게 친해지기가 어려워요.
언어가 다르니까 더 외롭겠네요. 그럼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은 어떻게 돼요? 한국에 올 예정인가요?
비자 때문에 잠시 가긴 할 것 같아요. 그 이후는 모르겠어요.
장기적인 목표는 제가 하고 싶은 직업을 찾아서 전문성을 쌓고 성장하는 거예요. 저는 그런 감각을 느낄 때 행복하거든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니까 잘 맞는 사람들이랑 좋은 회사에서 일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전보다 확실히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에요. 유담 씨는 뭘 해도 잘 살 거라는 믿음이 들어요. 교직이 안 맞는 교대생이나 선생님들께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교사를 그만뒀다고 해서 ‘모든 고민 끝! 너무 행복해!’이건 아니에요. 솔직히 지금은 돈을 계속 까먹는 상황이고, 친구들은 이미 2-3년 차 직장인으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어서 가끔 불안하긴 해요.
근데 어쨌든 이렇게 여러 경험을 하고 나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과정 자체가 되게 괜찮아요. 여기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니까 이렇게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이전에 심했던 불안이나 우울도 사라졌어요. 예전엔 마이너스(-)가 너무 커서 아무리 플러스(+)가 쌓여도 소용없는 상태였다면, 지금은 기본값이 0인 상태로 돌아온 것 같아요. 가끔 마이너스가 있긴 하지만 좋은 일 있으면 금방 플러스가 되는?
만약 ‘당장에 교사 안 하면 뭐 하지?’라는 걱정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도 그만두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다음 목적지가 없어도 그만둘 수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왜 꼭 환승연애 하는 거 아니잖아요. 지금 애인이랑 안 맞으면 헤어져야지, ‘다음 사람이 없는데 어떡하지?’ 이런 생각 안 하잖아요. 다음 정착지, 다음 직업을 모르겠어도 지금 직업이 나랑 너무 안 맞고 내가 정말 힘들면 그만둬도 돼요. 내가 지금 백수라고 앞으로 평생 굶어 죽는 것도 아니잖아요. 좀 더 방황해도 되고, 본인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