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해
박상영 작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의 젊은 작가 중 한명이다. 바야흐로 임용고시생이었던 2019년, 몸도 마음도 팍팍했던 나는 평소 즐겨읽던 처연하고 무거운 소설로부터 잠시 멀어지고 싶었다. 유쾌한 소설을 읽으며 책에서라도 웃고 싶었고 그때 마침 <대도시의 사랑법>이 나왔다. 문체에서부터 느껴지는 심상찮은 푼수미와 내 일기장을 보는 것 같은 솔직한 전개에 카페에서 눈물을 흘리며 폭소했다. 클럽에서 티아라의 '섹시러브'가 나온다거나 재희와 주인공이 누워 지난밤 함께한 남자를 평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배를 잡고 웃는 와중에 어떤 부분은 너무 찌질하고 처연하였으며 그게 또 깊이 공감돼 박수가 나왔다. 그의 글은 웃겼으나 우습지 않았고 유쾌했지만 가볍지 않았다. 소설 속 인물은 꾸준히 헛짓거리만 하는데 나는 괜히 그들에게 마음이 쓰였다.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오늘밤은 굶고 자야지>, <믿음에 대하여>까지 책이 나올 때마다 찾아 읽었다.
근래 나온 에세이집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을 읽게 된 계기는 좀 독특하다. 갑자기 휴직한 동료 선생님께서 본인의 책을 연구실에 놓고 홀연히 떠나셨다. 원하는 사람 가지라는 말과 함께... 다른 짐은 다 챙겨가신 걸 보면 아마 기부보단 유기에 가까웠던 것 같다. 선생님에 대한 걱정도 잠시, 책 좋아하는 나는 노다지를 캐는 광부처럼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과 <선생님의 마음공부>를 챙겨왔다.
당연히 재밌을 거라 기대하고 읽었는데 그것보다 훨씬 재밌었다. 아니, 재미를 떠나 대단했다. 여행 에세이지만 여행하며 함께한 사람에 관한 전기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역시나 박상영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본 적도 없는 그의 주변인에게 푹 빠지게 만들었다. 어떤 날씨에 어느 장소인지, 누군가와 함께하고 무슨 기분인지가 오감으로 느껴졌다. 그러면서 역시나 자주 웃기고 가끔 서글펐다. 글을 정말 잘 써서 꼭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마침 최근 힙합에 관련된 에세이를 연재하고 싶었는데 이 책이 큰 동기 부여가 되었다. '과거 회상을 이런 식으로 풀어내면 되겠구나', '내가 고민하는 지점을 이렇게 풀 수도 있구나' 영감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동시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박상영 작가의 글과 내 글을 비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만큼 잘 쓸 수 없으니 쓰기 싫은 마음까지 들었다. 용기가 생기려다가도 주눅이 들면서 묘하게 질투가 났다.
내가 질투를 해? 우리나라에서 지금 제일 잘 나가는 작가한테? 내가 뭔데?
마치 제니를 견제한다거나 빌게이츠를 시샘하는 것 같아 기가 막혔다.
그건 아마도 그의 소설 속 인물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감정기복, 앞뒤 재지 않고 솔직하게 내 얘기 다 꺼내는 푼수력, 자의식 과잉, 집착과 불안 같은.. 소설의 문체가 자전적이다보니(실제로는 취재를 거친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 한다) 인물=작가처럼 느껴지고, 나같은 사람도 멋진 작가가 될 수 있나 싶은 거겠지. 그래도 어이가 없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이젠 작가한테도 질투가 나고 열등감을 느낀다. 심지어 나는 빈지노 LP들으면서도 질투한다. 창작으로 이직한다고 벼르고 있는데 막상 반응이 없으니 꾸준히 하는 게 어렵다고, 이럴 거면 그냥 에듀윌 들어갈 걸 싶다고 했다(마지막 말은 습관처럼 굳어버린 나만의 추임새다).
그러자 친구가 자기 얘길 해줬다.
"나는 그래서 결과를 생각 안해. 대학원에서 몇 년 동안 논문 안 나올 때 그것보다 과정에 집중하려고 했어. 논문이 나오든 안 나오든 내가 매일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거더라고. 너도 반응과 상관없이 글을 쓰면서 너 스스로 얻는 게 있잖아. 그게 뭔지 생각해봐. 그리고 애초에 유명한 작가가 되는 건 진짜 어려운 거야."
맞는 말이다! 글을 '잘' 쓰고 작가가 되고 내 책이 팔리는 거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내가 글을 쓰며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내 글쓰기도, 내 글도 적어도 전보다는 나아졌다.
어떤 작가든 서툴고 부족한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걸 참고 꾸준히 썼기에 작가가 되었겠지. 박상영 작가 또한 <오늘밤은 굶고 자야지>보다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에서 더 완성도 있는 글을 보여줬다(개인의 판단입니다..). 안 그래도 잘 쓰는 사람이 거기서 더 성장한 것이다. 그러니 박상영 작가의 지금과 나의 지금을 비교하지말고, 차라리 그의 처음과 나의 지금을 비교하자. 나는 시작한지 얼마 안 됐으니까. 물론 비교 따윈 안 하는 게 가장 좋고.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의미를 찾으며 꾸준히 글쓰기"
오늘부터 글쓰기 슬로건으로 삼아야겠다.
나는 과연 3년간 이렇게 살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