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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기록

교권 침해를 보는 어느 교사의 시선 - 학부모는 왜

<계간 민들레-교사는 가르칠 수 있을까> 를 읽고 (2)

by 화랑

https://brunch.co.kr/@hwarang-company/74

윗 글에 이어서-!


엄마 무한책임 사회를 넘어 - 이설기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는 증가했으나 여전히 육아는 여성의 일인 '지연된 혁명'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여성의 이중 부담과 좌절, 양육 친화적이지 않고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환경, 입시경쟁의 과열과 대리 성취에의 압력 등등과 맞물려 복잡하게 굴절되어 있다.

이 여성들이 피해자라고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사회구조와 체제의 충실한 파수꾼'이며, 교육 생태계를 건강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해자이기도 하다. -p155


진상 학부모 현상에는 여러 사회적 모순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지만, 나는 한국 사회에서 엄마로서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에 변화가 일어날 때 많은 부분이 해소될 수 있다고 믿는다. 엄마 혼자 고립 속에서 아이를 전적으로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면. 육아에 빈틈이 있을지라도 그 빈틈이 다른 이들의 손으로 어떻게든 메워진다면. 그래서 아이에게 과몰입해 배타적 애정을 강화해가지 않아도 된다면. "저는 엄마의 청춘을 바친 자식이에요"라는 <일타맘> 속 의대생의 발언처럼 '엄마의 청춘'을 바쳐 자녀의 성공을 이룬 케이스가 더는 칭송받지 않을 수 있다면. -156


이 책이 좋은 이유가 교권이 무너진 현실을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이초 사건 때부터 나는 계속 대체 학교가 왜 이렇게 되었나 궁금했다. 기절 초풍하게 비상식적인 일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사태가 나아질 가능성은 요원했다. 이제 교직은 전같지 않고 이 직업 하나만 보다간 큰일나겠다는 불안이 점차 확신으로 바뀌었다. 주변에서는 본인이 겪은 경악스러운 일화와,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원만히 정년까지 마칠 수 있는지, 법과 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할지에 관해 주로 얘기했다. 대부분 '학부모는 가해자, 교사는 피해자'라는 전제가 깔려있었고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납작한 논리로는 복잡한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 실제로 내가 만난 학부모 중엔 좋은 분들이 훨씬 더 많았고 서이초 사건 당시 나에게 가장 큰 힘을 준 존재도 우리반 학부모님들이었다. 문제의 원인을 '학부모의 갑질'로만 제한하면 본질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해결 방안을 찾기도 어려워진다.


그나마 여태까지 내가 파악한 원인으로는 [1. 어딜 가나 진상은 있는데 교사에게는 보호장치가 없다는 점, 2. 학교 상위 기관과 관리자가 교사 보호에 소극적이라는 점, 3. 공무원의 특성상 단합과 조직적인 움직임이 드물고, 4. 대부분 '정년까지만 버티자' 식이기 때문에 누가 나서서 적극적인 행동을 하기 힘들다는 점] 등이다. 그리고 학부모에 관해서는 [1. 지금의 부모 세대가 어렸을 적 다닌 학교에선 폭력이 만연했기에 그들이 커서 공교육을 불신하게 됨, 2. 지금의 부모 세대는 가정에서 자기 표현을 억압받고 입시만을 강요 당한 경우가 많아 본인 자식에겐 지지를 최우선으로 해주고 싶어 함.] 정도로 이해했다.


그런데 임신하고 나니까 여기서 더 많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 원인을 추가로 밝혀냈달까,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원인을 이제야 알게된 것 같다. 우선 나는 그동안 엄마들이 맘카페를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학급 담임을 비교하고 민원이 조장되는 맘카페를 나는 부담스러워했다. 학부모 모임과 단톡방이 활발한 것도 두려웠다. (도성초 단톡방 사건을 보고 학을 뗐다.)


그러나 임산부가 된 지금 나에게 맘카페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되었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입덧, 환도 통증, 체력 저하, 어지러움 등 임신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증상을 병원에선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워낙 고통스럽고 낯설어서 궁금한 점 투성이지만, 대부분의 의사가 '정상입니다 / 임신하면 원래 그렇습니다 / 태아가 건강하니 괜찮습니다'로 나의 의견을 일축한다. 반면 맘카페에서는 익명의 동지들이 자기가 얼마나 아픈지, 왜 아픈지, 치료 방법은 뭔지 활발히 공유한다. 물론 비과학적인 사실이 포함되어있음을 나도 안다. 하지만 별 수 있나. 병원에선 안 알려주고 내가 아는 의사도 없는데. 일일이 논문을 찾아볼 수도 없고 챗GPT도 기계적인 말만 하니 그나마 맘카페에서 정보를 얻는 것이다. 또 주변에 임산부가 없다보니 '나만 이렇게 유난스럽게 아픈가?', '나만 체력이 떨어졌나?' 궁금한데, 이때도 맘카페를 찾게 된다. 나랑 비슷하게 고생 중이거나 더 심한 사람을 보면 왠지 모를 위로를 받는다.


지금도 이런데 아이를 낳고 키우면 더할 것 같다. 특히 주변의 도움 없이 고립된 채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맘카페를 멀리할 수가 없다. 엄마로서 필연적으로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나눌 동료가 없고, 필요한 정보도 제한적이므로. 마찬가지로 불안과 공포 그리고 고립이 진상 학부모를 만드는 게 아닐까.


커뮤니티에서 담임을 비교하고 학교에 관한 불만을 쏟아내기.

내 아이가 불이익을 보는 것 같으면 곧장 짚고 넘어가기.

아이가 잘못했다는 말을 들어도 인정하지 않기.


이설기 작가님의 글처럼 지금 우리 사회는 아이 키우는 책임을 전적으로 엄마에게 맡겨버리고, 아이가 잘되든 잘못되든 원인을 엄마에게 돌린다. 그러니 엄마들은 불안하고 무섭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뭔가를 놓칠 것 같아 조급하고, 누구라도 붙잡아 이게 맞는지 확인받고싶어한다. 진상 아빠보다 진상 엄마가 많은 이유도 이런 사회적 구조 때문이겠지. 이제 조금 알 것도 같다. 물론 그렇다고 교권 침해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말의 뒷면 - 김정래


퀴어 이론가 캐서린 본드 스톡턴은 지금까지 아이들이 성장한다는 것은 '위를 향해 자라는' 것처럼 묘사되어왔지만, 성장은 단지 진보의 방향으로 곧게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옆이나 뒤를 향하거나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기도 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그렇게 옆길로 모험을 떠나며 어머니와 다른 존재가 되어간다. 양육의 중심에 놓여야 하는 것은 '또래 평균 '전국 평균'을 가리키는 수치가 아니라, 아이가 세상 속에서 '나'를 만들어가는 즐거움, 그리고 아이를 '자식'으로 만나며 깊게 교류하는 즐거움일 것이다. -p169

내 성격에 아이를 키우면 내 아이가 평균보다 못할 때 초조해지고, ‘위를 향해 자라는’ 것에 집착하게 될 것 같다. 여태까지 내가 커온 환경, 내가 나를 채찍질하는 방식이 그랬으니까. 근데 그렇게 살긴 싫다. 결과를 떠나 과정이 불행할 것 같다. 이 부분을 읽으며 아이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나를 위해서라도 민들레 구독을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ㅎ



경험중심 교육과 교사의 역할 - 우소연


대안학교 교육과정의 중심에는 늘 '경험'이 있었다. 교실 밖의 삶을 배우고, 손으로 만들고, 발로 걷고,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며 성장하는 것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겼다. ...(중략)...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과연 이 많은 경험이 학습으로 연결되었는가? -p171

어머나 나도 맨날 하는 고민인데. 대안학교에 관해 품는 의문 중 하나기도 하고. 대안학교 교장 선생님 직접 이런 글을 쓰셨다니 흥미롭다.


그녀는 당시 백인 진보 교육자들이 선호한 '학생중심, 과정중심' 방식의 교육이 소수자 학생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권력의 변두리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기초 학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76

이것도 백번 공감!! 가난한 아이들일수록 주입식 교육이 필요하다. 일제식 교육, 주입식 교육, 무한 반복과 시험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일단 지식을 집어넣어야 힘이 생기지. 학교에서 안 가르치면 밖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아이들인데. 공부 말고도 길이 많아진 세상이지만, 자본이 없으면 뭐든 힘들다. 안타깝게도 소외 계층일수록 공부밖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그래서 기초 학력이 정말 중요하다.



후기


교사 그리고 예비 엄마의 시선에서 무척 재밌고 유익했다. 교육과 육아를 다채로운 시선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런 훌륭한 잡지에 내 글도 실려서 새삼 뿌듯하고.. 앞으로 꾸준히 읽으려한다. *⸜( •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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