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정의가 정의가 아니라는 말에 대해

by 화사우

좀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이재명의 허위사실공표 재판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대법원의 다수의견과,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글래드스톤의 명언, 그리고 두 명의 소수의견이 제시한 ‘바람과 해님’ 우화를 인용한 반론이 맞섰다.
법정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논리의 충돌과 법리 다툼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생각할 지점을 던져준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말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격언 역시 이와 맥을 같이한다. 일본에서 살인의 누명을 쓰고 50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요시다 이시마츠의 사례는, 정의가 ‘언제’ 실현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그의 인생 대부분은 누명의 멍에 속에 있었고, 그것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판이 ‘지나치게 빨리’ 끝났을 때는 어떨까?
이번 재판은 보통 100~120일 정도 소요되는 절차를 단 37일 만에 마무리 지었다. 이례적인 속도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정의는 얼마나 빠르면 정의인가?" 100일이면 늦고, 37일이면 적절한가? 아니면, 37일은 오히려 지나치게 빨라서 공정하지 않은가?

사실 이 격언의 초점은 ‘지연’에 있다. 하지만 결국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
대법의 판결에 따르면 이 재판이 평소와 같은 시간을 들여 대선후에 판결이 나면 지연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지연된 정의라면 대법이 생각하는 정의란 해당 판결이 대선에 영향을 주는것이 정의로운 일이란 말이 된다.
더군다나 이 사건은, 그 허위사실공표라는 행위가 이미 지난 대선에서 국민에 의해 '심판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꼭 그렇게 서두를 이유가 있는 재판이었는지도 의문이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선고는 단호하고 명료했기에, 대통령의 지지자들조차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재판은 대법원이 대선의 결과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이었기에, 그 판단과 속도는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

법리적으로도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판단이 충돌했다. 유사한 사례인 이학수 정읍시장은 상대 후보에 대해 허위사실(땅 투기 등)을 발언했음에도 무죄가 선고된 바 있다. 그런데 이재명이 김문기를 “모른다”고 한 발언은 유죄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어떤 판단 기준이 적용되었는지, 논리의 일관성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다 재판 절차의 속도, 대선 직전이라는 시점, 그리고 결과적으로 대선 개입으로 비춰질 수 있는 정황까지 겹치면, 과연 이 재판을 순수한 법리 판단이라고 볼 수 있을까?

독재자들의 결정은 언제나 빠르다. 그들에게는 견제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빠름은 결코 정의가 아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길, 또 뉴라이트 추종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