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1도 관심없던 이의 내집마련 비망록
부동산 카페는 그 안의 분위기나 기조가 썩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내집마련을 위해서라면 가입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재산을 투자하는 일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좋은데, 공인중개사의 말 뿐만 아니라 실거주자, 투자자의 목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는 곳이 부동산 카페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카페에 가입은 했지만 아직 글을 많이 올리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독립하고 싶은데 처음 집은 어디가 좋으냐'라고 올렸었다. 대부분 '영혼을 끌어모아서 수성구로!'였다. 하지만 수성구는 '대구의 강남' 아니던가. 웬만한 좋은 입지는 손도 못 댈 만큼 비싸기 때문에 외곽지로 알아보다 보니 시지지구가 눈에 들어왔다. 시지지구는 대부분 25년 안팎의 아파트들이 많아서 24평형대 아파트들이 2억 초중반에 가격대가 형성돼 있었다. 모아둔 돈과 대출 풀로 땡기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지하철 역 한 정거장을 사이에 두고 고민이 생겼다. 시지지구 중심가는 대구도시철도 2호선 신매역이고, 장차 환승역으로 손꼽히는 곳은 한 정거장 전인 고산역이다. 고산역 주변은 오래된 아파트와 지어진 지 10년 이내의 아파트들이 섞여있는데, 인근에 '수성 알파시티'라는 개발호재가 있다. 그래서 1996년에 완공된 노변청구타운 21평이 2억5천만원 안팎이다. 한편 신매역은 통칭 '시지지구'라고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곳이다. 많은 판상형 아파트들이 몰려있고, 학원, 병원, 시장 등 편의시설도 잘 자리잡혀있는 곳이다. 다만 비슷한 평형대의 아파트들이 1억8천만원에서 2억5천만원까지 넓은 범위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신매역에서 약 9분 떨어진 매호청구하이츠 25평이 2억원이다.
투자가치 우선이냐, 거주편의 우선이냐를 두고 고민이 시작됐다. 아직 돈도 마련 못했는데 상상부터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보면 기가 차 하겠지만, 언젠가는 들어갈 집인데 이런 고민은 미리 해둬야 하지 않겠는가. 궁금한 마음에 부동산 카페에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고산역파와 신매역파의 싸움이 시작됐다. 고산역파가 "수성 알파시티 개발되면 거기 안 산 걸 후회하게 될 거다"라 하면 신매역파는 "거기 상권 개발되려면 한참 멀었다"고 맞선다. 고산역파가 "앞으로 시지의 중심은 고산"이라고 하면 신매역파는 "어차피 거기 롯데몰 들어오면 상권 다 죽는다"라고 받아친다. 어쩌다보니 내 글이 두 세력의 싸움을 붙인 꼴이 됐다.
부동산 카페에 단지 부동산 글만 쓴 건 아니었다. 서로 생활에 있어 궁금한 점도 올리기 때문에 내가 답변해 줄 수 있는 건 댓글을 달아줄 때도 있다.
그렇게 가입한 지 몇 달 안 돼서 나는 그 부동산 카페의 '우등회원'이 됐다. '우등회원'이라고 해 봤자 별 거 없는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사람 심리가 등급이 올라가니 기분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