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wa Seub Lee Nov 15. 2022

집을 사기로 했다(8회)

부동산에 1도 관심없던 이의 내집마련 비망록

8. 비오던 그 날


(일단 사과말씀 드린다. 집 사고 나서 이미 2년이 넘었는데, 뭔 정신머리였는지 글 쓰는 걸 깜빡했다. 지금부터는 집을 사는 과정, 집을 사고 난 뒤 벌어진 개인적 평지풍파 등등이 합쳐진 아주 다이나믹한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이다. 집을 사려는 분들이 필자를 반면교사 삼아 교훈을 얻으시길 바란다.)


지산동이 불발로 그친 뒤 결국 돌아간 곳은 시지였다. 시지 주변의 매물을 이곳저곳 들르며 집을 보러 다닌 게 3~5월 상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장 집을 살 거란 생각은 그 때도 하지 않았었고, '부동산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무던히 부동산 공인중개사 분들을 귀찮게 했던 듯하다. 어쨌건 주말에 자주 시지로 내달려 집을 봤고, 종국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한두 번 보러 가기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인연이 될 만한 집은 나오지 않았다. 어떤 집은 내가 봐도 구조가 좀 거시기했고, 전용면적 77㎡인 경우 방2개 구조라 좀 아쉬웠다. 그래도 나름 오래오래 살 집인데 나중에라도 환금성이 있으려면 결국 84㎡가 답이었다. 


2020년 부처님 오신날, 그 날이 결국 분수령이었다. 그날은 대구지역 부동산 카페에 올라온 매물을 보려고 예약을 했던 날이기도 했다. 매호동의 '나홀로아파트'였지만 나름 시공사가 대구에서 한 때 끗발날리던 '청구'였기 때문에 일단 가 봤다. 2001년 완공된 아파트였지만 나름 3베이의 32평짜리 아파트였다. 앞쪽으로 시지 전경이 탁 트여보이는 장점은 있었다. 하지만 주차공간이 문제가 될 것 같았고 시지 치고는 좀 외톨이같은 위치라 그게 걸렸다. 


그 집을 보고 난 뒤 어머니는 "여기 말고 다른 데도 봐야 하니까 다른 부동산도 한 번 가보자"고 했다. 시지 광장 근처에 차를 대고 인근 부동산 한 곳을 들어갔다. 그 분은 시지 지역의 다양한 입지와 그 장단점을 설명해줬고, 웬만하면 달구벌대로를 시내 방향으로 바라봤을 때 왼쪽의 아파트를 사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지금 볼 수 있는 매물이 있으니 한 번 보러 가 보시자고 했다. 그 때 본 아파트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다. 당시 주인은 집을 3억7천만원에 내놨다. 구조나 인테리어는 마음에 들긴 했지만, 3억7천은 아리송한 가격이었다. 일단 홀드. 구조가 똑같은 옆집도 내놨대서 갔더니 그 집은 3억8천을 불렀던가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오랜만에 기억을 복기하려니 정확하지 않은 점 이해 부탁드린다.)


어쨌든 그렇게 집을 보고 난 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잘 하면 첫 번째 봤던 집은 3억5천까지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도 동의했다. 그 아래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당시 주변 시세를 봐도 3억5천이면 딱 적당할 듯했다.


그러다가 한 1~2주 지났을 무렵, 봄비 치고는 꽤 많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그 때 나는 퇴근 후 서예학원에서 연습을 막 시작하던 참이었다. 몇 자 쓰고 있는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그 집에서 3억6천500을 불렀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지금 가계약금 걸어놓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 뒤부터 서예 연습은 뒷전이었고 부모님과 부동산, 나와의 정신없는 통화 주고받기가 이어진다. 직전 통화 후 10분 뒤 부동산은 어머니에게도 전화를 했고 나에게도 다시 전화하면서 3억6천까지 내려갔다고 말했다. 무슨 부동산 거래가 역경매장도 아니고 10~20분 상간에 돈이 500만원이 왔다갔다하는지 정신이 없었다.


부모님도 일단 '콜'을 외친 상황이었고, 계약을 위해서는 내가 가야했다. 서예학원 선생님께는 양해를 구하고 판을 접었다. 그리고 곧장 지하철을 타고 부동산으로 갔다. 부동산 아저씨는 나를 자신의 차에 태워 다른 부동산 사무실로 안내했다. 부모님께도 위치를 알려드렸지만 부동산이 아파트 사이에 있던지라 쉽게 찾지는 못하시는 것 같았다. 한 30분 기다렸을까 부모님도 도착했다. 부동산으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일단 가계약금 500만원을 걸기로 했다. 어머니는 500만원을 현찰로 뽑아오셨는데, 나는 "괜찮아, 핸드폰으로 500만원 송금하면 돼."라고 하며 500만원을 넣었다. 이 때부터 태풍의 눈은 만들어지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집을 사기로 했다(7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