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탄식이 멈추지 않는다. 작고 연약한 아르네가 너무나 안타깝고, 그런 아르네를 나락으로 밀어붙이는 아이들의 사소한 악의가 안쓰러워 한숨만 나온다. 책은 한스가 아르네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여있기에, 독자는 이미 아르네가 사라졌음을, 어쩌면 죽었음을 알고 책을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저며 드는 마음을 안고 한스의 회상을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다.
아르네는 일가족 자살 사건의 생존자다. 빚에 시달려 음독자살을 한 가족, 그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슬퍼할 수도 기뻐할 수도 없던 아르네. 아르네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한스 아버지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아르네는 그 집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한스의 배려로 같은 방에 지내면서 점차 안정되어 간다.
그러나 아르네는 외로웠다. 한스 가족과 정을 나누고 친구를 만들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외로움을 극복하기에는 부족했다. 아르네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려, 또 남몰래 짝사랑한 한스의 여동생 비프케에게 관심을 얻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또래 친구들은 아르네의 남다른 감수성과 재능을 시기했고, 자신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기에 아르네는 있는 그대로 또래 집단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아르네는 또래 친구들과 같아지려 무던히 애쓰지만 그런 애씀조차 이용당하기도 한다. 결국 자신을 믿어주던 사람들에게까지 실망을 주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아르네는 혼자 배를 타고 저 멀리 사라지고 만다.
아르네라는 한 소년이 나타나고 또 사라지기까지의 과정과 또 남겨진 사람들이 아르네를 기억하는 과정을 담담한 문체로 그려냈는데 그래서 더 비극적이고 슬픈 이야기다. 감정이 극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소설이라 아이들이 어떻게 읽었을지 걱정되었다. 자칫 심심하고 지루하게 여기지는 않았을까. 우선 책을 읽은 소감을 이야기해 본다.
“왕따 얘기라고 해서 집단 폭력이나 심한 괴롭힘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이상했어요.”
“마지막에 진짜 죽은 걸까요? 제 생각엔 어디로 떠난 것 같아요.”
“아르네가 안타깝지만 왜 사라졌는지 이해가 안 돼요.”
“한스 가족은 정말 좋은 사람들 같아요. 우리는 절대 그렇게 아르네를 돌봐주지 못했을 것 같아요.”
생각보다 아이들은 많은 질문을 갖고 책을 읽었다. 학교폭력, 따돌림은 청소년 소설의 오래된 단골 주제라 사실 식상할 정도다. 그런 점에서 이 책도 다를 바 없다고 여길 수도 있었지만, 아르네의 비극적인 가족사나 낯선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 그런지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점에 대해 서로 묻고 생각을 말해보게 했다.
"왜 아이들은 아르네를 싫어한 걸까?"
"일단 부모님이 없는 것도 막 대하는 이유가 된 것 같아. 그럼 안 되긴 하지만 뭔가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함부로 한 거 아닐까?"
"아르네가 좀 이상한 것도 있어. 일단 책을 많이 읽잖아? (그게 왜 이상하냐!)"
"그리고 너무 똑똑하니까 애들이 자기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선생님들도 좋아하니까 질투 나기도 하고. 잘난 척하지 않아도 그렇게 여기기도 하잖아."
"맞아. 그리고 누가 싫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퍼지는 것 같아. 그래서 걔가 뭔 짓을 해도 싫어지고 뒤에서 욕하게 되잖아."
아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결국 아르네는 '우리와 뭔가 다르다'는 거다. 부모가 없는 것도, 그것도 자살로, 그런데도 우수한 재능을 가진 것도, 자기들이 관심 없는 책이나 문자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또래집단의 리더 역할을 하는 아이가 싫다고 하면 자기도 모르게 싫어하게 된다는 것이다. 청소년기를 아주 훌쩍 지나온 나이지만,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난 의문이 있다. 아르네는 왜 자신을 믿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고 싶어 한 건지 말이다.
"그런데 아르네는 한스가 있는데도 왜 비프케 무리에 억지로라도 끼고 싶어 한 걸까? 어른이지만 칼룩 씨와도 마음을 털어놓고 잘 지냈잖아."
"에이 선생님! 한스는 형이잖아요. 칼룩 씨는 아저씨고!"
"그게 왜? 아르네처럼 성숙한 아이한테는 오히려 또래가 유치할 거 같은데."
"쌤이 나이가 많아서 잘 모르시나 본데요. 노는 건 친구랑 놀아야 재밌어요."
"나이가 다르면 친구가 될 수 없냐?"
"당연하죠!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요. 나이가 다르면 뭔가 벽이 있어요. 같은 나이의 친구들끼리가 더 잘 통해요."
"나이도 중요하고요. 학교에서 같은 반인 것도 엄청 중요해요. 친하다가도 반 나뉘면 어색해진단 말이에요."
사실 난 또래 친구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르네의 심정에 깊게 공감하지는 못했다. 그의 외로움에는 공감했지만 한스와 칼룸이 그 외로움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르네의 외로움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래 집단의 인정과 평판이 너무나 중요한 사춘기 시기에 친구는 인생의 90% 이상을 차지한다면서. 같은 시간과 공간을 함께 누려야만 진짜 친하다고 느낀다는 아이들의 말 덕분에 아르네의 고통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르네가 남긴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한스는 아르네를 추억한다. 등대 모형, 망원경, 핀란드어 사전, 엽서. 어느 하나 의미 없는 것이 없다. 아르네가 남긴 유품은 각각 어떤 추억과 의미를 갖고 있을지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등대 모형은 아르네가 한스 가족과 처음 만났을 때 선물로 받은 거잖아요. 그 가족 구성원의 일부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어항은 비프케와의 추억을 상징하는 것 같아요. 비프케가 잘해준 건 그때뿐이라서"
"저금통장의 돈은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던 아르네를 떠올리게 해서 너무 안타까워요. 돈이 있어야 친구들과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비참해요."
"아르네는 언어에 특히 뛰어났잖아요. 핀란드어 사전은 그런 아르네를 떠올리게 해요."
그밖에도 그물 조각, 양철을 잘라 만든 명패, 배 모형도 아르네를 떠올리게 한다. 한스는 아르네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지만, 사실 더 기억하게 돼버린다. 단순한 물건일 뿐이지만, 그 물건에서 기억을 읽는 순간, 더는 물건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의미를 두고 간직하고 있는 물건이 있는지, 의미가 담긴 선물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 대부분 없다고 대답했고, 몇몇 아이들이 일기장이나 편지를 말했다. 서로 선물을 주고받을 때는 대부분 기프티콘을 사 준다는 말을 듣고 너무 안타까웠다. 물건은 단지 돈으로 교환되는 것일 뿐이고, 소용을 다하면 버려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부모님들께 받은 선물을 물어보니 스마트폰, 게임기나 레고를 말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물건도 별 의미는 없다고 한다. 새 제품이 나오면 바꾸고 싶어 지는 물건이기에 간직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사람들이 물건에 어떤 의미를 두고 사는지 예를 들어주기 위해 세월호 존치 교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족들에게, 또 생존 학생들과 그 부모들에게, 또는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 이 교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또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한 청년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유품인 수저와 컵라면이 우리 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다.
마지막에 한스의 동생 라르스는 한스가 정리해서 박스에 담아둔 아르네의 유품을 다시 꺼내 정확히 제자리에 얹어둔다. 한스는 그런 동생을 그저 바라본다. 사실 라르스는 아르네에게 따뜻하지 못했고 괴롭힘을 방관했다. 그런 라르스가 유품을 다시 꺼내는 장면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 작가는 인간에게 여전히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스처럼 기억하고, 라르스처럼 성찰하는 것만이 남겨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수업 마지막에 친구들이 아르네를 직접적으로 괴롭힌 것도 아닌데 그렇게 절망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대전 살다 전학 왔을 때,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고 외로워서 방학 내내 밖에 안 나갔어요. 정말 죽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요. 그러다 엄마가 심부름을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밖에 나왔는데 어떤 애가 갑자기 다가와서 "너 몇 살이야?"하고 말을 걸어줬어요. 그 애 덕분에 개학하고 간 새 학교에 적응하고 친구도 사귈 수 있었어요. 전 그때 생각하면 아르네를 100프로 이해할 수 있어요.”
아르네는 이 자리에도 있었다. 어쩌면 이 아이도 아르네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던 거다. 이 아이에게 손 내밀어 준 그 친구가 없었다면 말이다. 아주 아주 외롭고 허무할 때 내게 손 내밀어 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 텐데, 누군가에게 손 내미는 게 너무 버겁고 힘겹다. 그래서 안타까운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나도, 아이들도 어느 날 힘겨워하고 있는 누군가를 보면 아르네를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게 되길 바라며 수업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