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되는 아이들에게

감정을 읽다-『굿바이 6학년』을 함께 읽고

by 고양이쌤


『굿바이 6학년』 최영희 외 지음, 스콜라 펴냄

-수업 대상: 초등 6학년



중학생이 되는 아이들은 괜히 두렵고 설렌다. ‘굿바이’가 주는 아쉬움과, ‘뛰어오르는 아이들’이 주는 설렘. 잘 헤어지고 잘 만나는 것도 지혜로움의 결과란 걸 잘 알지만, 난 늘 그걸 잘 못했다. 잘하는 방법 또한 알지 못한다. 두렵다고, 설렌다고 하는 아이들에게 멋진 조언은 못해주지만, 슬며시 책 한 권 내미는 재주는 있다. 그렇게 고른 책, 『굿바이 6학년』.


“왜 6학년을 위한 동화는 없나요?”


라는 아이들의 바람을 듣고 작가 7명이 뭉쳐 만든 책이라 의도가 분명하다. 6학년이 주인공이고, 딱 그 또래 아이들이 걱정하고 상상하고 두근대는 이야기 7편을 묶어냈다. 삼각관계에 빠진 한 아이는 <미스터리 로맨스, 용의자 X>에 공감했고, 언제나 친구관계가 고민인 아이는 <다시, 파티>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았다.


주제 수업은 단편 중 <급성는개뿔증후군>으로 골랐다. 6학년 아이들 사이에 갑자기 전염병이 돌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얌전하던 모범생도 이 병에 걸리면 “선생은 개뿔!”, “공부는 개뿔!”하며 어른들 말에 따박 따박 대꾸를 하게 되는데, 3~4일 정도 지나면 자연 치유된다. 그러나 어른들은 겨우 3~4일을 못 참고 아이들을 격리 수용하는데, 아이들은 “우리는 지금껏 어른들의 언어폭력을 참아왔는데 어른들은 겨우 3~4일도 못 참는다.”며 비판한다. 그러나 격리수용이 마냥 화나는 건 아니다. 학교도 학원도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들을 원인별로 분류해보고, ‘불이익을 당할까 봐’ 못 하는 경우에 당당하게 말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아이들에게 평소 어른들(나 포함)에게 불만 있었던 얘길 해보라니,

“고양이쌤은 개뿔, 한 달 전에 치킨 사 준다더니, 사주지도 않고. 치킨은 개뿔, 기억 안 난다고 발뺌이네!”

라고 해서 눈물을 흘리며 치킨을 시켜줬다.

“야, 진심으로 불만이 없어?”

“별로 없는데요.”

“맨날 담임쌤, 학원쌤 욕에, 부모님 욕을 달고 살던 것들이 왜 갑자기 얌전한 척이냐!”

“막상 생각해보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평소 아이들이 말하는 불만 중에 사소한 것도 있었지만 꽤 큰일들도 있었다. 책방에 와서 총알처럼 쏟아내고 나면 속이 좀 풀리나 싶어 들어주는데 같이 화가 날 때도 많았다. 충분히 항의하고 대꾸해도 되는 상황인데도 아이들은 선생님이니까 참아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또 항의했다가 자기만 손해를 보거나 미움을 받으면 어쩌냐고 했다. 물론 피해를 입을 수도 있겠지만, 진짜 억울한 경우에는 말하는 게 중요하다. 약자의 위치에선 언제나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약자일 때도 문제지만, 어쩌다 강자에 위치에 올라간다면 배운 대로 경험한 대로 약자를 누르고 괴롭히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억지로 불만을 조작할 수는 없어서 가상 상황을 만들어 그때 어떻게 대처하고 말할지 생각해보자 얘기했다. 여러 가지 상황이 오가던 중 한 아이가,

“야, 예전에 우리 학교 교감 선생님이 6학년 성추행했다고 막 그랬잖아.”

“아, 맞다. 기억난다.”

“그때 어떻게 됐지?”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한때 그런 소문이 돈 모양이었다. 갑자기 얼마 전 중학생들과 수업했던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만약에 너희가 회사 면접을 갔다고 생각해봐. 면접관이 "우리 회사랑 계약관계가 걸린 고객과 회식자리가 있는데, 거기서 성추행을 당했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라고 물으면 너흰 뭐라고 대답할 거야?”

아직 6학년이니 내가 기대한 답은 “뭐예요!”, “손 치우세요!” 또는 “더러워!”, “악!” 정도는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들의 답은 충격이었다.

“술을 따르는 척하면서 그 사람 시선을 돌릴 거예요.”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슬쩍 피할 거예요.”

도대체 그런 건 어디서 봤냐고, 어떻게 배운 거냐고 물었더니, 드라마에서 봤다고 한다. 하지 말라고 말하거나, 자리가 끝나고 나서 회사에 말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

“그럼 회사에 내가 이상한 여자라고 소문나고, 회사 생활 못하게 될 것 같아요.”라고 한다.


순간, 당황스럽고 울컥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열세 살 아이가 배운 정의는 내가 책에서 배운 정의와 너무도 달랐다. 아이들에게 불만을 말하라고, 그리고 불만이 있으면 저항하라고 말해왔는데, 그런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선생님은 정말 뭘 모르는 사람이구나, 순진한 사람이구나 했을 것 같아 부끄럽고 참담했다.


“참을 필요 없어. 싫다고 말해야 해. 그 자리에서 용기가 안 나면 회사에라도, 집에라도 말해야 해. 중학교 가서 고등학교 가서 혹시 그런 일을 당하면 꼭 말해야 해. 지금 세상은 많이 변했고, 변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너희가 옳다고 말하고 도울 거니까 꼭 말해.”하고 수업을 마무리했다.


수업을 끝내고 씻고 침대에 누워서도 자리를 피하겠다는 아이의 말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다 번득, 이 말을 붙이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또 한 번 가슴이 막혀왔다.

“혹시 너희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너희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선생님한테 얘기해. 내가 꼭 생을 걸고 너희를 도와줄게.”


론 마라스코와 브라이언 셔프가 쓴 『슬픔의 위안』은 위로의 방법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남에게 밧줄을 던져 줄 때 반드시 한쪽 끝을 잡고 있어라.”


"용기 내, 저항해, 당당하게 말해."라고 하기 전에 “내가 네 손을 잡고 있어.”라고 말해야 한다. 옳은 말은 누구나 쉽게 해줄 수 있지만, 정작 도움이 되는 행동은 아무나 해줄 수 없고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옳은 말을 듣는 것이 힘든 이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다음 주 아이를 만나면 부끄럽지만 꼭 전해야 할 말이 생겼다.

“네가 힘들어 전화하면 언제라도 받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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