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톨스토이를 좋아한다.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 카레리나> 같은 그의 대표작보다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의 성스러움과 달리 좋아하는 이유는 아주 세속적인데, 중학교 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쓴 독후감으로 학교 대표에 뽑혀 지역 독후감 대회에 나가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후 톨스토이를 좋아하는 척하면서 학교 도서관에서 <톨스토이 인생론>이라는 책을 빌렸는데, 줄을 그으면서 읽었는데도 매번 잠이 들곤 했다. 결국 절반도 못 읽는데, 이상하게 책 욕심이 나서 반납하지 않았다. 지금도 읽지 못한 그의 인생론은 내 서재 한 구석에 꽂혀 내 인생의 짐이 된 채 낡아가고 있다.
한 때 존경하는 작가를 말해보라고 하면 톨스토이의 이름을 말하곤 했다. 아마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이라 그랬던 것 같다. 러시아 작가 정도는 좋아해야 문학소녀라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런 나에게 문학소년을 자부하는 한 남자애가 말했다.
“야, 수준 낮게 톨스토이가 뭐냐! 도스토예프스키 정도는 읽어야지!”
자존심을 상해 그 애 몰래 <죄와 벌>,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어보았지만 또 금세 잠이 들곤 했다.
잠시 동안의 배신이 미안해서 아이들에게 도스토예프스키는 안 읽혀도, 톨스토이는 꼭 읽힌다. 보통 5, 6학년 아이들과 <톨스토이 단편집>을 읽고 이야기 나눈다. 이야기 자체가 쉽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토의 거리도 충분한 책이다. 특히 <사람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로 부동산 문제에 대해 얘기해볼 수도 있다. 톨스토이가 대지주였는데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다는 말을 해주면 설마 그럴 리가 하는 반응을 보인다. 톨스토이의 삶과 철학을 좀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책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톨스토이의 아홉 가지 단점>을 만나게 되었다.
책은 83살의 노인 톨스토이의 가출로 시작된다. 부인 소피야는 탐정 셜로홉스키를 고용해 남편의 행방을 찾는다. 셜로홉스키는 증거를 찾기 위해 톨스토이의 일기장을 살펴보는데 거기에 ‘톨스토이의 아홉 가지 단점’이라는 글을 보게 된다. 대문호이자, 농민에게 땅을 나눠주어 성인으로 칭송받는 톨스토이에게 단점이 무려 아홉 가지가 된다니? 어떤 단점들일까. 톨스토이는 본인 스스로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한다. 이치에 어둡다. 마음이 잘 변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성격이 밝지 못하다. 자기 자신을 속인다. 거짓말을 한다. 조급하게 생각한다. 남을 잘 따라 한다.’가 단점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게 진짜 단점일까?’를 주제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했다.
사람들에겐 저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장점이 남에게는 장점이 아닐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단점이 남들에겐 장점으로 비칠 수 있다. 톨스토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이들이 처음 장점이 될 수 있다고 한 것은 ‘이치에 어둡다’는 것이다. 이치에 밝았다면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는 일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을 잘 따라 한다’와 ‘마음이 잘 변한다’도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랬기에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말을 따라 단일세를 주장하고, 땅 문제가 해결되어야 사회경제적 모순이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홉 가지의 단점을 톨스토이의 인생과 연결해 단점도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내가 가진 단점 또한 장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해본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진짜 톨스토이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장점은 희생과 배려라는데 이의가 없었다. 단점으로 생각하는 것 또한 다들 비슷했는데,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웠던 건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말하는 이유가 조금 차이가 났다는 점이다.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땅과 저작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굶어 죽으라는 말이냐며 무책임하다고 했다. 여자아이들은 부인 소피야가 원고도 새로 써 주고, 톨스토이의 일상을 보조해왔는데 그녀를 무시한다는 것에 화를 냈다. 나는 이 차이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좀 아찔했다.
글을 쓰는 것보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겠다 생각했다. 아이들은 톨스토이가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 준 것에 대해 훌륭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재산을 나눠준다고 생각하면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선생님은 말이야. 사람들이 가진 집을 전부 국가에 내놓고, 전 국민 로또로 한 가구당 집을 한 채씩 가져가는 제도가 생긴다면 내 집을 내놓는데 반대하지 않을 거야.”
“열심히 돈 벌어서 산 집을 공짜로 내놓는다고요? 말도 안 돼요. 저는 반대입니다.”
“어차피 로또로 한 채씩 받잖아.”
“지금보다 안 좋은 집 걸리면 어떡해요. 판잣집 같은 거.”
“기초적 주거 환경이 안 되는 집은 빼야지. 또 가구당 인원수도 생각하고. 뉴스 보니까 우리나라에 집이 많아서 한 가구 당 한 채씩 가질 수 있다던데.”
“그래도 싫어요. 내가 안 좋은 집 걸릴 수 있잖아요.”
“너희는 지금 부모님 집에 살아서 그런가 본데, 나중에 너희가 크면 집값이 더 오를 거야. 그런 너희는 집을 아예 가지지 못할 수도 있어.”
“설마 그렇게 되겠어요.”
“그렇게 될 확률이 높을 거 같은데.”
“그래도 싫어요. 저는 지금 정도의 집에 살고 싶어요.”
“그럼 이건 어떻게 생각해. 내가 살던 집을 남에게 팔 때 샀던 때 가격보다 싸게 파는 거지.”
“에이 그럼 안 되죠. 샀던 것보다 비싸게 팔아야 이득이 남고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죠.”
“집에 1년이든 2년이든 살았으면, 중고가 된 건데 왜 비싸게 팔아? 100만 원에 산 폰을 1년 뒤에 너한테 150만 원에 팔면 넌 좋다고 살 거야?”
“아니죠. 썼던 건데 더 싸게 팔아야죠.”
“그럼 집은?”
“……”
한참 침묵이 흐르다가 한 녀석이 말했다.
“집을 싸게 팔면 그다음 이사 갈 집을 어떻게 사요. 집값은 계속 오르니까 비싸게 팔아야 지금 사는 집이랑 비슷한 집을 다시 살 거 아니에요!”
“그럼 결국 집값은 지금보다 훨씬 비싸지겠네. 그럼 너희가 과연 집을 살 수 있을까? 집을 사기 위해 평생 은행 빚을 갚으며 사는 삶이 정상적인 삶일까? 그렇다면 모든 국민에게 집이 평등하게 나누어지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 아닐까?”
나 또한 이게 아주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것을 잘 안다. 단지 비싸고 넓은 아파트에 사는 것이 인생 목표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억지로라도 생각을 전환시켜 보게 하려고 마음 아플 질문들을 해보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안을 조장하고 너희의 미래가 어둡다는 이야기로 알아듣게 해서는 안 되기에 대안적 삶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성공적인 공동체 주거 사례를 영상으로 보여주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영상을 본 후 시간이 없어 감상을 나누지 못한 게 아쉽다. 다음에는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삶에 대해 수업을 구성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