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읽다-『잘못 뽑은 반장』, 『또 잘못 뽑은 반장』을 함께 읽고
6학년 한 아이가 지각을 했다.
“왜 늦게 왔어?”
“죄송해요. 오늘 회장 선거가 있어서 늦게 마쳤어요”
“그래, 알겠어. 책 꺼내자.”
“선생님, 그런데 선거가 이상했어요.”
“뭐가?”
“10명이 후보로 나왔는데요. 하는 말이 다 똑같아요.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다. 항상 웃음이 가득한 학교를 만들겠다 그러면서…”
“항상 웃음이 가득하면 무섭겠는데…”
“지키지도 않을 얘기를 해요. 어떤 애는 학교에 쓰레기가 보이면 자기가 다 줍겠대요.”
“뭐래? 걔 뽑히면 줍나 안 줍나 꼭 감시해라.”
“그래서 전 그중에 제일 현실적인 얘기 하는 애를 뽑았어요.”
“잘했네. 역시 내가 잘 가르쳤구만!”
그러고 나니 다들 선거에 대해 시끌시끌 한 마디씩 한다.
“어떤 애들은 엄마가 연설문도 다 써 줘요. 회장 되면 10만 원 준다고 했대요.”
“작년에 피자 돌린 애가 반장 됐어요.”
“좀 웃긴 얘기 하면 애들이 그냥 뽑아줘요.”
“반장 된 애가 자기 안 뽑았다고 생일 파티에 제 동생만 초대 안 했대요.”
애들 선거도 요즘은 치열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하고 보자는 식이다. 하고 싶어 하는 애들이 하도 많아서 한 반에 서른 명도 안 되는데 10명이 후보로 나오기도 한단다. 표가 나뉘다 보니 5표 받고 반장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왜 반장이 되고 싶으냐 물으면 “반장 되면 내가 높은 사람이 된 것 같잖아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애들 떠들면 이름 적고 싶어요.”라고 한다. 책임보다 권력을 누리려는 생각은 저학년이나 고학년이나 마찬가지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봉사활동 점수 때문에 학생회 활동을 하려고 한다. 권력을 누리려는 것과, 스펙을 쌓으려는 것 중 무엇이 그나마 나은지 모르겠다.
선거 과정 또한 행태가 딱 어른들 선거의 나쁜 점만 빼다 박았다. 금품 향응 제공하면 유리하고, 공약은 정말 빈 깡통이다. 좋은 건 안 배우고 나쁜 것 먼저 배우는 건 결국 어른의 잘못. 다른 건 몰라도 예나 지금이나 맨날 행복한 반을 만들겠다, 여러분의 심부름꾼이 되겠다 하는 건 정말 식상하다. 하물며 공약을 말하지 않는 친구들도 많다고 한다. 어떤 아이는 공약으로, "나를 뽑아주면 웃긴 댄스를 출게.", "반장 되면 개소리를 흉내 낼게."라고 했단다. 정말 개소리 아닌가?
"그런 친구를 누가 뽑아주니?"
"걔 뽑혔는데요."(오잉?)
"도대체 걔가 개소리하는 게 왜 듣고 싶었던 거야."
"그냥 웃기잖아요. 그리고 걔 혼자 여자 후보라서 여자 애들이 걔를 다 뽑아준 거예요."
한심하게 볼 일은 아니다. 어른 선거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매번 행복한 국가를 만들겠다. 국민의 심부름꾼이 되겠다. 국민소득 얼마! 경제 성장 얼마! 일자리 몇 만 개! 이런 헛구호에 언제까지 이런 얘기를 듣고 살아야 하는지 한숨이 나왔던 적이 한두 번인가. 아이들이 개소리 듣고 싶어 반장을 뽑아주는 것은 매번 혐오발언이나 막말을 내뱉는 사람을 2선 3선 뽑아주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여자라고 뽑아주는 것은 '우리 지역은 무조건 OO당이지!'하고 뽑아주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매 학기마다 이런 이야기가 반복돼서 수업 주제로 다루어 보자 마음먹고 책을 검색했다. 온라인 서점에 '반장'으로 검색하나 스무 권 가량의 동화책이 나왔다. 그중 '반장'이라는 주제로 무려 세 권의 시리즈 책을 펴낸 이은재 작가가 눈에 띄었다. 작가님도 나만큼 반장 선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책을 구매했다.
『잘못 뽑은 반장』은 글밥이 꽤 많은 책이었음에도 아이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일단 등장인물의 성격과 학교 생활이 생생하게 그려져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를 읽는 듯하다는 평이 많았다. 또 주인공 '이로운'이 변해가는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캐릭터 자체로 재미있다고 했다. '이로운'은 이름과는 달리 별명이 '해로운'이다. 말 그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악동이다. 그런 이로운이 반장 선거에 도전하면서 벌어지는 학 학기 동안의 사건사고갱생(?)을 재미있고 발랄하게 그리고 있다.
『또 잘못 뽑은 반장』은 이로운 옆 반의 반장 선거 이야기다. 이번에는 반장과는 아주 거리가 먼 소심하고 존재감 없는 '공수린'이 반장이 되었다. 공수린의 별명은 '공수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자기주장도 없고, 친구도 별로 없고, 텅 빈 수레 같아 '공수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를 수린이에게서 아름다운 마음씨를 본 담임선생님 때문에 어쩌다 반장이 된 수린은 수많은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반장 다운 반장'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두 이야기 모두 '반장의 자격'을 묻는다. 나는 그 이전에 '반장이 꼭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해본다. 요즘 몇몇 학교에서는 반장을 없애고, 돌아가면서 봉사위원을 한다거나, 당번이 그 역할을 한다고 한다. 초등학교 반장이 하는 역할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선생님 없을 때 조용히 시키키', '줄 세우기', '인사'가 주된 역할이고, 아주 가끔 '학급회의 진행'을 한단다. 이 정도 일이라면 돌아가면서 하는 게 맞다. 그럼 반장은 필요 없는 거 아닐까? 찬반을 나누어 간단한 토론을 진행해본다.
"그래도 있어야 해. 반장 하고 싶은 애들이 많잖아. 반장이 없어지면 못하잖아."
"그러니까 그냥 돌아가면서 한 번씩 하면 되잖아. 반장 뽑지 말고."
"반장이 없으면 선생님 없을 때 애들이 막 떠들잖아. 당번이 조용히 하란다고 애들이 듣겠냐?"
"반장 말도 잘 안 듣잖아. 어차피 이름 적어놓고 선생님 오면 혼내달라고 하는 건데 아무나 하면 어떠냐?"
"반장은 우리 반의 대표잖아. 그럼 책임감을 갖고 해야 하는데, 아무나 하면 되겠냐?"
"매일 다른 사람이 책임을 갖고 하면 되잖아."
"야, 너 OO이 알지? 걔는 맨날 떠들고 친구 괴롭히고 그러잖아. 그런 애가 1일 반장 되면 어쩌냐? 반장이라고 친구들 더 괴롭힐 텐데."
"이로운 처럼 변할 수도 있잖아. 반장 됐으니까 착해질 수도 있잖아."
"이로운도 반장 첨 됐을 때부터 변한 건 아니잖아.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차츰차츰 달라진 거잖아. 하루 이틀 만에 사람이 어떻게 변하냐?"
"그건 맞네. 그런데 지금 반장이 하는 역할은 꼭 1명만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닌 것 같아."
"그건 그래. 대부분 애들이 다 잘할 수 있는 건 인정해. 근데 왠지 반장이 없으면 허전할 것 같아서..."
이야기를 나눌수록 아이들은 반장이 왜 필요한 건지에 대해 의문이 커졌다. 도대체 반장 선거는 왜 하는 걸까? 별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여기서 나는 우리가 정말 중요한 걸 하나 잊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다. 반의 대표, 학교의 대표, 지역의 대표, 나라의 대표까지. 우리는 우리 손으로 대표를 뽑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민주 시민 양성'에 있지 않은가. 학교는 민주주의를 연습하고 실현하는 가장 최소의 단위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반장을 '권력자' 또는 '심부름꾼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표는 권력자도 심부름꾼도 아니다. 말 그대로 대표다. 대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그런데 말이야. 반의 대표가 왜 필요한 거지?"
"운동회 하거나, 학예회 할 때 반 대표가 나가서 순서도 정하고요. 공연 준비 같은 거 지도도 하고 그래요."
"그럼 그때그때 잘하는 아이들이 하면 안 될까?"
"그래도 되겠죠."
"그럼 도대체 반장을 왜 뽑지? 진짜 대표가 해야 할 일이 뭘까?"
아이들은 곰곰이 생각에 빠진다. 우리의 대표, 학생의 대표, 우리 반 아이들의 대표. 무엇을 해야 할까?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아이들 중 하나가 번듯 생각난 듯, "친구들이 뭘 원하는지 들어보고 그걸 해주려고 노력해야 해요!"하고 외친다.
"그래,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 친구들이 학교 생활에서 불편하고 힘든 게 뭔지 듣고 그 해결책을 같이 의논해보는 것, 그리고 의논해서 결정된 일을 실천하려 애쓰는 것 그런 게 대표가 해야 할 일 아닐까? 지금 반장들이 그 역할 잘하고 있니?"
"아니요. 그럴 일이 없어요. 그런 건 선생님한테 말하면 되잖아요."
교실에서, 학교에서 민주주의 연습이 제대로 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결국 교사의 의지와 역량에 달렸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학급회의도 전교학생회의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어떤 불만이나 의견이 나오는 일도 거의 없고, 토의나 토론 과정도 드물다고 한다. 한 마디로 아이들은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의견을 모으는 것도, 무언가를 결정해 실행한 경험도 없다. 모든 건 선생님이, 어른이 다 해준다. 한 학기 한 번 반장 선거는 허울뿐이다. 정작 배워야 할 것은 배우지 못한 채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배우고, 돈이나 인기로 그 권력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그런 반장 선거라면 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반장선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선거보다 학급회의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물론 교사가 학급회의 시간을 반드시 주 1회는 주는 게 우선일 것이다. 떠드는 아이들 이름을 칠판에 쓰는 것보다, 아이들이 낸 의견을 칠판에 기록하는 것을 즐거워하길 바란다. 선생님께 이른다고 협박하는 것보다, 격렬한 토의에서 재미를 느끼길 바란다. 또 자신들이 결정한 것이 실행된 후 다가올 실패와 성공을 온 몸으로 기억하길 바란다. 그게 반장 선거보다 훨씬 짜릿한 경험이 될 것이다.
한 아이가 묻는다.
“쌤, 저 다음 학기에 반장 선거 나갈 건데 연설을 뭐라고 해야 할까요?”
“나 같으면 말이야. 이렇게 말할 거야. ‘피자 사준다고 뽑아줘야 할까요? 재미있는 애라고 뽑아줘야 할까요? 행복한 반을 만들겠다는 말에 속지 맙시다. 저는 심부름꾼도 독재자도 되지 않을 거예요. 전 어떻게 하면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지 여러분의 의견을 듣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해보겠습니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