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읽다-『힙합은 어떻게 힙하게 됐을까?』를 함께 읽고
힙합 하면 통 넓은 바지 입고 거리를 휘젓고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커다란 바지통을 바닥에 끌지 않으려고 고무줄로 묶거나 압정으로 신발에 고정하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러고 다녔나 싶은데 다시 유행이 돌아오고 있단다.
힙합은 그때나 지금이나 10대, 20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음악이다. 최근 몇 년간 힙합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쇼미 더 머니>를 시작으로 <언프리티 랩스타>, <힙합의 민족>을 거쳐 <고교 래퍼>까지. 만드는 대로 화제가 되고 연일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된다. 이제는 EBS까지 나서서 사회문제에 대한 청소년들의 시선을 랩으로 풀어보는 <배워서 남줄랩>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힙합이 어쩌다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었을까? 어쩌다 힙합이 대중문화가 되었을까?’를 쉽게 풀어놓은 책이 『힙합은 어떻게 힙하게 됐을까?』(한동윤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다. 중1, 2 학생들 중에는 좀 어렵다는 평가가 있기도 했다. 내용이 어렵다기보다 외국 가수나 노래 등이 많이 나오다 보니 낯설어서 거리감을 느낀 것 같다. 대부분은 어렵지 않게 읽어왔다.
내용 중 생각해볼거리를 세 가지 뽑았다. 첫째, 새기 팬츠 같이 눈살이 찌푸려지는 의상이나 지나치게 부를 과시하는 힙합 패션 등엔 긍정적인 점이 많을까, 부정적인 점이 많을까? 둘째, 랩 가사에 혐오나 차별, 성적인 농담 등을 넣는 것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될까, 되지 않을까? 셋째, 디스 문화는 힙합 발전에 도움이 될까, 되지 않을까?
아이들은 패션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새기 팬츠처럼 팬티가 다 보이는 옷은 꼴 보기 싫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거다. 어떻게 입고 다니는 가는 자유고 또 규제를 하려고 해도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예를 들어 ‘팬티의 80%까지 보이는 건 괜찮고, 90%는 안 된다.’ 이런 기준을 정하는 게 불가능하단 거다.
둘째와 셋째 주제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둘 다 결국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해서 합쳐서 토론을 해보았다. 얘기하다 보니 ‘블랙넛 사건’에 대해 말이 나왔다. 블랙넛은 2016, 2017년 수차례 자신의 노래에서 키디비를 공격했다. '그냥 가볍게 X감, 물론 이번엔 키디비 아냐. 줘도 안 X먹어', '솔직히 난 키디비 사진 보고 XX 봤지. 물론 보기 전이지 언프리티' 등이 그것이다. 또 몇몇 공연에서 키디비의 이름을 언급하며 성적인 퍼포먼스를 한 점이 문제가 됐다. 키디비는 고소를 했고 결국 블랙넛은 실형을 받았다.
중등1학년부터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힌다. 초등학생 때부터 인권 관련 책을 읽히긴 하는데, 여성 인권만을 주제로 다룬 책은 중학생부터 읽는다. 특히 남학생들이 많아 걱정스럽기도 해서 도서 선정과 수업안을 만들 때 고민을 많이 한다. 남성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게 조심하는 편이다. 그러나 내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은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 처음에는 “우리는 차별 안 하는데요.” 하던 아이들도 뿌리 깊이 박힌 가부장제와 폭력의 구조 등을 배우고 나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본인들에게도 손해가 된다는 걸 이해하는 편이다.
이런 수업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데 익숙해졌던 요즘, 약간은 당황했던 수업이 있었다. 함께 수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고등 1학년 남자아이들과의 수업이었다. 블랙넛과 키디비의 사례를 얘기하자 옆 친구와 속닥거리며 키득대기 시작했다. 의견을 물으니 블랙넛의 행동에 대해 문제없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디스랩에 디스로 대응하면 되지 고소하는 건 비겁해요.”라고 했다. 또 “못 쓰게 하는 말이 많아지면 음악을 자유롭게 할 수 없잖아요.”라고 했다.
블랙넛의 사례는 너무나 옳고 그름이 확실한 사례라고 생각했는데 반대가 나오니 살짝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요즘 유튜브나 포털사이트의 댓글을 보면 이 반응이 더 일반적인 게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럼 네가 키디비 입장에서 디스랩을 쓴다면 뭐라고 할 거야? 보통 ‘난 너보다 잘났어’라고 디스 하면 ‘난 너보다 더더 잘났어’라고 돌려주잖아. ‘널 보고 자위했어’라고 했을 땐 뭐라고 할까? '나도 널 보고 더더 자위했어'라고 하면 되니?”
“……디스는 어차피 논란을 일으켜서 화제가 되려고 하는 거니까 자기도 맞대응을 해서 인기를 끌면 되잖아요.”
“인기보다 자신을 지키는 게 더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모욕에 맞서야 하지 않을까?”
“래퍼면 랩으로 싸워야죠!”
“싸우려면 동등한 상대가 되어야 하는데 블랙넛이 키디비에게 동등한 상대가 될까? 자기 사진을 보고 자위했다고 가사를 쓰고 퍼포먼스 하는 사람에게 어떤 방법으로 성적 수치심을 줄 수 있을까? 방법이 있다면 좀 가르쳐줄래?”
“……”
“가능하긴 할까?”
“…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그 아이들은 블랙넛이 음악적으로는 실력이 있다고 말했다. 음악적 실력이란 무엇일까? 랩핑 실력일까? 가사를 쓰는 능력일까? 샘플링 능력일까? 나는 모르겠다. 힙합을 잘 모르는 내가 판단할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작품과 작가의 삶을 떼어놓고 볼 수 있는가가 예술계의 오랜 논쟁거리였듯 대중문화 또한 결론 없는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강자의 위치에서 약자를 조롱하거나,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것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는 말길 바란다. 조롱과 혐오를 위해 쓰는 말들은 그리 아름답지도 처절하지도, 신박하지도 않다. 또 그런 말들을 쓰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예술이라면 일단 국어사전을 펼치고 낱말 공부부터 시작해보자. 그것도 싫다면 가만히 앉아서 반성해보자. 어쩌면 예술적 자질도 윤리적 소양도 없는, 예술가는커녕 인간이 덜 된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