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읽다-『동네 변호사 조들호 1』을 함께 읽고
올해부터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한 달에 한 번 만화를 읽힌다. 만화 하면 <Why>시리즈와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밖에 모르는 게 안타까워서다. 나는 만화를 통해 독서에 흥미를 가지게 된 케이스라 만화를 학습만화 또는 저질 콘텐츠 식으로만 생각하는 게 불만스럽기도 했다. 궁극적으로는 <바닷마을 다이어리>나 <슬램덩크>, <마스터 키튼> 등 양질의 단행본 만화를 읽히는 게 목적이지만, 처음부터는 무리라고 생각됐다. 그래도 웹툰은 즐겨보는 아이들이 많아서 웹툰 중 단행본으로 출시된 만화부터 시작했다. 1권만 주고 감질맛 나는 아이들은 각자 나머지를 사 보았음 하는 바람으로.
독서 부담을 줄여주는 것 또한 만화를 읽히는 이유다. 중학생만 돼도 1주일에 1권의 책을 읽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또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책을 거의 못 읽고 오는 아이들도 생긴다. 그럴 때 만화면 덜 부담되지 않을까 해서 커리큘럼에 넣었다. 대신 단순한 재미보다는 생각거리가 풍부한 만화를 고르기로 했다.
그렇게 엄선해서 만든 수업 목록의 첫 번째 타자는 해츨링 작가의 <동네 변화사 조들호>다. 때마침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소개하기도 좋았다. 드라마를 본 아이들은 많이 없었지만, 부모님이 본다거나 또 이름을 들어봤다는 아이들이 있었다. 2013년에 시작된 웹툰이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과 그림체는 아니라서 웹툰으로 미리 본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어서 약간 걱정되기도 했지만, 역시나 반응이 좋았다. 만화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재미있다며 6권까지 따로 사 보았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1권에는 4개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첫째는 법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학교 선생님을 법정대리인으로 세우려는 18세 소녀의 이야기이고, 두 번째는 셧다운제로 인해 권리를 침해당한 소년의 이야기다. 세 번째는 낙태에 관한 이야기, 네 번째는 연쇄살인범에 관한 이야기인데 마무리가 되지 않고 끝나버린다.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소재들이고 특히 미성년자의 법적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수업 집중도가 높았다.
어떤 이야기를 수업의 중심 주제로 삼을까 고민하다, 낙태죄 유지와 폐지를 놓고 찬반토론을 해보았다. 사실 나는 이 문제로 찬반 토론을 하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하고 이견은 존재할 수 없다. 만약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남성도 받아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할 것이고, 따라서 몸의 주체인 여성이 낙태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찬반 토론을 해보는 이유는 단지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는 것만은 아니다. 유지하자는 쪽의 주장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빈약한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 찬반을 나눠보는 것이다.
이 주제로 다섯 개 반 수업을 했는데, 그중 네 개 반은 토론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낙태죄를 유지하자는 쪽을 아무도 선택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낙태죄가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그런 걸 계속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키울 사정이 안 되는데 아이를 낳으면 누가 어떻게 키운단 말이에요?”
“그럼 아빠는 왜 처벌 안 받아요?”
“그렇게 원하지도 않는데 태어난 아이는 안 태어나는 것만 못하잖아요!”
“낙태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진짜 힘들게 선택하는 건데 처벌까지 하는 건 너무해요!”
나는 아이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말하며 낙태죄 유지를 주장할 줄 알았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쭉 받아왔던 성교육이란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양수에 둥둥 떠 있던 태아가 뾰족한 낙태 수술 기구가 들어오자 움찔움찔 피하려 드는 영상. 그걸 보여주며 여학생들의 몸은 아이를 가질 몸이고, 따라서 소중하며, 그러니 결국 몸 함부로 굴리지 말라고 협박하던 선생님들. 어른이 되어서야 그 영상이 만들어진 영상이란 걸 알고 얼마나 배신감이 들었는지 모른다. 가짜 영상으로 여학생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려 한 이들이야말로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고등학교 때 윤리 시간에 낙태 문제로 찬반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때도 어김없이 이 영상이 등장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낙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펼쳤다. 나에게 차례가 돌아왔을 때 “낙태는 필요악이다. 태아를 살해하는 것은 나쁜 행위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꼭 낙태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이나 장애아 임신, 또 형편의 어려움 같은 경우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리 선생은 형편없는 수업 태도와 성적을 갖고 있던 내가 ‘필요악’이란 단어를 쓴 것에 깜짝 놀라더니 별다른 멘트 없이 수업을 정리해버렸다. 지금 그때 내가 했던 발언을 생각하면 부끄럽다. 낙태는 악이 아니다. 그저 선택일 뿐이다. 내가 마흔이 다 되어 깨달은 걸 지금 아이들은 벌써 알고 있었다.
딱 한 수업만 토론다운 토론?이 벌어졌다. 남학생 3명, 여학생 1명으로 구성된 반인데, 남학생들은 낙태죄 유지를 주장하고, 여학생은 폐지를 주장했다.
“낙태죄를 없애면 낙태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 아냐. 그럼 지금 안 그래도 저출산인데 문제가 더 심각해지잖아.”
“그래도 태어난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할 거면 낙태하는 게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은 거라고 생각해.”
“저출산이 심각해지면 나라가 위험한데, 우리나라가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그럼 어떡해? 또 처벌을 하지 않으면 무책임하게 임신하는 사람이 늘어날 거 아냐. 태아도 생명인데 무책임하고 성관계하고 임신하고 낙태하고, 그건 잘못된 행동이야.”
“태아도 생명이면 정자도 생명인데, 그럼 그 정자의 주인인 남자는 왜 처벌 안 해? 여자만 처벌하는 거잖아.”
“물론 남자도 잘못은 있어. 근데 낙태를 한 이상 아빠가 누군지는 알 수 없으니까 그렇지. 어차피 임신은 여자만 하는 거니까 더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남자가 상관없으면 결국 여자가 낳을지 말지를 결정하면 되잖아. 그걸 갖고 왜 처벌해! 태아도 생명이면 성인 여성도 생명이야. 태어나서 수십 년 살아왔으니 더 큰 권리를 갖고 있어. 그 권리를 존중해야 된다고 생각해.”
“두 달 정도 되면 심장도 생기고 거의 사람의 형태를 갖추잖아. 그럼 인간으로 봐야 해. 태아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태어나면 불행해질 거라고 단정하는 건 잘못됐어.”
“엄마가 제대로 키울 여건이 안 되는 데 어떻게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냐?”
“그래도 일단 낳아야 해. 국가가 보조를 해주면 되잖아. 저출산은 국가적 문제니까.”
결국 또 저출산 문제로 넘어가버리게 됐다. 남학생들의 논리에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지 않으면 같은 말만 반복될 것 같아서 끼어들었다.
“그런데, 낙태가 저출산의 원인인가?”
“어쨌든 낙태하면 한 사람이 사라지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미혼 낙태가 많을까? 기혼 낙태가 많을까?”
“당연히 미혼 낙태죠.”
“아닌데, 기혼 낙태가 많은데.”
“네? 진짜요? 그게 말이 돼요? 결혼했는데 왜 애를 낙태해요?”
“이미 아이가 있으니 더는 낳기가 힘들어서 낙태하지 않을까? 너희 집도 네가 첫짼데, 부모님이 15년 동안 아이를 둘만 낳았잖아.”
“……”
“실제 기혼 여성 중에 낙태를 1회 이상 경험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라는 통계도 있어. 너는 엄마가 임신할 때마다 아이를 낳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건 아니죠.”
“왜?”
“우리 둘도 키우기 힘들다고 하시는데…”
“그럼 미혼이나 남성이 모른 척하는 경우에 아이를 낳아 키우기가 쉬울까?”
“…”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낙태가 정말 저출산의 원인일까? 오히려 임신 자체를 하지 않거나 미루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 게 원인이 아닐까? 연애와 결혼을 미루는 3포 세대란 말 들어 봤지? 저출산의 원인은 낙태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고, 여러 사회적 원인을 따져 봐야 해. 그런데 너네들 저출산을 왜 그렇게 걱정하니?”
“우리나라가 사라질지도 모르잖아요!”
“그건 좀 기분 나쁜 말인데. 노년층과 장년층은 나라의 구성원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야?”
“그건 아니지만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국가가 돌아가죠.”
“지구 상의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니까 외국인의 귀화나 이주를 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될까? 설마 피부색이 달라도 국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
“근데 진짜 저출산이 국가의 위기일까?”
“당연한 거 아니에요?”
“일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건 사실 국가가 아니라 기업의 이익 아니야? 값싸게 부려먹을 노동력이 없어지는 걸 가장 겁내야 할 사람은 국민들이 아니라 기업들일 거 같은데.”
“아, 그렇게 생각하니 맞는 거 같아요!”
“오히려 생산 인구가 줄어들면 실업 문제도 해결되는 부분도 있고, 노동력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뭐, 그건 지금 논의는 아니니까 다음에 자세히 얘기해보자. 또 낙태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그랬지?”
“태아도 생명인데 너무 무분별하게 낙태하면 어떡해요. 막 클럽 같은 데서 놀다가 아무랑 자고 밥 먹듯이 낙태하고 그러는 여자들이 더 많아질 것 같아요.”
난 여기서 큰 충격을 받았다. 저건 누구의 말일까? 진짜 저 아이의 말일까? 그런 여성을 본 적이나 있을까? 그럼 그 여성과 같이 놀다가 잔 남성은 왜 저 아이의 머릿속에 없을까? 그리고 동시에 깨달은 건, 앞에 수업한 세 반에는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여학생이었다는 사실이다.
“네가 말하는 그런 잘 노는 여자들이랑 성경험이 거의 없는 여자들 중에 누가 더 원치 않는 임신을 할 가능성이 많을까?”
“그거야 잘 노는 애들이죠.”
“과연 그럴까? 걔들은 잘 놀기 위해서도 임신을 조심할 거 같은데. 성경험이 많으니 피임법도 많이 알지 않을까?”
“그래도 어쨌든 성관계를 많이 하면 확률이 높잖아요. 그럼 피임에 더 신경을 써야…”
“혹시 네가 알고 있는 피임법이 있니?”
“콘돔이요.”
“근데 그거 남자가 해야 하는 거 아냐?”
“…”
“남자가 해야 하는데 안 했음 남자를 처벌해야겠다. 호호. 어쨌든 네 말대로라면 적어도 기혼 여성보다 미혼 여성의 낙태율이 훨씬 높아야 하지 않을까? 엄마가 클럽 가서 매일 놀다 오진 않잖아?”
“…”
“그건 그렇고 정말 낙태를 밥 먹듯이 할 수 있을까? 너 포경수술해봤지? 그것만 해도 며칠 아파서 걸음도 제대로 못 걸었잖아. 그런데 낙태를 그렇게 자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포경수술 보단 낙태가 위험한 건 인정하지?”
“몇 번 하면 익숙해져서 자주 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선생님 엄마는 아주 예전에 유산하신 적이 있는데. 70이 다 된 지금도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셔. 낙태는 밥 먹듯 할 수 있는 것도, 취미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한 사람, 아니 두 사람의 인생을 걸고 하는 결정인 만큼 이해당사자인 여성에게 그 결정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아이도 여성도 국가의 것이 아니야. 너 또한 마찬가지지. 너도 국가를 위해 살지 않잖아?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을 필요는 없어. 따라서 국가가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여성을 처벌할 권리 또한 없어.”
이 수업이 끝나고 진행한 다음 수업은 남학생 두 명이 있는 반이었다. 그 반 아이들도 낙태죄 유지를 주장했다. 또 한 번 길고 긴 설득의 시간을 가졌다. 남자아이들은 어느샌가 가부장적 국가주의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남성과 여성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던 아이들이 중학생 정도 되면 남자는 군대에 가고 가정을 먹여 살려야 하니깐 억울한 존재고, 여자들은 데이트 비용도 안 내고, 돈 많은 남자만 좋아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규정한다. 그래서 낙태를 이기적 여성에 의한 태아 살해로 규정하게 되는 게 아닐까.
조금 더 크면 아예 설득이 되지 않는다. “선생님은 여자니까 그렇게 생각하겠죠.”하고 비꼬는 아이들도 있다. 선생님의 말보다는 친구의 말을, 책보다는 개인방송 BJ를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공중파 방송에서 ‘I ♥ 몰카’ 라는 자막을 내보냈던 래퍼 산이와 MBC 방송국의 당당함과 낙태를 밥 먹듯 하면 어쩌느냐는 아이들의 걱정이 닿아있다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나는 궁금하다. 아이들이 추종하는 스피커들은 뭐가 그렇게 억울한 걸까? 군대에 가야 하는 처지가? 데이트 비용과 명품백이 너무 비싼 현실이? 돈을 벌어 먹여 살려야 할 가정이 있는 게? 그것도 아니라면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 모두 정답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이 진짜 억울한 건 아마도 여자들이 전처럼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것이겠지.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설치고 말하고 싸울 작정이다.
“그래 맞아. 선생님은 여자라서 그렇게 생각해. 어쨌든 생각이란 걸 하는 게 중요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