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인문학 교실> 시리즈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다. 보통 지식교양을 위한 책은 인기가 없는데, 동화와 만화, 지식이 적절히 버무려진 시리즈라 그런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좋아한다. ‘수상한 인문학 교실’의 기본 플롯은 간단하다. 어떤 고민이나 문제의식을 가진 어린이가 등장한다. 주인공 어린이는 우연히 수상한 인문학 교실에 가서 더 수상한 교실지기를 만나게 된다. 교실지기는 주인공을 과거로 보내 위인전에서 볼 법한 인물을 만나게 하고, 그 인물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면 다시 현재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진시황을 만나 분서갱유 사건을 경험하면서 책의 중요성을 깨닫는다거나, 클레오파트라를 만나 진정한 아름다움이 뭘까에 대해 생각해본다거나, 인문교양지식에 가볍게 접촉할 수 있게 해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재미난 삽화가 더해져 책의 매력이 커진다. 동화가 끝나면 시대 배경이나 지식을 한 데 모아 설명해놓은 부분이 있는데 아이들은 그 부분까지는 읽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습 만화를 보면서 만화만 보고 학습 내용은 보지 않는 것과 같은데, 어른의 입장에서는 정작 중요한 건 읽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이 있지만, 책을 즐겁게 읽어오는 것만으로 만족하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노벨의 과학 교실』은 과학자가 꿈인 강두리가 주인공이다. 두리는 과학의 발전이 행복한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 굳게 믿지만, 짝꿍 소담이는 과학기술이 꼭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두리는 소담이가 뭘 몰라서 고리타분한 생각만 한다고 타박하는데, 어느 날 ‘수상한 인문학 교실’을 통해 과거에 다녀오면서 생각이 바뀌게 된다.
두리는 과거로 가 노벨을 만난다. 노벨상을 만든 그 알프레드 노벨 말이다. 노벨은 두리에게 잃어버린 유언장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사실 유언장을 감춘 범인은 노벨이었다. 노벨은 자신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전쟁에 이용돼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껴 유언장을 여러 번 바꿔 쓰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유언장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건 픽션이지만, 실제 노벨이 일부 재산으로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상금을 주라는 유언장을 발표했을 때 스웨덴의 국부가 유출된다는 이유와 친척들이 분배받는 재산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어나 집행되는 데까지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노벨은 광산이나 건설현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다치고 죽는 것을 보며 안전한 화약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지만, 그 발명으로 인해 ‘죽음의 상인’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처럼 인간의 편의와 복지를 위해 만들어진 과학 기술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되는 경우가 많다. 과학에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는 것이다. 이를 수업의 주제로 정했다.
세탁기, 자동차, 냉난방기, 전기, 항생제, 농약, 인터넷 등 문명의 이기라 불리는 것들이 생기고 나서 인류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서 핵심은 기계의 기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으로 인해 어떤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이 있었는지를 추론해보는 것인데, 아직 4학년이라 그런지 어려워했다. 다이너마이트의 좋은 점이 ‘폭발을 일으킨다’가 아니라 ‘안전하게 폭발을 일으킬 수 있어서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것인데 대부분의 사례에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세탁기를 예로 들어주었다.
“세탁기가 발명되고 보급되면서 빨래를 하는데 시간이 엄청 줄어들었어. 예전에는 빨래만 담당하는 하녀를 따로 두어야 할 정도로 많은 시간과 힘을 들이는, 가사노동에서 가장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노동이었거든. 근데 세탁기가 생기면서 빨래하는 시간이 확 줄어든 거야. 근데 빨래는 주로 집에서 누구의 일이었을까?”
“엄마요!” “여자들이요!”
“그래, 그럼 여성들의 일이 훨씬 줄어들었겠지? 그럼 남는 시간 동안 무얼 했을까?”
“놀아요!”
“그래, 그럼 여가를 즐길 수 있었겠네. 취미 활동도 하고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그럼 생각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아지고 사람들과 교류도 많아졌겠지?”
“그럼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여자들도 생겼겠네요.”
“그렇지. 많은 여성들이 세탁기 덕분에 사회생활을 할 시간이 조금은 생겼을지도 몰라. 그럼 여성도 공부를 하고 돈을 벌면 남녀차별이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그럼 안 좋아진 건 뭐예요?”
“세탁이 쉬워진 만큼 사람들이 옷을 많이 가지게 됐겠지? 그럼 빨래를 자주 하게 될 거고. 그러면서 빨래에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이 다시 늘어나게 됐을 수도 있지. 물 낭비나 세제로 인한 수질 오염 문제도 커졌을 테고.”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점검해가며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의 명암을 짚어보았다. 아이들이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에어컨이다. 에어컨 덕분에 실내는 시원해지지만 실외는 더 더워진다는 이야기를 하니 길을 걷다 실외기 바람을 맞고 기분 나빴던 경험을 하며 시끌시끌해진다. 역시 경험한 것을 이론과 덧붙이는 것이 이해력과 공감력을 높이는 길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빨래만은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 나의 일로 고수하고 있는 나로서 세탁은 가장 중요한 문제지만 세탁기 근처도 가보지 않은 아이들은 세탁기 얘기를 백 날 해봐야 아무런 감흥이 없다.
정작 가장 관심 있어 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 대해서 의외로 대답을 못한다는 게 놀라웠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게임과 유튜브 외에 아무 의미가 없고, 인터넷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를 못한다. 연결의 도구로 만들어졌던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고립의 도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꼰대적 걱정이 들다가도 게임에서 친구들과 연결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것도 연결이란 걸 인정하자고 마음먹는다.
“그래서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좋은 거예요? 안 좋은 거예요?”
아이들은 명확한 결론을 원한다. 그러나 나의 수업에서 명확한 결론이 난 적은 별로 없다. 언제나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너는 뭐가 더 좋으니 하고 묻는 게 내 일이다.
“발전은 계속하면 좋겠는데요. 전쟁 무기 만드는 기술 말고 평화를 지키는 기술이면 좋겠어요.”
“저는 지금 이대로 발전 안 하면 좋겠어요. 지금보다 환경이 더 나빠지면 어떡해요.”
“환경 더럽히는 거 말고요. 지금 오염된 거 싹 없애는 기술을 만들면 되잖아요.”
“우주에 가고, 로봇 만들어서 친구가 되면 좋겠어요.”
“로봇이 우리 일자리 다 빼앗아 가면 어쩌냐! 난 싫어.”
“그래도 과학자들이 만드는 걸 막을 수는 없잖아!”
최근 중국에서 유전자 편집 아기를 만든 과학자가 중국법에 의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는 얘기를 해주면서, 인간은 과학을 무한정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도 있지만, 그 능력을 제한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또는 철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해주었다. 미래에 어떤 기술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니 그때를 위해 공부하자고.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 또한 판단이 어렵다. 기술에 대해 모르고 법과 제도에 대해서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그 속에서 어디까지 나는 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세상이 어려워지면 질수록 의사결정권도 멀어져 간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기술과 상품 속에서 나의 판단이 그렇게 중요할까 하는 회의감도 든다. 아이들도 나도 결국 끊임없이 공부하고 대화하며 확신하는 것들의 범위를 줄이고 의심하는 것의 범위를 늘여가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