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수업

재미를 읽다-『올챙이 발가락』을 함께 읽고

by 고양이쌤


주석 2019-11-16 220739.png



『올챙이 발가락』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지음, 양철북 펴냄

수업 대상: 초등 1학년~4학년


올해부터 초등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매달 동시집 한 권을 읽고 동시를 쓰는 시간을 갖고 있다. 시 수업을 늘 하고 싶다 생각은 했지만, 나부터도 시집을 잘 읽지 않고 또 좋아하지도 않아서 망설였다. 누군가 전문적으로 지도해줄 선생님만 있다면 매달 1시간씩 수업을 맡기고 싶었지만 그것도 여러 면에서 어려웠다. 강사를 구할 만큼 여유가 없기도 했고, 마음에 드는 강사를 구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계속 미룰 수는 없어 올해부터 그냥 저질러버렸다. 시를 쓸 줄도 모르고 보는 눈도 없지만, 시라는 게 어떤 규칙이나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고. 하이타니 겐지로가 엮은 『태양이 뀐 방귀』를 읽고 용기를 얻었다. 유치원 아이부터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이 쓴 시를 모은 책인데, 그저 아이들의 이야기를 시라는 형식을 취해 기록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운 재잘거림 속에 기발한 상상력과 따뜻한 마음씨, 세밀한 관찰력을 포착해낸 선생님의 사랑과 노력이 보였다. 내가 하이타니 겐지로처럼 훌륭한 선생님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발상을 놓치지 않을 자신은 있었기에 동시 수업을 시작했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아주 만족스럽다. 아이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시집은 좋아한다. 한 편씩 시간 날 때마다 나누어 읽어도 되고, 서사를 이해할 필요가 없어서 부담이 줄어든다. 짧지만 재미난 표현이 많아 읽는 맛이 난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 입장에서도 손해 볼 건 없다. 기발한 상상력과 입말이 살아나는 리듬감 넘치는 말의 향연 속에서 평소 이야기 책에서는 맛보지 못하는 즐거움을 찾아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시집을 나눠줄 때 좋은 시 2~3편을 골라오라고 한다. 여러 편 골라오는 아이도 있고, 딱 한 편 골라오는 아이도 있다. 골라온 시를 원고지에 필사한다. 원고지 쓰는 법도 익히고, 글씨도 여느 때보다 신경 써서 쓰게 되어 일석이조다. 또 행과 연의 의미도 자연스레 깨우친다. 필사가 끝나면 낭독을 하고 왜 이 시가 좋은지 발표한다. 또 재미있거나 멋진 표현은 무엇인지도 얘기한다.


<태양이 뀐 방귀>, <글자동물원>, <어이없는 놈>, <심심한 시간을 꿀꺽>, <옛 그림과 뛰노는 동시 놀이터>, <세계 명화와 뛰노는 동시 놀이터>, <핫-도그 팔아요>, <나 쌀벌레야>, <여우와 포도>를 읽었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시집은 계간으로 발행되는 동시 잡지 <올챙이 발가락>이다. 지난해 여름 호부터 올해 가을까지 나오는 대로 모두 읽혔다. 한 아이는 “선생님이 주신 시집 중에 <올챙이 발가락>이 제일 싼 데(3,000원) 제일 재미있고 좋은 시가 많아요.”라고 했다. 지금까지만 볼 땐 아이들은 어른이 쓴 시보다 또래 아이들이 쓴 시를 더 좋아한다. <올챙이 발가락>에는 정말 평범한 아이들이 평범한 마음으로 쓴 시가 많다. 그래서 울림이 크다. 일부러 잘 쓰려 꾸며 쓰지 않아도, 너무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툭툭 무심하게 튀어나오는 아이들의 말에 크게 웃기도 하고 감동받기도 한다. 아이들은 또래가 쓴 시를 보며 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한 말도, 내가 한 생각도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에 크게 기뻐하면서 시를 쓴다.


<올챙이 발가락 2018. 겨울>호에 초등학교 1학년들과 시 쓰기 공부를 하는 선생님(이데레사, 반송초등학교)의 수업 일기가 나온다. 동시 쓰기를 하는데 현지라는 아이가 이런 시를 썼다.



공사(반송초 1학년 류현지)


나는 오늘

공사가 보이는 쪽으로 않았다.

오늘은 아쩌씨가 많이 없었다.

갑자기 구급차 소리가 나서

아저씨가 다친 줄 알았다.

또 쉬는 시간에 공사하는 걸 봤다. 어떤 아저씨가

멀 먹는 걸 봤다. 그나마

아쩌씨가 있어서 안 다친 줄

알았다. 다행이다. (2007. 10. 5)



이데레사 선생님은 현지가 알지도 못하는 공사장 아저씨를 걱정하는 마음을 ‘사람다운 마음’이라고 하시면서, 아이들에게 “시는 사람다운 마음을 나타내어서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한다.”라고 말해준다. 아이들과 ‘사람다운 마음’이란 무엇일지 이야기 나눈 후 우리도 그런 마음이 느껴지는 대상을 생각해보자고 했다. 아이들이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고마운 마음, 걱정하는 마음은 대부분 부모님을 향해 있다. 그래서 <올챙이 발가락>에 실린 다른 친구들이 부모님을 생각하면 쓴 시 몇 편을 읽어주고 어떤 마음이 담긴 것 같은지 얘기해본 뒤 우리도 시를 써 보기로 했다.




할아버지 (통영초 2학년 김다영)


우리 할아버지는

나무로 만드는 걸

잘하신다.

한 번은 화분도 만드시고

받침대도 만들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걱정된다.

왜냐면,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쓰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건강하게

그 일을

그대로 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 (상동초 3학년 김지홍)


우리 할아버지가 오시면

담배 냄새가 난다.

할아버지 집에 가니

할머니가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등을 때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바다에서

해마와 물고기랑 미역을

많이 잡아온다.

그날은 해산물 파티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해산물 파티할 때는

장하다고 때리고

담배 피울 때는

화난다고 때린다.




우리 아빠 금손 (죽림초 3학년 김민서)


우리 아빠는 담배 안 피운다.

우리 아빠는 술도 안 마신다.

우리 아빠는 뭐든지 척척 잘한다.

우리 아빠는 만들기도 잘한다.


잘하는 게 많아서

엄마가 푹 빠졌나보다.

난 아빠 하나는 잘 만났어!




할머니 (광도초 5학년 김승완)


할머니는 나의 어머니

할머니가 모든 일을 해주신다

할머니가 밥도 해주시고

할머니가 반찬도 해주신다

그리고 나와 같이 있으신다

우리 할머니가 짱이다!


아이들은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시를 많이 썼다. 부모님에 관한 시는 생각보다 다양한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 아빠에겐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다, 엄마에겐 밥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조금 안타까웠다. 평소 부모님의 보살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다 보니, 또는 자신을 야단치고 단속하는 역할이다 보니 특별한 감정을 느끼거나 기억에 남는 경험을 가진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가끔 보지만 볼 때마다 무한한 애정을 받다 보니 더 애틋한 마음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승완이의 시 <할머니>를 읽었을 땐 울컥했다. 승완이는 어릴 때 어머니와 헤어졌다. 아이의 사연을 알기에 '할머니는 나의 어머니'라고 첫 문장을 썼을 때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할머니에 대한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큰지 느껴졌기에 눈물이 나왔다. 승완이는 이 시를 쓰고 아주 즐거워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읽기와 쓰기 부담이 확 줄어든다는 점이 가장 즐거운 일일지 모른다. 나에겐 시를 쓰면서 다양한 어휘와 표현을 익히고 사용하게 된 점이 큰 수확이다. 또 필사와 낭독의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해서 나도 좋다. 이유가 뭐든 무언가를 읽고 쓰는 걸 즐거워하는 걸 보는 건 희귀한 일이니까. 아이들이 1년간 쓴 시를 모아 동시집을 만들어 줄 예정이다. 아이들에게 올해 1년은 시인이 된 해로 기억되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