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만든 이야기

재미를 읽다-『와우의 첫 책』을 함께 읽고

by 고양이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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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의 첫 책』 주미경 지음, 김규택 그림, 문학동네 펴냄

수업 대상: 초등 3, 4학년



나는 어린이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어린이 문학에 대한 배움이 없었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무엇보다 어린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경험이 없었다. 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책들은 세계명작이라 불리는 500쪽이 넘는 두터운 소설책들이었다. 전셋집 살던 시절, 주인집 언니가 대학 간다고 버려놓은 전집을 주워와서 닳고 닳도록 잃었던 기억이 난다. <작은 아씨들>, <몬테크리스토 백작>, <삼총사>, <빨강머리 앤>, <야성의 부름>은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이야기였다. 사촌 오빠 집에 있던 추리소설 전집도 무한 반복 읽었던 책 중 하나다. 코난 도일 시리즈,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는 내가 평생 독서가로 살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준 책들이다.


진정 어린이책이라 불릴 수 있는 동화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서른이 넘어서다. 독서지도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어린이들과 함께 읽으며 공부하기 좋은 책을 찾기 위해 읽기 시작했다. 수업하기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까? 어린이들이 마냥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수업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내용이나 구조도 단순하고, 특정한 문제의식이나 주제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주로 각종 기관에서 추천하는 도서를 찾아보고 내가 하고 싶은 수업 주제와 맞는 책을 골랐다. 예를 들어 '자유'라는 주제를 다루고 싶다면 <맘대로 마을: 이환제 지음, 파랑새 펴냄>을 선정하고, '다름'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싶다면 <행복한 늑대: 엘 에마토크리티코 지음, 봄볕 펴냄>를 선정하는 식이다.


책을 고르고 수업 주제를 정하는 형태가 아니라, 수업 주제를 정하고 책을 고르는 게 편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들이 독서의 순수한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겼다. 책에는 늘 교훈이나 주제가 있어야 하고, 작가의 의도를 찾아야 하고, 다 읽은 후 무언가를 깨달아야만 하는. 나는 그래서 책을 좋아했었나? 아니다. 그저 읽는 게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 자체로, 인물 자체로, 그 인물이 겪는 사건을 간접 경험하는 것 자체로 즐거웠다. 그런데 나는 책을 가르치는 도구로만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마 책을 좋아해서 독서지도사가 되기로 결심한 모든 선생님들이 한 번은, 아니 수업하는 내내 겪는 갈등과 고민일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어준 책 중 하나가 바로 『와우의 첫 책』이다. 『와우의 첫 책』은 6개의 이야기가 모인 단편집이다. 여섯 이야기들은 아주 조금씩 서로 연결이 되어있다. 첫 번째 이야기 <와우의 첫 책>에 등장하는 작가 구렝 씨는 자신의 대표작이 '킁 손님과 국수 씨'라고 말한다. 『와우의 첫 책』의 두 번째 단편 제목이 <킁 손님과 국수 씨>이다. 또, 한 단 편에 나왔던 등장인물이 다른 단편에도 살짝 등장한다. 이런 소소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며 읽는 게 이 책의 묘미 중 하나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의 첫 번째 반응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재미있어요."이다. 그럼 나는 "무슨 소린지 몰라도 돼. 근데 이 이야기 속에는 수수께끼가 있어. 이야기가 조금씩 연결되는 게 있거든." 하고 말해준다. 그럼 아이들은 그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기 위해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책을 읽어오고, 어느새 책의 매력에 담뿍 빠져온다.


"쌤, 저는 수수께끼를 다 풀었어요." (의기양양하다)."

"오~ 대단한데, 그럼 답을 말해볼래."

"<어느 날 뱀이 되었어>에 나오는 머리 다친 뱀 있잖아요. 그 뱀이 뒤에 <고민 상담사 오소리>에도 나와요!"

"맞아 맞아! 또 다른 거 찾은 사람 있니?"

"<와우의 첫 책>에서요. 와우 책을 산딸기 출판사에서 내잖아요. 그 대표가 도야 씨인데, 뒤에 <당깨 씨와 산딸기 아파트>에도 도야 씨가 나와요."

"구렝 씨가 딱따구리 집 앞에서 <킁 손님과 국수 씨>를 썼다고 했잖아요. 근데 <고민 상담사 오소리>에서 딱따구리가 나온데, 같은 딱따구리 맞을까요?"


이렇게 숨은 등장인물 맞추기를 하며 수업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책의 비밀을 푼 것에 아주 만족하며 책을 이해해냈다는 기쁨을 느낀다. 나는 아이들에게 한 가지 수수께끼를 더 내어본다.

"근데, <킁 손님과 국수 씨>에서 있잖아. 킁 손님은 도대체 누구일까?"

아이들은 고민하다 이런저런 답을 내본다. 여우가 둔갑한 거 아닐지, 사람인데 얼굴을 다친 사람 아닌지, 아니면 비염이 심해서 킁킁 소리를 내는 건 아닌지. 한 아이는 사람이면 도토리를 밥값으로 낼 리가 없다고 하고, 또 다른 아이는 '자연인'같은 사람이라서 돈이 없거나 돈을 모를 수도 있다고 반박한다. 나는 슬며시 내 의견을 말해본다.

"쌤 생각엔, 이야기 첨에 국수 씨가 텔레비전 보고 있을 때 멧돼지가 마을에 내려온다는 뉴스가 나왔잖아. 혹시 멧돼지 아닐까?"

"어 맞는 거 같아요. 아빠가 멧돼지는 도토리 먹는다고 했어요."

"맞아요. 지난번에 산에 갔을 때 내가 도토리 주우니까 엄마가 도토리 멧돼지 밥이니까 놔두고 가자고 했어요."

"산에서 도토리 가져오는 사람이 많아서 멧돼지가 밥이 없어서 계속 사람 사는 데로 내려온대요."

요즘 부쩍 도시로 내려온 멧돼지가 사살되었다는 뉴스를 많이 본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 때문에도 그렇고. 아이들은 저마다 본 뉴스를 말하며, 멧돼지도 배가 고팠을 거라고, 그래서 국수가 먹고 싶었을 거라고 얘기한다.


『와우의 첫 책』 안의 여섯 단편 모두 내가 평소 읽어오던 어린이책과는 다른 문법으로 쓰인 듯했다. 직접적이지 않은 표현, 비유와 상징, 시처럼 느껴지는 대사, 분명하지 않은 결말이 안고 있는 여운. 나는 이 모든 요소가 어린이 독자에 대한 존중으로 느껴졌다.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 것, 독자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될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이야기가 가진 힘이 아닐까. 난 아이들이 이 힘을 실현해보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릴레이 이야기 만들기'를 해보기로 했다.


와우는 자신의 이야기를 읽은 독자의 비평을 받아들여 이야기를 고쳐나갔다. 그래서 책의 첫 페이지 작가의 사인 옆에 '웃고 울면서 이야기를 같이 만들어 준 친구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 썼다. 우리도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내가 시작한 이야기를 친구가 마무리 지어주는 릴레이 쓰기! 먼저 단편 <와우의 첫 책>에서 와우가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함께 분석했다.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는 등장인물이 나오고 주인공에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긴다. 중간에는 인물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치게 되는데, 이때 타인의 도움을 받거나 지혜나 힘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또 더 큰 문제에 부딪히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반전이 있을 수도 있으나 어쨌든 이야기는 끝이 난다. 해피 엔딩이 될지 새드 엔딩이 될지는 마지막 주자가 결정한다.


아이들은 여느 때보다 열심히 글을 쓴다. 친구가 시작한 이야기를 내가 망쳐버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글을 쓸 때보다 더 노력한다. 어떤 아이는 글을 시작한 친구에게 묻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해도 돼?", "너 알아서 해. 나는 괜찮아!" 이렇게 서로 눈치를 보기도 하고, "내가 니 이야기 완전 멋지게 만들어 준다!", "야, 망치기만 해 봐!"하고 큰소리치기도 한다. 이야기를 쓰는 내내 시끌시끌 웃음이 멈추지 않고, 어떤 아이는 자기가 시작하지도 않은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너무너무 궁금하다며 발을 동동 구른다. 『와우의 첫 책』으로 수업한 2년 동안 변하지 않는 풍경이다.


릴레이 쓰기가 끝나면, 최초로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이 완성된 자기 글을 낭독한다. 아이들의 상상력엔 브레이크가 없다. 이렇게 될까 싶으면 다음 사람에 와서는 완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그렇지만 완성된 이야기 안에는 나름의 주제도 있고, 반전 요소도 있고, 촌철살인도 있다. 아이들은 혼자 이야기를 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같이 썼을 때 훨씬 즐거워한다. 여러 사람이 힘을 보태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배우는 건 덤이다.


나는 『와우의 첫 책』을 읽으면서 순수한 독서의 즐거움, 이야기가 주는 환상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학습만화와 교양독서에 매몰되어 문학의 맛을 경험해보지 못한 어린이 독자들에게도 같은 발견이 있길 바라며 내년에도 아이들에게 이 책을 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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