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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Dec 22. 2020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오다

고양이들을 위해 연 책방

무책임한 사람이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벌어지는 일

마당이 있는 작은 단독주택을 갖게 됐다. 삶의 절반은 주택에서, 절반은 아파트에서 보냈는데 주택에서 보낸 절반의 기억이 훨씬 행복했던 덕에 늘 마당과 주택을 꿈꿨다. 꼭 마당이 있어야 했던 이유는 나의 비인간 가족들 때문이다. 나는 네 마리 고양이의 집사다. 고양이는 아파트에서 키우기에 나쁜 동물은 아니다. 서른 살 무렵  부산의 사설 보호소에서 두 마리의 고양이를 1년 터울로 입양했다. 내 고양이들은 집사를 닮아 잠이 많은 아이들이었고, 우다다도 심하지 않았다. 창밖으로는 큰 나무도 있었고 새들도 많아서 그리 미안하진 않은 환경이었다. 미안함은 몇 년 뒤 이사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사한 곳은 빌라였는데 창문으로 볼 것이 다른 빌라 벽밖에 없는 곳이었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비염이 더 심해지고 털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던 남편 때문에 고양이 방을 따로 두고 있었기에, 내 죄책감은 더욱 커졌다.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당시 나는 글쓰기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구조한 고양이를 남편 몰래 그곳에서 키우고 있었다. 태풍에 갈 곳 없던 고양이를 며칠만 데리고 있는다고 하던 게 1년을 넘기고 있었다. 품종 고양이니까 입양을 쉽게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데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피를 토해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이미 몸이 많이 상한 아이였다. 아픈 아이를 입양 보낼 수는 없었기에 결국 내가 거두게 되었다. 게다가 혼자는 외롭지 않을까란 대책 없는 생각으로 데려온 고양이가 하나 더! 결국 공식적으로 두 마리 집사, 비공식적으로 네 마리 집사였던 것이다.

교습소 환경은 더 나빴다. 아예 창문이 없었다. 또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언제나 탈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고양이들은 언제나 유리 현관문 밖을 궁금해했고, 둘 중 한 마리는 이미 프로탈출냥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탈출냥이 가는 곳은 옆 학원. 피아노 학원이었는데, 그곳 선생님들이 워낙 예뻐하고 맛있는 간식도 많이 주니 문만 열리면 탈출해서 그 학원으로 갔다. 굉장히 섭섭하기도 했었는데, 그래도 내가 자리를 비울 때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들이 고양이들을 돌봐주셨기에 안심하고 키울 수 있었다. 다른 한 마리는 워낙 겁이 많아 탈출하지는 못했지만, 어린 고양이의 호기심을 채워줄 바깥 구경을 못하는 환경이란 것이 너무너무 미안했다.

책임지지 못할 만큼 식구를 늘리고, 좋지 못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 또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것, 이 모든 게 내 어깨를 계속 짓누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나도 남편도 고양이도 모두 불행해질 것 같아 하루하루가 무거웠을 때, 그때 이 집을 만났다.


마당집, 로망을 이루다

내가 사는 곳은 통영의 신시가지에 해당하는데, 주택을 찾아보기 힘든 아파트 동네다. 이 동네에서 특이하게 열 채 정도의 주택이 모여있는 곳, 일명 ‘죽림 원룸촌’이라 불리는 곳이다. 3층 높이 빌라가 수십 채 모여있는 사이사이 오렌지색 벽돌 집들이 끼어 있는 모양새다. 단독가구가 사는 형태의 주택 중 유일하게 1, 2층이 분리되어 두 가구가 살 수 있는 주택이 매물로 나왔을 때 나는 내적 환호를 질렀다.

그림이 나왔다. 1층에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면서 고양이를 키우고, 2층은 남편과 살림집을 만들자. 1층에는 조그마한 마당도 있으니 가끔 고양이들 산책도 시켜주고, 창문 밖으로 새도 보고, 길냥이도 보고,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는 것도 보여주자. 나에게는 계획이 있었고, 이제 대출만..!

영끌이라는 말을 몰랐을 때지만, 정말 영혼을 끌어모았다. 빚으로 시작한 결혼이었기에, 여전히 우리에게는 빚이 있었고, 그 빚이 좀 더 생긴다고 해도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빌릴 수 있냐 없냐의 문제였을 뿐. 30년 정도면 충분히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내 나이 생각은 못 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나는 그 집을 사고 싶었다. 내 어깨에 올라타 나를 의연히 짓누르고 있는 죽도록 귀여운 고양이 네 마리를 그곳에 자유롭게 풀어놓고 싶었다. 남편 또한 고양이와(이왕이면 고양이에 미친 부인과도) 분리된 삶을 원했기에 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주었다. 남편이 회사원이 아니었다면 빈곤한 개인사업자인 나로서는 그 많은 돈을 빌리기란 불가능했다. 모든 골치 아픈 서류와 은행 업무, 부동산 업무는 남편에게 일임하고, 나는 고양이들과의 해피 라이프만 꿈꿨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두 번째 로망도?

제1금융권에서는 차였지만, 제2금융권에서 우리의 소망을 받아주어 대출이 해결되었다.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뭐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났다. 그래서 하나 더 꿈을 얹었다. 묻고 더블로 가!  책방도 해보자!

고양이 사랑엔 못 미치지만 나의 책 사랑은 오래된 병이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이삿짐센터 직원의 한숨을 부를 만큼 책을 사는 걸(읽는 것과는 다른 문제) 좋아했다. 결혼과 동시에 통영으로 이사오면서 외로웠던 나는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비슷한 처지의 몇몇 사람이 모인 친목 모임에 가까웠는데,  몇 년을 하고 나니 모임도 많아지고 사람도 늘었다. 더 다양한 모임과 강연, 행사 등을 치르기에는 늘 장소가 아쉬웠다. 그 아쉬움도 해결하고 책도 마음껏 사 볼 수 있고, 또 좋은 책을 소개하고 팔 수도 있는 곳. 책방이 딱인걸!

가족들은 무책임하고 자기 몸 하나 돌볼 줄 모르는 주제에 고양이를 네 마리씩이나 키우는 나를 못 미더워했기에 책방을 여는 것에 반대했다. 반대한다고 포기할 나였다면 고양이가 네 마리로 불어나지는 않았겠지. 2017년 2월 2일 책방을 열었다. 이름은 ‘고양이쌤 책방’. 처음에는 너무 지적이지 않은 이름 아닌가 생각했는데, 고양이가 사는 책방이고,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온 사람이 연 책방이란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이름이라 차츰 마음에 들어갔다.

자. 이제 다 되었다. 인테리어도 끝났고, 이사도 했다. 책방도 열었다. 이제는 뭐다? 행복하게 살 날만 남았다 이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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