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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Dec 24. 2020

난 원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오

고양이와 책을 위한 인테리어

그렇다. 행복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고양이와 책이라니. 너무 잘 어울리는 한 쌍 아닌가. 무용하고 아름답기로 이만한 한 쌍이 없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 집을 샀기에 인테리어 할 돈이 없었다. 어쩌지? 남편 퇴직금이 있었네! 데헷:P 개인사업자는 퇴직금 같은 거 없으므로 남편의 퇴직금을 미리 정산 받아 인테리어를 했다. 이로써 남편의 노후는 내가 책임져야 할 막강한 의무를 갖게 됐으니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누구 좋으라고? 고양이 좋으라고!

인테리어의 핵심은 고양이친화적 공간을 만드는 것. 1층은 방 세 개, 거실과 주방, 화장실 두 개와 다용도실이 있는 전형적인 아파트 구조다. 교실로 쓸 작은 방 하나를 빼고는 모두 문을 없앴다.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방은 내 서재로 꾸미고, 남은 방 하나는 고양이 놀이방을 만들었다. 놀이방이라 해봤자 별 건 없고, 예전에 고양이들을 위해 직접 만든 이층 침대 겸 캣타워를 놓아주었을 뿐이지만, 누구나 그 방에 들어가면 “여긴 고양이 방인가 봐요.”한다. 거실은 팔 책을 전시하기 위해 양 벽에 전면 책장을 달았다. 전면 책장 위로 고양이가 걸어 다닐 수 있는 캣 테라스를 삼면에 설치하고 거실 창 앞에 캣타워를 만들었다. 캣타워를 타고 올라가면 거실을 빙 둘러 걸어 다닐 수 있도록. 거실 한 가운데는 세로 2m, 가로 70cm의 긴 책상이 있는데, 이곳은 고양이들의 런웨이다. 독서모임을 하고 있으면 꼭 책상에 올라와 가운데를 유유히 걸어 마음에 드는 손님의 책 위에 드러눕기 일쑤다. 제발 알레르기 있는 손님이 낙점 당하는 일만 없길 바랄 뿐이다.     


책방 역할을 하는 거실



고양이 놀이방

마지막 인간의 영역

최근에는 내 서재 창 앞에 두 개의 캣폴을 놓았는데, 이로써 온전히 인간의 공간이라 할 만한 곳은 화장실과 교실밖에 남지 않았다. 얼마 안 되는 그 공간들마저 침범 당하기 일쑤라 늘 조심스럽다. 저녁 8시(마지막 수업이 끝나는 시간)가 다 되었는데도 내가 계속 수업을 하면 룬은 꼭 교실 문 앞에 와서 “냐아앙” 울어댄다. 문 열면 바로 머리부터 들이미는데, 막고 못 들어오게 하면 조금 서운해 하긴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돌아간다. 어쨌든 한 번은 얼굴을 보여줘야 안심하는 것이다. 살룻은 아무 말 없이 교실 문 앞에 머리를 대고 있다가 문이 열리면 잽싸게 교실 안으로 질주한다. 들어와서 하는 거라곤 교실을 한 바퀴 도는 것인데, 그것만 하게 해주면 스스로 교실 밖으로 나간다. 영역 순찰인가? 우란은 가끔 아무도 모르게 들어와서 교실 책장 꼭대기에서 잠드는 바람에 내가 모르고 문을 닫고 나가버려 갇힌 적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책장 위로 못 올라가게 아래 부분을 잘라내 버렸다. 랏샤는 기웃거릴 뿐 겁이 많아 들어오지는 못한다. 랏샤에게 교실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내 서재인 척하는 고양이 휴식방


책방인데 책도 좀 생각해주라(책무룩)

책방인데 책이 주인공이 아니라 조금 미안하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네 개의 책장이 있는데, 그곳도 캣타워가 되었다. 네 마리 고양이 중 몸이 얇고 가벼운 우란이만 올라갈 수 있는데, 까칠한 성격의 우란이는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항상 책장 꼭대기에 올라가 자기만의 시간을 보낸다. 문제는 우란이의 털과 토. 책장 곳곳에 고양이털이 끼이고, 간이 안 좋아 사료토를 자주 하는 우란이 때문에 끝없이 고통 받아 누렇게 쭈그러진 책들도 다수. 책장의 책들은 파는 책이 아니라 내 책이기 때문에 다행이지만, 아끼는 만화책(이정애 작가님의 『열왕대전기』, 현재 절판)이 그 꼴을 당했을 때는 우란이가 더는 책장에 못 올라가게 방책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은 책보다는 고양이를 생각하게 된다. 책은 다시 사면 되지만(더러워도 참고 읽으면 되지만), 고양이의 삶은 한 번 뿐이니까.     


다행히 파는 책에는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종이를 좋아하는 공통된 성품을 갖고 있으니 종이만 보면 뜯고 긁고 깔고 앉고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참 기특하게도 파는 책에는 그러지 않는다. 파는 책 위로 걸어 다닐 때는 책을 안 밟으려고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뜨거운 눈물?이 샘솟는다.  

우란이의 낮잠을 방해하지 마시옹!

    

인간을 위한 최고의 복지=귀여움

무엇보다 책방 고양이들을 위한 최고의 복지는 박스가 아닐까? 매일매일 도착하는 신선한 책 박스는 고양이들의 최애템이다. 새 박스에 들어가려고 줄을 서기도 하는데 첫 개시는 늘 까칠 우란이고, 두 번째는 살룻 또는 룬, 마지막은 늘 막내 랏샤다. 가끔 랏샤는 박스 옆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 새 박스가 오면 숨겨놨다가 다른 애들 몰래 랏샤에게 가장 먼저 들어갈 기회를 주기도 했다. 때로는 박스를 버리지 않고 여기저기 늘어놓는데, 그래서 책방이 늘 너저분하다. 여러모로 인간에겐 좋은 공간이 아니다 싶다가도, 귀여운 것에 늘 목마른 인간들에게는 행복해하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것이 최고의 복지가 아닌가 싶다.


우란: 새 박스는 일단 내 꺼! 줄을 서라냥!
살룻: 그럼 난 쓰레기 박스라도 들어가 있어야지 뭐...
랏샤: 거실 캣 테라스 꼭대기, 널부러지기 딱 좋은 곳이다냥
룬: 지켜보고 있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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