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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Dec 29. 2020

풀 뜯으면 기분이 조크든여

고양이에게 마당을 허하라

나는 식물을 기르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선인장을 말라죽게 할 정도로 무심하다. 나 혼자 산다면 마당이 있는 집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편 또한 마당 있는 집에 살아본 적도 없으니 둘 다 마당에 대한 로망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마당이 있었으면 했던 이유는 정말 단 하나, 고양이 때문이다. 집안이 당연히 깨끗하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자유롭게 드나들면서도 안전한 마당도 함께 있다면 묘생의 질이 더 높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오래 전 인테리어 잡지에서 고양이를 위해 중정을 따로 만들어 준 집을 보았고, 언젠가 나도 주택에 이사가면 고양이들을 위한 마당을 꾸며주리라 결심했었다.

 

그러나 이사 온 집 마당은 사방이 열려있는 구조라서 고양이들에게 내주기는 어려웠다. 고양이들 또한 열린 공간을 자기 영역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당에 산책을 시켜줄 수는 있겠지만 나는 고양이 산책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밖을 궁금해하고 밖을 바라보고 싶어 하는 동물이지 밖에 나가고 싶어 하는 동물은 아니라고 배웠다. 내 경험도 비슷하다. 룬과 우란, 랏샤는 문을 열어놔도 기웃기웃 댈 뿐이지 딱히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궁금하긴 한 것 같은데 왠지 너무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 마당은 바라만 보는 곳으로 하면 되는데 문제는 살룻이었다.     


살룻이 길고양이 시절 살던 곳은 마트 뒤편에 있는 누군가의 큰 텃밭이었다. 구조자 말로는 6개월 정도 그곳에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캔이나 간식을 얻어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살룻은 마당을, 정확히는 풀밭을 너무도 사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마당을 내내 바라보더니 결국 탈출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중문 옆에 앉아 있다가 문만 열리면 탈출을 일삼았다. 물론 현관문이 있으니 탈출 길이 막히기 일쑤였지만 불굴의 의지를 갖고 기다렸다. 가끔 여러 사람이 들어오다 보면 중문이 열렸을 때 현관문도 열려 있게 될 때가 있다. 백분의 일의 확률, 그 순간을 위해 살룻은 인고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찰나를 놓치지 않고 손님 발 사이를 가로질러 뛰어나가는 살룻! 처음에 그 모습을 봤을 때는 간이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단골손님들도 더는 놀라지 않게 되었다. 그래봤자 그가 가는 곳이라고는 마당이었기에.     


살룻이 하고 싶은 일은 두 가지. 첫째, 마당에 가서 풀을 뜯거나 풀 위에 뒹굴거나. 둘째, 마당 고양이 밥 훔쳐 먹기. 사자도 가끔 풀을 먹는다 했던가. 그런데 캣잎도 아닌데 왜 그렇게 풀을 뜯고 싶어 하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혹시 화분을 좀 많이 놔두면 마당에 대한 관심이 끊어지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해봤지만, 살룻은 오로지 마당의 잡초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온갖 화분을 갖다놓아도 살룻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왜 꼭 마당의 풀이어야 하는가? 살룻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풀 뜯으면 기분이 조크든여.”     


하루에도 몇 번씩 탈출을 감행하는 통에 온 신경이 문에 집중되어 있을 때도 있었다. 글쓰기 교실에 오는 아이들이 문을 제대로 닫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게 중에는 살룻이 탈출하고 내가 잡으러 가는 꼴이 재미있어서 일부러 열어놓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무리 문단속을 강조하고 애걸해도 소용이 없었다. 살룻이 눈깜짝할 새 나가버리니 어쩔 수 없기도 했다. 나중에는 정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고양이를 야단칠 수도 훈련시킬 수도 없는 노릇. 오히려 안전하게 밖에 나갈 수 있게 해주면서 서서히 흥미를 끊게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하루 5분 산책.     


하네스를 사서 본격 산책을 시작했다. 고양이는 몸이 유연하고 머리가 작아 하네스가 잘 풀리기 마련이라 그리 안전하진 않지만, 되도록 꽉 잡아매고 줄을 짧게 잡고 마당으로 데려갔다. 여기저기 풀을 뜯고 풀밭에 뒹굴뒹굴하면서 햇살을 즐기고 나면 나름 만족했는지 더는 탈출 시도를 하지 않았다. 살룻은 마당을 벗어나 산책하고 탐색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고 나무 냄새 맡고 풀을 뜯고 싶은 거니까 아주 천천히 움직였고 냄새를 다 맡으면 그 자리에서 뒹굴거리거나 앉아있었다. 갑작스런 돌발행동이나 겁을 먹고 도망가는 성격의 고양이는 아니니 잃어버릴 위험은 적었다. 그래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살룻을 다 안다고 말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살룻은 만족했지만 나는 더 불안했다. 살룻이 하네스가 답답하면 몸을 틀어서 풀기도 했고 나중에는 하네스를 아예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더 안정적인 상황에서 마당을 즐기게 해주고 싶었다.     


방법을 생각해 봤다. 

나: 벽을 높이 쌓아 나갈 수 없게 만들어주세요!

인테리어 사장님: 고객님 집 구조상 불가능합니다.

나: 흠... 그럼, 그물을 치면 어떨까요?

인테리어 사장님: 고양이 다 뜯습니다. 그리고 여기를 야구장으로 만들 셈입니까...

나: 흠... 그럼, 마당에 사방으로 막힌 유리 건물을 하나 짓는다면요?

인테리어 사장님: 비용...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허가부터 받아야 됩니다.

털썩...     


결국 마당에서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것은 나의 상상 회로 속에서만 하는 걸로 마무리 지었다. 살룻은 잠깐씩이라도 산책을 시켜주는 것으로 탈출 욕구를 채우게 하는 수밖에. 다행히 이듬해 겨울, 살룻이 여느 때처럼 탈출을 감행하다가 현관문 밖과 안의 온도차를 깨닫고 서둘러 뒤돌아 들어오는 것을 목격했다. 아.. 너도 추우면 나가기 싫구나... 같은 이유로 어마어마하게 더웠던 그해 여름, 살룻은 에어컨과 실내의 소중함을 깨닫고 한여름에도 탈출을 끊기 시작했다. 


주택에 이사 오고 첫 해는 부지런히 탈출하더니 갈수록 횟수가 줄어들어 요즘은 아주 뜸하다. 매일 산책이 일주일에 한 번이 되고, 한 달이 되었다가 영영 끝나버렸다. 살룻은 계절을 알았는지 여름과 겨울엔 아예 탈출 생각도 하지 않고, 봄과 가을에는 나가고 싶은지 창에 꼭 붙어 산다. 작년에 풀 뜯다가 이빨이 빠진 후로는 산책은 부러 시키진 않는다.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산책이라 늘 마음이 불안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엔 안쓰러운 마음도 있다. 나이가 들어서, 기력이 전보다 떨어져서 탈출을 안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정열적으로 탈출하던, 마당에서 한없이 빛나던 살룻이 살짝 그리운 요즘이다.     



날 좀 풀어줘...
니나니뇨~ 발걸음도 가벼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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