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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Dec 31. 2020

셀럽 고양이의 탄생

우리는 고양이 사원!

종종 네이버 카페 <고양이라서 다행이야>에 들어가 입양 홍보 글을 읽곤 한다. 온갖 사연을 가진 고양이들을 보면서 가끔은 ‘오냥이 집으로 만들어 봐?’ 할 만큼 마음이 가는 아이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다 입양 조건을 읽어 보면 뜨끔하게 된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나는 고양이를 입양하기에 좋은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구조해 입양 보내는 사람들은 입양 가는 아이들이 잘 살길 절실하게 바라는 사람들이기에 입양 조건이 까다로울 때가 많은데, 가장 우려하는 사례가 산책냥, 외출냥, 매장냥, 베란다냥 등으로 키워지게 되는 것일 테다. 그렇다. 여기서 바로 ‘매장냥’. 그것이 내가 불량 입양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의 고양이들은 매장냥이들이다. 책방이라는 상업 공간에 살고 있고, 내가 퇴근할 때 집으로 데려가지 않고 책방에서 자니까 빼박 매장냥이다. 독립적인 성향에 외부인을 꺼려하는 대부분의 고양이들 성향으로 볼 때 별로 좋지 않은 환경일 수 있다. 또 들락날락하는 손님들이 있으니 탈출도 걱정된다. 그럼에도 내가 집이 아닌 책방에서 아이들을 키우기로 결심한 건 순전히 나 때문이다.     


처음 고양이를 키울 때부터 잠은 같이 자지 않았다. 나는 잘 때만 예민한 사람이라서 또, 수면의 질이 하루를 좌우하는 사람이라서 처음부터 같이 잘 생각이 없었다. 첫째 고양이 룬을 입양했을 때 걱정되어 며칠을 거실에서 같이 자긴 했으나, 룬 또한 나와 같이 잘 생각이 없었다. 자는 동안 침실 밖에서 울거나 하는 일도 거의 없었기에 우린 잠은 따로 자는 사이가 되었다. 당시 집에서 공부방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는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고양이와 함께였다. 둘째 우란이를 데려오면서도 그건 변하지 않은 우리의 규칙이었다. 룬은 우란이와 사이좋게 같이 자고, 나는 남편과 사이좋게 같이 자는 걸로. 어차피 우리는 같이 자는 사이가 아니니, 고양이와 최대한 오랜 시간 함께 있으려면 내가 일하는 곳에 고양이도 함께 있는 것이 답이었다. 그래서 네 마리 고양이들은 고양이쌤 책방의 사원이 되었다.     


살룻은 구조했을 때부터 사람을 좋아했고, 랏샤는 태어날 때부터 시선을 즐기는 고양이였다. 살룻은 이미 글쓰기 교습소와 피아노 학원의 뭇 인간들을 장악한 경력이 있으며, 랏샤는 인간 가족과 엄마냥, 아빠냥, 형제자매냥들에다가 개삼촌까지 함께 자라서 그런지 낯가림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다가가는 게 문제랄까. 교습소에 학생이나 학부모가 오면 무릎에 앉는다거나 궁둥이를 얼굴에 들이대는 통에 아이들이 글쓰기를 못할 정도였다. 저리 가라고 밀어내면, ‘응? 나를 거부한다고?’ 하며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기까지.      


랏샤: 영업중이다냥. 거의 다 넘어왔다옹.



랏샤야.. 그 손님 알레르기 있으시대.....


꼭 거기 앉아야만 했니....


프로 영업냥 살룻과 랏샤는 걱정이 없었지만, 룬과 우란이 걱정이었다. 그런데 웬걸? 기우에 불과했다. 룬은 처음에는 사람이 오면 숨거나 피했지만, 어린이들에게는 다가갔다. 특히 자기를 잘 쓰다듬어주는 아이가 오면 마중을 나가기도 했다. 원래 다정한 성품인 건 알았지만, 아이들에게까지 관대할 거라곤 생각을 못 했는데 의외의 발견이었다. 우란은 관종임이 밝혀졌다. 책방 거실 삼면에 캣워커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곳의 가장 정중앙은 항상 우란이 차지였다. 독서모임이라도 할라치면 꼭 그곳에 올라가 어좌에 앉은 임금처럼 비루한 인간들을 내려다본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괴성을 지르며 자신을 쳐다보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안 봐주고 독서모임에 몰입하면 갑자기 책상으로 뛰어내려 깜짝 놀라게 한다. 긴 거실 책상을 런웨이처럼 활보하며 손님들 책이며 노트북이며 다 밟고 다니고, 궁디팡팡을 원할 때까지 해 주지 않으면 참지 못하고 벌컥 짜증을 부리는 성격 나쁜 셀럽 우란이 때문에 곤란할 때가 많지만, 어쨌든 고양이 사원들이 손님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손님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죄송하다....:P)     



룬: 모델 경력 10년째다옹


우란: 날 봐... 제발 날 좀 보라구우~~...


랏샤: 내 사인은 안 받느냥?


랏샤: 닝겐들아. 골 아프게 글 쓰지 말고 귀여운 날 보라냥


책방에는 글쓰기 수업을 하러 오는 아이들이 많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꼭 묻는 질문이 있는데, “혹시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거나, 고양이를 무서워하지는 않을까요?”이다. “아휴, 너무 좋아해서 탈이죠. 고양이 때문에 수업 꼭 가고 싶다고 하네요.”(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 아이들 중 대부분은 평생을 아파트에만 살아서 반려동물과 함께 해본 경험이 없다. 책 읽기, 글쓰기는 무섭고 싫지만 고양이들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아이들은 수업에도 긍정적으로 참여하기에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일이다. 아이들 또한 책방에 와서 고양이와 만나며, 나보다 작은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우고, 비인간 친구를 만드는 경험을 한다. 이것이 고양이 사원들의 가장 큰 역할이다. 고양이들 또한 아이들의 손길이 싫지 않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예쁘다 예쁘다 하니 셀럽 고양이로서의 삶을 한껏 즐기고 있다. 또 바쁜 나를 대신해 에너지 넘치게 낚싯대를 흔들어주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살룻: 내 포즈 어때?


야! 정말 멋진 포즈다! 찍어 빨리!



나의 고양이들이 이토록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라니. 이토록 관심을 원했었다니! 책방에서 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만약 책방이 번화가나 관광지에 자리 잡고 있어 불특정 다수의 손님이 빈번히 오고 가는 곳이었다면 고양이를 살게 하진 못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책방엔 손님이 거의 없다. 인테리어가 멋진 곳도 아니라 사진 찍기도 별로고, 보유하고 있는 책도 내가 좋아하는 책만 있기 때문에 다양한 책을 구경하기에도 별로다. 처음부터 독서모임과 고양이 친화적인 공간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배우러 오는 아이들과 독서모임 회원들이 대부분이라 누가 언제 몇 명이나 책방에 올지 거의 예상 가능하다. 게다가 2019년부터는 아예 회원제,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기에 갑자기 누군가가 들이닥치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고양이에게도 내게도 안전한 책방이 되었지만, 초기에는 그렇지 못한 일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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