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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Jan 04. 2021

거기 고양이 카페 맞죠?

책방인데, 고양이가 살고 있습니다만

“거기 고양이 카페 맞죠?”

“아닙니다. 책방인데 고양이가 있을 뿐이에요.”

“그래도 고양이 만져도 되지요?”

“갑자기 만지거나 하면 애들이 무서워해서요.”

“우리 애가 고양이 보고 싶다는데 가도 되나요?”

“죄송하지만, 책 보러 오시는 건 괜찮은데 고양이가 목적이라면 좀 곤란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전화를 받았다. 상호에 ‘고양이’가 들어가니 고양이 카페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화로 문의를 하면 거절하면 되지만, 찾아오는 경우는 막을 수 없었다. 고양이와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유형 네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탈출해도 나 몰라라 유형

가장 위험한 유형이다. 책방에 들어오려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서 중문을 하나 더 열고 들어오면 된다. 중문에는 “고양이가 탈출할 수 있으니 문을 열고 닫을 때 조심해주세요”하는 알림문을 써놓긴 했으나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손님이 오면 달려가 내가 열어주곤 한다. 문제는 내가 수업을 하고 있을 때다. 내 수업에 내가 취해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면 손님이 들어와 한참을 있다 가도 모를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사건이 발생했다.     


수업을 하다 나가보니 손님이 와 계셨다. 인사를 하고 무심코 문 쪽을 바라보니 중문도 현관문도 열려 있는 게 아닌가! 황급히 문을 닫고 고양이들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프로탈출냥 살룻과 겁쟁이 영업사원 랏샤가 없었다. 손님께 물어보니, “아까 제가 들어올 때 나가던 데요.”라고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게 아닌가.      


속으로는 비명을 질렀지만, 차분하게 밖으로 나가 아이들을 찾았다. 프로탈출냥 살룻은 원래 나가도 멀리 가지 않고 마당에서 풀을 뜯고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진 않았지만 랏샤가 문제였다. 겁이 많은 고양이가 영역을 벗어날 경우 자기 영역으로 돌아오지 못 하고 몸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대로 살룻은 밖에서 풀을 뜯으며 뒹굴뒹굴 놀고 있었다. 랏샤는 어디로 갔지. 마당을 뒤지고 창고를 뒤져도 보이지 않아 패닉이 오기 직전. “와아앙!”하는 랏샤 특유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랏샤가 대문으로 들어와 허둥지둥 현관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나도 같이 달려가 현관을 열어주니 바로 집으로 쏙 들어가는 랏샤. 마당에서 놀던 살룻을 얼른 안아들고 “동생 데리고 나가면 어떡해!”하며 엉덩이를 때려주고는 동반 탈출 사건이 막을 내렸다.     


만약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면? 그 손님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손님은 그저 들어왔을 뿐, 아이들을 밖으로 몰아낸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고양이가 나갔다고 내게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전에 현관을 닫고 중문을 열었다면 좋았을 텐데.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손님을 대할 수밖에 없었다.      

살룻: 탈출 안 할 땐 주로 잡니다만....



-두 번째, 만져도 돼 유형

고양이 카페든 아니든, 고양이를 보러 오는 손님이 꽤 있었다. 일단 들어올 때부터 “고양이는 어디 있어요?”하고 묻는다. 구석진 곳에서 또는 캣타워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을 굳이 깨우고 만지기 시작한다. 근처에 초등학교가 두 개나 있어서 아이들끼리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고양이를 좋아하다 보니 괴롭히게 되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나 또한 어린 시절 동물을 너무 좋아했기에 만지고 안고 싶은 심정을 잘 안다. 그런데 만약 함부로 안으려다가, 또는 귀찮게 만져대다가 고양이들이 할퀴기라도 하면? 물기라도 하면? 그건 온전히 내 책임이 된다. 또 어느새 중년에 훌쩍 접어든 세 고양이들에게는 그런 집적거림이 스트레스가 될 수 있기에 아이들이 오면 우선 교육부터 시킨다.

“고양이는 먼저 다가오는 사람보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더 좋아해. 얼굴을 살살 쓰다듬는 건 좋아하지만, 다른 곳을 만지는 건 싫어해. 특히 발이나 꼬리. 고양이가 숨어있다면 그건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야. 절대 찾아다니지는 마. 또 소리 지르거나 쫓아가면 공격하는 것으로 느끼고 방어하기 위해 먼저 공격해올 수도 있으니 절대 그러면 안 돼.”     


절반은 먹히고 절반은 안 먹힌다. 한 번은 종종 찾아오던 한 아이가 자기 친구들을 잔뜩 데려왔다. 평소에도 고양이에게 좀 함부로 하는 녀석이라 긴장하고 있는데,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야, 막 만져도 돼.”(호랑이 아니고 고양인데 허세 잔뜩)

나는 그 아이의 친구들을 돌려보낸 뒤, 그 아이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막 만지면 안 돼. 너는 네 몸을 누가 허락도 없이 막 만지면 좋겠니?”     


아이들인데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 동물인데 좀 만지면 어떤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또 동물을 장난감처럼 대하지 않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 그 아이들의 앞으로의 삶에도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이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고양이를 보여주겠다고 데려올 때가 가장 난감하다. 무섭다고 소리 지르는 아이들에게 “만져 봐, 만져 봐.”하고 부추긴다. 동물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면 올컬러 백과사전을 사 주시거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시면 좋겠다. 꼭 살아있는 동물을 보고 만져봐야 경험 되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존재일수록 더 조심히 대하고 간접경험을 통해 그들의 생태를 공부하는 것이 동물에 대한 진정 ‘살아있는’ 교육이다.     

룬: 책이 좋아 내가 좋아?



-세 번째, 아유 잘 먹네 유형

첫째 고양이 룬은 고양이 에이즈라 불리는 FIV(Feline lmmunodehiciency Virus), ‘고양이 면역 결핍 바이러스’에 걸린 아이다. 아마 길냥이 시절 얻은 질병일 듯한데, 잠복기를 지나 6살 되던 해 발병했다. 방광 슬러지로 카테터(관을 삽입해 막힌 요도를 뚫는 시술)도 여러 번 했고, 신장이 약해 만성구내염을 앓고 있으며. 심장도 좋지 않다. 둘째 살룻은 길고양이 시절 그 동네에서 꽤 유명한 고양이였는데, 보이는 사람마다 친근감을 갖고 부비댄 결과 엄청나게 많은 동원참치와 츄르를 얻어먹었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신장이 많이 망가진 채로 내게 왔다. 셋째 우란은 2018년에 급성간부전과 지방간이 와서 죽다 살아난 경험이 있다. 이때 나도 함께 죽다 살아났는데, 특히 내 통장은 텅장이 되어 사망했다.      


고양이의 병력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고, 내 고양이들은 평생 처방사료만 먹고 간식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길고도 서글픈 사연을 책방 곳곳에 대자보로 붙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애나 어른이나 귀여운 것을 보면 그 입에 뭐라도 넣어주고 싶은 마음,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나도 뭣 모르던 어린 시절 길고양이에게 우유나 빵, 소시지 등을 사 주는데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다 털곤 했었다. 이해할 수는 있는 일이지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잘못 먹은 간식으로 병원에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신장과 간이 약한 아이들은 좋지 않은 성분을 소화시킬 힘이 없다. 간식이 아니라 사료만 잘못 먹어도 요도가 막혀버리는 고양이들 때문에 손님들에게 간식은 절대로 안 된다고 강조한다. 고맙게도 간식을 챙겨와 내게 선물로 주시는 분도 계신데, 그럼 그 간식은 가끔 길고양이들에게 주거나, 고양이를 키우는 아이들 집에 보내거나 한다. 이렇게 물어보거나 내게 주는 것은 괜찮은데, 나 모르게 주는 경우가 문제다.     


아이가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고 싶다고 하자, 편의점에서 동원참치를(동원참치는 죄가 없다) 사 와서 캔 채로 고양이에게 준 손님이 있었다. 내 고양이가 아니라 마당고양이들에게 준 것이지만,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사람 참치를 준 것은 몰라서 그랬다 해도, 캔과 캔 뚜껑을 그대로 버려두고 갔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뚜껑에 입을 베면 어쩌라고 저러는 걸까? 과연 저 행동이 동물에 대한 사랑으로 아이에게 비춰질 수 있을까? 캔을 치우면서 이제 마당에도 ‘간식 사절’이라 써 붙여야 할지 고민했다.      

우란: 옴마... 사료 말고 간식 좀 주떼요...



-네 번째, 고양이 좀 잡아주세요 유형

내 고양이들은 사람에게 살짝쿵 다가가는 경우는 있어도 달려들거나 물어뜯거나 하지는 않는다. 책방의 느긋한 삶에 익숙한 고양이들에겐 공격성이라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능력이기에 이미 퇴화가 됐다. 물론 나도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말을 하며 큰 개를 목줄이나 입마개 없이 산책 시키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물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나는 책방 안에서 고양이를 잡아달라거나 가둬 달라거나 하는 요구는 들어줄 수가 없다.


일단 네 마리를 잡고 있는 것은 손이 두 개인 나로서는 불가능하며, 합이 20kg인데 다 들고 있지도 못한다. 또 문짝을 다 떼어버려 가둬 둘 수 있는 장소가 화장실과 교실뿐인데, 그럼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해진다. 사실 가둘 수 있다 해도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의 책방의 갑은 고양이기 때문에, 감히 집사가 주인을 가둘 수는 없는 노릇. 주인의 노여움을 감당할 자신이 내겐 없다.      


죄송하지만,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손님은 어쩔 수가 없다. 감내하시거나 나가시거나. 큰 개에게 물렸다거나 하는 공포의 기억 때문에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고 무서워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종종 고양이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요물이라거나, 사람을 배신한다거나, 도둑질을 한다거나. 비둘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기생충을 옮긴다거나, 사람이 토한 걸 먹는다거나, 똥을 싼다거나. 그 이유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오해이거나, 인간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런 걸 입 아프게 일일이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는 묻고 싶다. 내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내 앞에 있지 못하게 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지.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치워버려야 될 존재가 내가 되지는 않겠는지. 그 존재가 나에게 피해를 입히려는 게 아니라면 쳐다보지 말고 다가가지 말고 조용히 지나가면 된다. 나보다 몇 배나 더 작은, 나에게 다가오지도 않는 동물에게 무섭다고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떠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정말 인간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건지, 그건 너무 삭막한 것 아닌지 하는 생각에 슬퍼지기도 한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면 달려와 “고양이가 저를 째려봐요.”, “고양이 눈 너무 무서워요.”하는 아이들이 있다. 물론 대부분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러는 거지만, 몇몇 친구들은 버릇처럼 그런 말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한다. 

“고양이는 너한테 관심 없어. 너에게 피해도 끼치지 않는데 나보다 작고 약한 존재에게 계속 무섭다, 싫다고 말하는 건 결국 내 눈 앞에서 사라지라고 하는 건데, 누가 너에게 이유도 없이 내 앞에서 없어지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것도 너보다 몇 배는 더 덩치 크고 힘 센 존재가 말이야.”


한 번이면 충분하다. 아이들은 늘 약자인 상태를 경험해왔으므로, 이후에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눈이 훨씬 너그럽고 따뜻해진다. 게 중엔 이렇게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너는 아기지? 작지? 그러니까 내가 무섭겠다.”     

랏샤넌 토끼보다 더 겁쟁이에오



-번외, 부동산 조사 유형

동네에 몇 안 되는 주택이다 보니 호기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지만, 책방에 들어오자마자 집 얼마주고 샀는지는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변 아파트 값이랑 비슷해요.”라고 얼버무리면 “젊은 사람이 대단하네.”하는데 딱히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의 자산을 설명할 이유는 없다. 사실 자산 보다 부채 비율이 높은 나로서는 쑥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내가 부유해 보였는지 집값을 묻는 손님들 대부분 책은 사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제일 문제일지도.     



+이런 이야기가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에 악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백 명의 손님 중 한 명의 사례지, 모든 손님이 이런 건 아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진상 손님일지 모른다. 조심하고 조심하지만 상황을 제대로 모르기에 저지르는 실수도 있다. 평범한 99명의 손님보다는 나를 힘들게 한 1명의 손님이 기억에 오래 남기에 쓰는 이야기지, 모든 사람들이 이렇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오히려 골목 안 쪽 찾기도 힘든 곳에 있는 책방에 애써 오셔서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책이라도 한 권 사 주시면서 애쓴다, 고맙다 말해주신 수많은 손님들 덕분에 고양이들과 행복하게 책방을 열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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