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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Jan 07. 2021

책방에 들어오려거든 제물을 바쳐라!

손님 가방은 내 스크레처, 손님 옷은 내 침대

가끔 고양이 사원들은 손님들에게 피해를 끼친다. 아니, 사실 자주 끼친다. 일단 가방이 문제다. 고양이들에게 가방은 처음 보는 새 스크레처가 된다. 배낭, 가죽가방, 핸드백, 천가방 등 가리지 않는다. 특히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학원 가방이나 보조가방류를 좋아하는데 그런 가방은 색, 크기, 모양, 주인의 예민함 여부와 상관없이 어쨌든 뜯고 본다. 찰지게 뜯고 나면 곧 그 위에 둥지를 틀고 잘 준비를 한다. 분명히 가방이 지 몸보다 작은데, 올라가지지 않을 것 같은데도 기어코 똬리를 틀고 앉는 것이다.      


특정인의 특정가방을 선호하는 고양이도 있다. 살룻은 독서모임 회원인 천OO씨의 배낭을 좋아한다. 그분이 오면 달려 나가 사람 말고 가방을 반긴다. 내려놓기 무섭게 배낭 뒤를 한 판 뜯어주고, 곧 바닥에 눕혀 위에 자리를 잡는다. 보통 독서모임 하는 내내 그 위에서 잠을 잔다. 그 배낭이 너무나 편해 보였는지 가끔은 다른 고양이가 자리를 빼앗으러 오기도 하지만, 살룻은 웬만해선 양보하지 않는다. 아무리 살룻이 싸움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라고 해도 물러설 수 없는 순간은 있는 법이다. 다행히 천OO씨는 살룻을 너무도 귀여워해서 가방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예 뜯기 좋으라고 바닥에 내려놔준다. 살룻을 귀여워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새 가방을 사려는 수작인지도 모르지만.     

천OO씨 가방: 살려주세요.. 너모 무거워여...!


겨울이면 두툼한 외투와 롱패딩이 고양이들을 유혹한다. 나로서는 정말 긴장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외투야 나중에 털을 떼면 되지만, 만약, 혹시, 이프! 패딩에 긁긁이라도 한다면!(내 텅장~!!) 아이들이 고가의 패딩을 입고 와 바닥에 벗어놓으면 얼른 교실 안에 두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일부러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서로 자기 패딩에 고양이가 앉았으면 하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특히 패딩 깔개를 사랑하는 고양이는 랏샤다. 랏샤가 선호하는 패딩은 12살 강OO씨가 입고 오는 까만색 롱패딩인데, 그 아이가 롱패딩을 두루마기 펼치듯 뒤로 빼면서 앉으면 꼭 그 위에 폴짝 올라앉아 꼬박꼬박 졸기 시작해 아이를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든다. 가끔은 우 랏샤, 좌 살룻을 앉히고는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의 눈길을 한껏 받기도 한다. 아이는 또 그게 신나서 매번 고양이들을 위해 패딩을 곱게 펼쳐준다. 다행히 패딩 빵꾸 사고는 한 번도 나지 않았다. 내 고양이들은 정도를 아는 고양이들이었던 것이다. 비록 집사 옷은 걸레짝을 만들어도, 손님 옷만은 지켜주는 매너 고양이들!     


고양이들의 관종력이 최고로 상승할 때가 있으니 바로 강연하는 날이다. 책방에서는 가끔 저자 초청 강연을 한다. 강연하는 날에는 거실에 있는 큰 책상을 빼고 창 앞에 강연석을 만든다. 독서모임 할 때는 사람들이 둘러앉는데, 강연날은 모두 한쪽을 보고 앉으니 관심 받고 싶은 욕구가 한층 더 생기는가보다. 네 마리가 돌아가면서 강연석에 왔다 갔다 하니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랏샤는 평소 형, 누나에게 주인공 자리를 빼앗기다가, 사람들이 많으면 이때다 하고 더 앞에 나서려 한다. 그러다 기어코 강연자 무릎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까지.... 강연자는 내 강연이 그렇게 지겨운가 하고 땀을 뻘뻘 흘리거나, 너무 귀여워서 말문이 막히거나. 강연을 들으러 오는 손님들의 시선을 강탈해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등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선은 받고 싶고 잠은 오고....


다행히 고양이들 때문에 물건이 상했다거나 피해를 봤다거나 하며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피해를 입으면서도 흐뭇한 표정이다. 사실 따진다 한들 뭐 뾰족한 수는 없다. 이곳은 고양이가 사는 책방이고, 고양이보다 더 중요한 건 적어도 이곳에는 없으니까 인간들은 제물을 바치듯 가방과 코트를 내어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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