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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Jan 11. 2021

어쩌다 캣맘

마당을 길고양이 쉼터로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캣맘이 될 용기는 없었다. 아파트와 빌라에 살 때도 길고양이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늘 배고파 보이는 아이들이니 사료라도 한 봉지 사 주고 싶었지만 눈치가 보였다. 모든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고, 싫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법이니까. 고양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점점 좋아지고는 있다지만, 그만큼 싫어하는 사람의 혐오 발언이나 혐오 범죄도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면 심심치 않게 캣맘에 대한 비난을 볼 수 있다. 좋아하면  자기 집에 데려가서 키우지 왜 남의 동네, 남의 집 앞에 밥을 줘서 동네를 시끄럽고 더럽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본가에 갈 때마다 엄마에게 동네 캣맘 때문에 속상하다는 푸념을 듣는다. 본가는 주택들만 모여 있는 동네인데, 캣맘이 꼭 본가 대문 앞과 아빠 차 밑에 밥을 놓는다는 것이다. 본인 집 앞이나 마당에 주면 될 것인데, 몇 번 항의했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으니 엄마는 더 속상해했다. 

“밥을 주는 건 좋은데, 봉지나 플라스틱 그릇에 주고는 치우지도 않아. 다 못 먹고 놔둔 사료에 여름 되면 개미랑 벌레가 끓고 냄새가 나서 죽겠어.”


예민하고 깔끔한 성격의 엄마는 남은 밥과 쓰레기를 치우느라 여름 내내 고생을 많이 했다. 한 번은 아빠가 운전하다 차가 멈추는 바람에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는데, 수리를 맡기니 무슨 전선을 고양이가 갉아서 그렇게 됐다고 했단다. 엄마는 그 얘기를 듣고 이제부터 고양이를 보면 다 쫓아버릴 거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애묘인인 아빠는 “고양이가 아니라 쥐가 그랬겠지.”하고 고양이 편을 들었다.     


사실 부모님 두 분 다 동물을 너무나 좋아해서 고양이가 정성스레 일군 마당 텃밭에 똥 좀 싸고, 생선 널어놓은 거 가져가고, 허락도 없이 마루에 대자로 누워 낮잠을 자도 귀여워서 제대로 쫓지도 못하시기 때문에 캣맘이 밥 주는 것 자체를 싫어하시는 건 아니다. 문제는 본인 집에다 주지 않고, 남의 집 앞에 주고 청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내가 가서 따져볼까 생각도 했지만, 뭔가 사정이 있겠지 싶어 참았다. 사실 자기 집 안이나 앞에서만 밥을 줘야 한다면, 아파트나 빌라촌에 사는 고양이들, 또는 주거 단지가 아닌 곳에 사는 고양이들은 다 굶어야 한다는 말이니까. 고양이는 길에 사니까 길 어디에서든 밥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실천은 어렵다.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겪고 싶지 않고, 그 갈등이 혐오로 번져 고양이들에게 더 큰 해가 가는 상황이 만들어 질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내 집이 생긴다면, 내 마당이 생긴다면 그땐 꼭 길고양이 밥을 챙겨야지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내 집이 생겨버렸네! 마당도 좀 있네! 어쩔 수 없군. 캣맘이 되는 수밖에. 어차피 마당을 내 고양이들에게 주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 없는 장소일 뿐인데 길고양이들이 와서 써 준다면 마당 있는 집에 이사 온 보람이 생기는 것이다. 


마당 데크 한 쪽 구석에 교습소에 있던 캣타워를 놔뒀더니 그곳에 낮잠 자러 오는 동네 고양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뜨내기처럼 한 번 왔다 다시 안 오는 녀석들도 있었고, 단골처럼 햇살 날 때마다 들리는 녀석들도 생겼다. 단골들을 위해 사료와 물을 제공하자 그들은 나에게 귀여움을 지불했다. 이층에서 내려오면 데크 위를 가장 먼저 확인했다. 오늘은 누가 와서 오수를 즐기고 있는지, 밥은 있는지, 물은 깨끗한지. 나를 보면 펄쩍 뛰면서 도망가던 녀석들이 점차 나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는지, 하품하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기만 할 뿐 도망가진 않았다. 물론 다가가지는 못했다. 녀석들이 도망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길고양이들이 사람 손을 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밥 주는 인간도 있지만, 때리고 죽이는 인간도 있기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다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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