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쌤 Jan 13. 2021

내가 얘들 애비 되는 고양이요

마당의 첫 번째 입주묘 앵구 가족

그렇게 나와 마당고양이들은 2m 간격을 두고 흐뭇한 미소와 경계심 어린 눈빛을 교환하며 잘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앵기는 고양이가 생겨버렸다. 그 이름은 바로 앵구! 하도 “애애애앵~~~.”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울어대며 애교를 부리는 바람에 앵구(통영 방언으로 고양이라는 의미)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말았다. 처음부터 애교를 떤 건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친한 척을 하며 비비대기 시작했다. 굉장히 험상궂게 생긴 녀석이었는데 외모와 달리 붙임성이 좋았다. 가끔은 치대도 너무 치대서 밥 주다가 앞으로 업어진 적도 있었다. 이름을 불러주고 예쁘다고 하니까 마치 집 지키는 개마냥 마당에서 살기 시작했다. 내가 좀 늦게 나오는 날이나 본가에 가느라 며칠 집을 비우고 오면 2층 집 현관에 앉아 나를 기다리기도 했다. 앵구 덕분에 왠지 든든한 그런 날들이었다. 물론 막상 도둑이 들거나 내가 위험에 빠지면 못 본 척하겠지만. 그건 고양이 종특이니 기대도 안 한다. 어쨌든 그러던 어느 날 본색을 드러내고.... 부인을 모셔왔다. 함께 자녀분들까지....     

음... 니 애교는 좀.. 부담스럽네?


특별히 내 엉덩이를 보여주지


어서 와.... 좀 늦었네?



사실 어미와 새끼 세 마리를 이전에 목격한 적이 있었다. 한날은 책방 고양이 네 마리가 방충망을 뚫을 기세로 밖을 내다보고 있기에 예쁜 새라도 왔나 내다보니 작은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자기 덩치 반만 한 새끼를 입으로 물어 나르고 있었다. 무거운지 연신 떨어뜨려가면서 옮기는데 새끼는 삑삑 새소리를 내면 울고 있었다. 속으로 ‘그냥 여기서 키워도 되는데....’ 했지만, 결국 모두 사라졌다. 그런데 며칠 뒤 비 오는 날 마당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비를 피하려고 그랬는지 창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주식 캔을 하다 따서 주니 어미도 새끼도 허겁지겁 먹었다. 많이 굶었는지 어미는 특히 홀쭉했다. 쟤들을 이제 어쩌지, 집이라도 만들어줘야 하나 하며 열심히 길고양이 집을 검색하며 며칠을 보냈는데 앵구가 나타났다. “내가 얘들 애비 되는 고양이오.”하면서.      

오구오구 그랬쩌여?


누가 봐도 아빠였다. 조그만 소리에서 깜짝 놀라서 파다닥 사라지는 아깽이들인데, 다른 고양이가 어슬렁 나타나면 얼른 데크 아래로 숨어 기척도 내지 않는 녀석들인데, 험상궂은 앵구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놀고 자는 걸 보면 말이다. 고양이 세계에서는 암컷이 육아를 도맡거나 암컷들끼리 공동육아를 한다고 들었는데 잘못된 정보였는지 앵구는 육아를 아주 잘했다. 부인과 새끼들이 밥 먹을 땐 난간이나 벽에 올라 주변을 감시한다.(그늘에서 쉬는 것일 수도 있다) 시시때때로 부인에게 가서 그루밍을 해준다.(그러다 갑자기 19금 상황을 시도하려다 싸대기 맞기 일쑤다) 부인이 잠들면 멀찍이서 새끼들과 엄청 잘 놀아준다. 새끼들이 데크 바깥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으으응~” 하는 소릴 내며 얼른 뛰어가서 핥아준다. 특히 치즈냥 곁을 떠나질 않고 예뻐라 하는데, 자기 닮은 두 고등어냥들과 약간 차별하는 듯하다. 물론 내 눈에도 앵구 닮은 녀석들보단 엄마 닮은 치즈 아가가 아주 예뻤다만.     



엄마냥은 새끼들이랑 잘 놀아주지 않는데, 새끼를 낳고 젖 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힘이 들었는지 늘 기운이 없어 보였다. 반면 아빠냥은 애기들 가는 데마다 냥냥 거리면서 내내 따라 다니고 육탄전으로 잘 놀아준다. 내 주변에 사람 엄마들은 애 낳고 젖 주고 육탄전으로 놀아주고 애 교육 알아보고 미래까지 준비해 주는, 말 그대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태평소까지 불며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그게 아빠 탓이라기보단, 아빠를 아빠 역할 못하게 하는 이 세상 탓이려니 하면서 그 모든 짐을 다 지다 보니, 육아의 기쁨보다 고달픔을 먼저 알아버리는 것 같다.  


아이고 이쁜 내 생퀴


이 녀석들처럼 사람도 하루 종일 아이들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즉 부부가 공동육아를 할 수 있다면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하는 말도 나오지 않았겠지? 함께 아이를 보고, 한 사람이 밥 먹거나 쉴 땐 다른 사람이 아이랑 놀아줄 수 있다면 아이 낳는 사람이 더 많아지겠지? 육아가 얼마나 힘들고, 또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함께 경험할 수 있다면 서로를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겠지? 아이들 입장에서야 누구든 헌신적으로 돌보고 사랑해 주기야 하면 그게 아빠든 할머니든 옆집 아저씨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부부 공동육아는 아이보다 부부를 위해서 필요한 게 아닐까. 


요즘 엄마가 정신 빠진 게 쟤들 때문이라며?


고양이 부부가 육아하는 것을 지켜보며 한국의 부모들까지 걱정해 주다 보니 어느새 앵구의 새끼들이 훌쩍 커버렸다. 그즈음 나에게 노랭이가 찾아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캣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