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인간의 야망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인간의 야망에 대한 이야기다(This is the story df human ambition).”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쓴 김규진 씨가 영국의 히드로공항 입국 게이트에서 본 한 광고의 문구다. 은행 광고였는데, 노인이 정원에서 손자와 산책하거나 아이와 고양이가 노는 일상적 풍경이 나열된 뒤 마지막으로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 장면과 함께 이 글귀가 나왔다고 한다. 연애, 결혼, 그리고 가족. 원한다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일상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야망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저자는 결심했을 것이다. 반드시 사랑하는 언니와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연애를 하다 결혼을 하게 되고 이후 아이를 낳아 가족을 꾸리는 삶을 상상해보자. 한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 만나 사랑에 빠지고,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양가 부모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리고, 자연스럽게 아이를 하나 또는 둘을 낳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을 찍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는 않은가.
한번 설정된 기본값은 다른 선택지를 상상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동성애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우리의 사법제도 안에서 혼인은 남녀의 결합만을 인정한다. 아이를 낳고 낳지 않고는 자유라고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부부에게는 온갖 무례와 압박, 오지랖이 기다리고 있다. 일대일의 독점적 연애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럽다, 소돔과 고모라냐, 바람피우는 걸 합리화하지 마라는 등 모욕적인 말도 서슴지 않는다.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는 기본값의 삶을 거부하고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야망’대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책이다.
나는 보통의 연애를 했고 평균적인 결혼식을 올렸다. 20대 중반을 넘기면서부터 “연애는 하고 있니?” “이제 결혼할 때 됐네” 하는 말들을 수시로 들었고, 주말마다 누군가의 결혼식에 다니고 있었기에 남들이 다 가는 그 길을 나도 걷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서른,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 내 선택지에 동거는 없었다. 사랑하는 남자와 같이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결혼이었고, 그래서 별 망설임 없이 유부녀가 되었다. 그러나 여기가 종착지는 아니었다. 모두가 예상하는 ‘그 일’이 남았다. “아이는 언제 가질 거니?”
시간이 흐를수록 질문은 압박이 되어왔고, 그때가 되어서야 내 안에 의문이 생겼다. ‘꼭 아이를 낳아야 하나?’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면 굳이 결혼을 했어야 했나?’ ‘아이가 없으면 남편과의 사이가 오래가지 못할까?’ ‘나는 진정 엄마가 되고 싶은가?’ 수많은 질문을 수년에 걸쳐 나 자신에게, 또 주변인들에게 물은 결과 나는 비출산을 선택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남편을 제외한 모든 가족과 친족이 나의 임신과 출산을 원했기 때문이다. 주변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는 ‘이기적이고 못된 여자’가 되었고, 우리 부부는 ‘늙어서 우리 애들이 낸 세금을 축낼 존재’로 여겨졌다. 나의 인생에 하등 영향을 줄 것이 없는 사람들의 말은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내 부모마저 나를 이해해주지 않았을 때는 큰 상처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얼른 나이를 먹고 싶었다. 생물학적으로 임신 불가능한 나이가 되어 누구도 나에게 아이 얘기를 하지 못하는 그런 나이가 되고 싶었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최지은 씨는 ‘엄마가 되지 않고도 무엇이 되고 싶은’ 17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해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썼다. 딩크 부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던 저자는 어느 날 자신을 가장 잘 알 것이라 생각한 친언니에게 “너도 아이를 하나는 낳으면 좋을 텐데…”라는 말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자신이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아는 언니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아이가 없는 삶은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게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래서 저자는 아이 없는 삶을 사는 기혼 여성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책을 낸 후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했고, 그중 한 인터뷰에는 댓글이 1500여 개가 달렸다. 저자가 아이를 낳지 말자고 선동하거나 아이를 낳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 한 것도 아닌데 대부분이 악플악성댓글이었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이기적인 행동이다.”, “지금이야 좋지 나중에 결국 후회한다.”, “불임이면서 딩크인 척 하기는.”, “아이를 낳든 말든 상관없는데, 이렇게 노출하지는 말았으면.”
아이를 낳은 이유가 ‘애국’하기 위해서는 아닐 텐데,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지금 만족한다면 그건 남이 걱정해줄 것은 아닐 텐데 수많은 애국자와 오지라퍼들이 댓글란에 모여 있었다. 저자는 이런 댓글을 볼 때 우습다고 생각하는 한편, 마음에 미세한 상처가 난다고 한다. ‘그들의 말이 옳거나 의미 있어서가 아니라, 타인이 선택한 삶의 방식에 이토록 적극적인 악의를 드러내는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180쪽)’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음에도, 다수가 택하지 않은 삶의 방식을 택한 사람들은 쉽게 미움의 표적이 되고 그들의 선택은 끊임없이 의심과 간섭을 받으며 그 선택의 가치는 폄하된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182쪽)
엄마는 되지 않겠다는 선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동성 결혼을 한 김규진 씨나 폴리아모리 관계를 밝힌 홍승은 씨의 기사에 달린 댓글은 글로 옮기기 힘든 정도다.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의 삶을 공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규진 씨는 저자 소개란에 이렇게 쓰고 있다. “왜 아무도 레즈비언으로 잘 사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는지 궁금해 하다 그냥 제 얘기를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한국 국적 오픈리 유부녀 레즈비언’이라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는 중학교 2학년 때 성정체성을 깨닫고 난 뒤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찾았고, 그 결과 찾은 건 비극뿐이었다고 한다. 평범하고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지만, 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마주하면 거대한 장애물 앞에 선 것처럼 막막해졌고 아마 다른 소수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도전과 실패, 성취를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선례(先例)가 되어 다음에 시도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블로그를 열었고, 거기에 쓴 글들을 묶어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출판하였다. 레즈비언 커플이 결혼하려면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 비용이 두 배로 든다는 것부터 미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직장에서 경조사비를 받아내는 과정까지.
때론 상처받고 때론 힘을 얻으면서 남들과 다르지 않게 살고 싶다는 어쩌면 한국적이고 보수적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솔직하게 담는다. 그러면서도 결국 반려된 한국에서의 혼인신고서, 악플러를 신고하는 과정, 가족들과의 갈등 등 힘든 시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한다. 더 나아지기는커녕 퇴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저자는 “매일매일 구체적이고 작은 승리에 집중하자(9쪽)”고 말한다. 그 작은 승리들이 누군가에게 선례(善例)가 되기를 바라며.
“가끔 도무지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대만은 동성 결혼 법제화를 했고 중국에서도 동성 부부에 대한 대기업 광고가 송출된다는데, 한국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법안이 올라온다든지 하는 날 말이다. 하지만 두려움을 무릅쓰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례들을 믿는다. 서울 한복판에서 축제도 벌여보고, 친구들을 불러 결혼식도 열어보고, 마일리지 가족합산도 신청하고, 회사에 돈이랑 휴가도 달라고 해보고. 그렇게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사회는 변한다. 앞으로도 조금 더 나를 믿고 미지의 영역으로 뛰어야겠다.”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184쪽)
폴리아모리 에세이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를 쓴 홍승은 씨 또한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모두의 사랑이 같은 모습일 수는 없겠지만, “당신과 비슷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은 위안이 되면 좋겠다. 이상해도 괜찮다는, 남들에게 이상한 사랑이 나에게는 이상(理想)의 사랑일 수 있음을 믿게 되길 바란다(16쪽)”며 조금은 다른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폴리아모리는 일부일처로 설명되는 ‘모노가미’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비독점 다자연애’로 번역할 수 있다. 저자는 현재 두 명의 애인과 네 마리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다. 스스로를 ‘달걀부리 식구들’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가족’이 아니라 ‘식구’라고 표현하는 것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의미의 식구는 제도나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기에 더 확장성 있게 느껴졌다.
사회적 계약을 맺지 않더라도, 인간이 아니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전셋집을 구할 때도 등기 우편을 대신 받을 때도 그들은 어떤 관계인지 질문을 받는다. 자신들을 설명할 적당한 말이 없어 망설이는 때가 길어지면 “지민은 남동생이고, 우주는 남자친구”라고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있었고 그런 순간이 잦아질수록 저자는 제도 바깥으로 밀려나는 느낌을 받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폴리아모리 관계를 밝히기 시작했고, “잘 모르지만 배우겠다”고 따뜻하게 말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존중받는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아 간다. “폴리아모리라는 말을 몰라도 그냥 셋이 사는구나 정도로 이해하는 것,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봐주는 것(79쪽)”이면 충분하다며 그런 다정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는 것이 비난을 걱정하면서도 책을 쓴 이유다.
그러나 세상에는 다정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온갖 추잡한 상상으로 그들의 관계를 모욕하고, 함부로 재단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폴리아모리라고 하면 난교를 떠올리는 사람들 때문에 “저희는 난교는 안 하고요.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하고 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난교한다고 하늘이 무너지나?’하는 생각이 올라온다는 저자의 고백에 쓴웃음이 난다. 그들은 평등한 관계와 비독점적인 연애를 말하고 있는데,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머릿속엔 오로지 ‘섹스’만 가득하다는 것이 씁쓸하다.
세상에는 사람들 수만큼의 사랑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연애 이야기는 지겨울 새 없이 말해지고 또 말해지는 게 아닐까. N개의 사랑 안에는 폴리아모리도 있고 모노가미도 있다. 누군가의 사랑만 옳고 다른 사랑은 틀렸다고 한다면 그건 사랑이라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배타성과 사랑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사랑을 하는 당사자들의 합의가 있고, 그 사랑이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데 간섭하고 제동을 걸 이유는 없다. 그래서 저자는 의심하고 묻는다. 정상적인 연애는 무엇이며, 그 정상은 누가 만든 것이냐고.
“사회에서 승인되는 ‘정상적인’ 연애와 결혼의 정의는 무엇인지, 누가 그 정의를 정의했는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질문해야 한다. 그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얼굴을 비정상으로 만들어 지워 왔는지도 함께 질문해야 한다.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페미니즘 없는 폴리아모리는 가능한지, 평등 없는 자유는 가능한지 묻게 된다. 우리는 역사와 사회적 규범의 연속선에 존재하며, 결코 진공 속에 존재할 수 없으니까. 나는 그림자가 없는 방향으로 자유롭고 싶다.” (176쪽)
세 권의 책인데 마치 한 권의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들이 국가구성원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똑같은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 부부에게도, 딩크 부부에게도, 달걀부리 식구들에게도 ‘인간 아이’가 없기에 비난 받는다. ‘태어났으면 자식을 낳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모든 동물이 후손을 남기려는 본성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거스르려 해서는 안 된다, 저출산이 심각한데 정상가정을 훼손하는 것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길이다’ 등 재생산에 일조하지 않기에 차별받아 마땅하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동성부부가 아이를 입양해 키우겠다는 것에도 반대한다. 홍승은 씨 같은 폴리아모리 관계에서 아이가 생기면 누구 아이라고 할 거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이는 모두 궤를 같이 하고 있는데, 결국 가부장적 가족 제도 안에서 아이를 소유물로 규정하고, 그 소유물은 또 국가와 자본에 귀속됨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소유물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연히 누군가를 소유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축소되고, 기업이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지 못해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더라도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고 함께 살 권리가 있다. 또 인구재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모두가 이 사회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구재생산에 기여하고 있지만, 사회에는 해악을 끼치며 살아가는 사람도 존재한다.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인터뷰이 중 한 명이자 SF 작가인 정소연 씨는 개발도상국 여성이나 아이들의 교육과 자립을 지원 하는 장학단체를 만들었다. 내 아이 한둘을 위한 삶이 아니라, 수백 명의 아이들이 삶을 돕는 삶을 택한 것이다. 이것은 재생산이 아닌가? 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만이 세상에 기여하는 일일까?
누군가의 삶에 이러쿵저러쿵 입을 떼기 전에 한번쯤 상상해보았으면 한다. 내 앞에 정답지가 아닌 선택지가 놓였다면 과연 나는 지금과 같은 삶을 살았을까. 홍승은, 김규진, 최지은 저자는 선택지의 문항을 늘리는 사람들이다. 하나밖에 없는 정답지를 아무 생각 없이 따르는 삶보다 무지개보다 더 많은 색깔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는 삶이 훨씬 재미있을 거라 생각한다. 언젠가는 선택지가 아닌 백지를 놓고 내 삶을 내 욕망대로 자유롭게 써내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지금보다 좀 더 시끄럽게, 다양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레즈비언이라도, 엄마가 되지 않아도, 두 명의 애인과 살아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