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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Mar 29. 2021

나 외동 성향이라 그랬지!

룬이는 참지않긔

룬이 혈토를 했다. 연달아 네 번을 토했다. 헤어볼에 거품과 피가 섞여 나왔고, 대변에도 털과 피가 섞여 있었다. 무너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5년 전 고양이 에이즈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 자리에서 빈혈이 와서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나지를 못했다. 신장과 방광이 좋지 않아 보름에 한 번 수액을 맞고, 소변이 막힐 때마다 입원 시키며 5년을 보내면서 조금은 무뎌졌으리라 생각했는데, 피를 토한 건 또 처음이라 온 몸이 떨렸다.


사실 룬은 외동 성향이다. 보호소에 들어 온 룬은 품종묘였기에 꽤 많은 입양신청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룬이 초보 집사인 내게 오게 된 것은 우리 집에 다른 고양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룬은 사람은 너무도 좋아해서 임보 엄마를 졸졸 따라 다니지만, 그 집 고양이는 싫어서 멀리 지나가는 것만 봐도 하악질을 하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둘째 욕심이 났다.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고양이를 한 마리만 키우는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 또 ‘고양이는 고양이를 부른다’는 말도 있을 만큼 매력적인 동물이라 묘구수가 점점 늘어나는 집이 많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꽃보다 룬


룬을 키우면서 고양이가 생각보다 훨씬 더 사랑스러운 동물임을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둘째 뽐뿌가 왔다. 그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게 됐는데, 바로 ‘가정 분양’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둘째를 입양한 일이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어쩔 수 없이 입양 보낸다고 했다. 집으로 데리러 갔을 때 커다란 고양이 철창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새끼와는 다른 종의 고양이가 있었다. 어미묘도 형제묘도 보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입양’이 아니라 ‘분양’이었다. 


30만 원을 주고 눈처럼 하얀 고양이를 분양 받았다. 너무 조그맣고 말라서 걱정됐는데, 2개월은 엄마 젖을 먹였으니 튼튼할 거란 말을 믿었다. 노랭이의 새끼들을 경험하고 난 지금은 그 아이가 겨우 1개월 넘은 아이란 걸 안다. 남편이 ‘백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룬은 외동 성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백미를 좋아했다. 그루밍도 해주고 잘 때 꼭 붙어 잤다.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와 헤어진 백미 또한 룬을 의지해서 옆에 꼭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그렇게 예쁘고 행복했던 때는 한 달밖에 지속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시가 제사에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니 백미는 혈토와 혈변을 가득 해 놓고는 죽어있었다. 우리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백미는 아프고 약한 아이였던 것 같다. 나는 무지해서 그걸 제대로 몰랐었고, 그저 활달하고 잘 먹고 잘 자니 괜찮은 줄 알았다. 동생이 죽어가는 동안 룬은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그때 처음으로 룬이 소변을 보지 못하는 증상이 발현되었다. 병원에 데려가니 방광 내 크리스털이 많이 쌓여 요도를 막아 방광염이 왔고, 신장 상태도 좋지 않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후 수시로 룬은 같은 증상으로 치료를 받았고 결국 고양이 면역 결핍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백미를 그렇게 잃은 이후에도 둘째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던 나는 룬을 데려온 보호소의 인터넷 카페를 수시로 들락거렸고, 우란이를 만나게 된다. 애니멀 호더 집에서 태어난 여섯 남매 중 하나로 유일하게 삼색 고양이였던 우란이. 가장 에너지가 넘쳐나는 말썽쟁이 우란이의 영상에 홀딱 반해버렸다. 얼굴은 또 어떤가. 마치 엘비스 프레슬리의 구레나룻처럼, 또는 헬멧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묘한 털 색 조합이 눈을 감아도 잊히지가 않았다. 백미를 잃고 1년 만에 또 둘째를 들이게 된다.


엘비스 우란


이번에도 룬은 하루 만에 동생을 받아주었다. 예전보다 더 큰 애정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도 우란이에 대한 룬의 애정은 변함이 없다. 딱 한 번 짜증낸 적이 있는데, 룬이 몸이 안 좋아 기분이 나쁠 때 우란이가 그루밍 해달라고 머리를 디밀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살짝 에잇 하고 짜증을 내긴 했으나 곧 그루밍을 해주었다. 싸가지 없고 오빠를 때리기 까지 하는 동생이 뭐가 이쁘다고 저럴까. 그래서 내가 까먹어 버린 것이다. 룬이가 외동 성향이라는 것을. 룬이 백미와 우란이를 받아주었던 것은 자기보다 한참 어린 동생들이었기 때문 아닐까? 다 큰 성묘를 받아주는 것과는 달랐을 것이다. 무던한 성품인 살룻과 랏샤에게도 데면데면했던 룬에게 약간은 더 부산스러운 노랭이와 잘 지내라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또 나이가 들었으니까, 아프니까, 날이 갈수록 예민해졌을 룬에게 새 식구는 스트레스였겠지. 


증상을 듣고 진찰을 해 본 수의사 선생님은 나이 들고 여기저기 아픈 아이니 소화력이 떨어진 상태라면 헤어볼도 위험할 수 있다고 하셨다. 다행히 토하고 대변으로 털이 나왔다고 하니, 장 기능을 촉진 시키고, 염증을 완화하는 치료를 해보자고 하셨다. 입원보다는 통원 치료가 나을 것 같아서 매일매일 병원에 갔다. 룬은 밥을 거부하고 구석에만 앉아 있으려 했다. 사료를 갈아 간식과 섞어 주사기로 강제급여를 하면서 랏샤와 함께 보낸 마지막 달이 떠올라 무섭고 우울했다. 그래도 이번엔 아프자 마자 병원에 데려갔고, 헤어볼이라는 명확한 원인이 보였기에 희망을 가졌다. 


일주일째 되는 날 룬은 구석에서 나와 조금씩 걸어 다녔고, 그 다음 날엔 스스로 캣폴에 올랐다. 룬을 보살피느라 책방에서 쪽잠을 자며 지내고 있었는데, 쿵쿵대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룬이 새벽빛이 스며드는 창가에 놓인 캣폴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고마워. 기운 내 줘서. 살아줘서 고마워. 


룬은 평소처럼 밥 달라고 “애애액-”하고 따라다니며 울어대는 고양이로 돌아왔다. 빠졌던 몸무게도 조금씩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300-400g 모자라다. 룬은 5kg 정도였을 때 컨디션이 가장 좋았기 때문에 살을 찌우려고 좋아하는 사료와 파우치를 번갈아 먹이고 있다. 페르시안이라 털이 길고 빽빽해서 여름마다 더워하기 때문에 집에서 미용을 해주곤 했었는데, 미용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수의사 선생님의 조언으로 미용을 멈췄었다. 대신 헤어볼 영양제를 먹이고, 싫어하는 빗질도 되도록 자주 해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헤어볼 때문에 한 번 죽다 살았으니 다시 미용을 시작했다. 매일 손가락 세 개만한 크기로 조금씩 밀어주는데, 한 번 크게 아프고 나더니 엄살과 신경질이 늘어 엉덩이와 뒷다리만 겨우 밀었다. 나머지 부분은 빗겨도 별 말 없는 부위라 그냥 두었다. 털 때문에 죽을 뻔 했지만, 자기 털을 너무도 사랑하는 묘르신의 자존감을 위해서. 


룬은 여전히 노랭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나가다 보이면 꼭 “우우웅애애액”하고 못마땅한 소리를 낸다. 하지만 똥꼬 냄새를 맡으려고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걸 보면 처음처럼 미운 건 아닌 것 같다. 가족이라고 모두를 사랑할 수는 없지. 그것도 원해서 생긴 가족이 아니니까. 못난 엄마는 또 불쌍한 고양이를 보면 식구로 들일지 모른다. 불운하게도 이런 엄마를 만난 룬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불편해도 식구니까 조금만 참고 양보해줘.”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빈다. 엄마한테 짜증 다 풀어도 되니까 제발 참음이 병이 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대걸레 아니고 고양입니다만



귀여운 날 두고 감히 일을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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