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쌤 Mar 24. 2021

우리는 노랭이 싫은데

집고양이들과의 합사 과정

제 식구들과 이별하고 갑작스럽게 집으로 들어오게 된 노랭이는 하루 종일 현관문을 바라보고 울어댔다. 밖에 잠시 보내주면 한참 놀다 와서는 또 들어오겠다고 울어댔다. 다시 안으로 데려오니 밥 먹고 똥 싸고 낮잠 자다가 일어나 또 내보내 달라고 울었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 빼박 외출냥이 만들겠구나 싶어서 울어도 모른 척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나니 차츰 덜 울었고 그렇게 집고양이가 되어갔다.


남편도 노랭이 입양을 반대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래도 노랭이를 집안에서 키워야겠다고 하니 “니는 못생긴 고양이만 좋아하네.”라고 비난했지만,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감당할 수 있겠냐고 경고는 했다. 집고양이들이 스트레스 받아 또 아프면 어쩔 거냐고. 어차피 아파서 매주 병원에 가는 녀석들이니 랏샤처럼 모른 체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노랭이까지 잘못되면 정말 자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야 아빠가 인정한 못난이



랏샤의 죽음으로 한동안 내 정신으로 살 수 없었는데, 연이은 한발이의 실종과 이방인의 죽음으로 조금씩 현실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자책한다고 죽은 아이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살아서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 떠난 아이들만 그리워하다가는 이 아이들마저 잃을 수 있다. 노랭이가 마당에 산다고 내 고양이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내 마음에서 집고양이와 마당고양이의 경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노랭이가 집으로 들어온 것 때문에 다른 고양이가 아프게 된다면 그건 노랭이 탓이 아니다. 그냥 내 탓이고, 나 같은 집사 만난 고양이들의 운명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건 나만 그런 거지 고양이들은 아니었다. 예상대로 룬, 살룻, 우란이는 노랭이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랏샤가 죽기 전 네 마리의 고양이들은 2:2 파벌로 나뉘어져 있었다. 룬과 우란이가 흑백파, 살룻과 랏샤가 똥색파이다.(나는 갈색이라고 했지만, 남편이 똥색이라고 우겼다) 우란이는 모두가 자기 아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룬은 우란이 울음소리만 들려도 달려가서 물고 빠는 찐 동생사랑 오빠기 때문에 한 편으로 먹어준다. 룬이 2살 때 2개월 우란이를 데려와서 함께 살았기 때문에 둘이 친할 수밖에 없다. 살룻이 4살 때 3개월 된 랏샤가 교습소에 와서 같이 살았기 때문에 또 둘이 한 편이 되었다. 네 마리가 같이 살게 된 것은 책방을 열면서 부터라 그렇게 친하지는 않다. 서먹서먹 데면데면 하지만 함께 살다 보니 정이 들면서도 때론 미운 그런 사이다. 


처음에야 싸우기도 했지만, 넓은 공간에 각자의 자리가 있으니 다툼은 점점 사라졌다. 그런데 우란이는 랏샤만은 도저히 좋아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다른 고양이와는 외모가 좀 달라서 그런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질투가 난 건지, 랏샤에게 싸움을 걸 때가 많았다. 우란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랏샤에게 시비를 걸면 룬은 뛰쳐나가 우란이 편에 서서 랏샤를 향해 “오우에오-” 하며 울었는데, 마치 “내 동생 말씀이 다 옳다옹.”하는 것 같았다. 살룻은 뛰어와서 보통 우란이와 랏샤 사이에 앉아 있곤 했는데, 평화주의자라 싸움을 말리는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싸우더라도 소리만 컸지 상처가 난 적은 없었다. 서로 솜방맹이질을 하기도 했으나 몸에 닿지도 않았다. 그래서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랏샤가 늘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이었는데, 그게 스트레스가 돼서 병이 생긴 게 아니가 하고 뒤늦게 후회하기도 했지만, 알았더라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격리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곳에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참고 같이 사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랏샤가 떠난 뒤 집고양이들에게는 뜻하지 않게 평화가 왔다. 우란이와 랏샤 아니면 싸울 일이 없었으니 랏샤가 없는 책방은 적막할 정도로 조용했다. 랏샤의 부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세 마리 고양이들은 그저 평소처럼 먹고 자고 창밖을 바라보고 전처럼 지냈다. 그 짧은 평화를 깬 노랭이의 등장. 


예상했던 대로 룬과 우란이는 대놓고 싫다는 표시를 했다. 룬은 노랭이랑 마주치면 “으으응”하며 못마땅한 듯 멀리 휙 돌아서 지나갔고, 우란이는 뛰어가서 싸대기를 날려대며 하악질을 일삼았다. 물론 닿지 않는 것은 여전하지만.... 노랭이는 당황했던지 초점을 잃은 눈으로 서서 마룻바닥에 꾹꾹이를 해댔다. 살룻은 별 관심이 없었다. 딱히 자기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호랑이가 같이 산다한들 아무 상관없는 녀석이다. 


니 누고...?


저기요... 저기 있자나여....


여긴 내 자리라곳!




노랭이에게서 관심을 돌릴 수 있도록 고양이들에게 새로운 놀이거리를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캣폴을 2개 주문했다. 룬은 캣폴 해먹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올라가서 거의 내려오지를 않았다. 밥만 먹으면 그곳에 올라가서 낮잠을 잤다. 이불 속에 콕 박혀 있는 걸 좋아하는 우란이를 위해서 새 이불도 꺼냈다. 겨울이 되면서 서재에만 보일러를 켜 두었더니, 우란이와 룬, 살룻은 내내 서재에 있고, 노랭이는 우란이가 무서운지 거실 고양이집 안에 주로 있었다. 난방으로 보이지 않는 휀스를 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익숙해지고 덜 미워하겠지 싶었다.



싸우더라도 노랭이가 다른 고양이들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다. 우란이가 성질이 더럽긴 해도 다른 고양이를 상처 입힌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룬과 살룻은 나름 너그러운 성격이었기에 큰일은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고양이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전혀 아니었다.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2년 넘게 만나 온 녀석들이지만, 같은 공간에 사는 건 다른 문제다. 자기들이 나갈 수 없는 마당에 노랭이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자기들 밥을 먹고, 자기들 방석에서 자고 자기들 화장실에서 똥 누는 것은 싫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후회 없도록 사랑한다는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