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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Mar 22. 2021

후회 없도록 사랑한다는 말

모두가 떠나버린 마당

한발이가 사라졌다. 2-3일 정도 보이지 않은 적은 있지만 일주일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걱정이 됐다. 아픈 아이라 약도 먹여야 하는데 수시로 내다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지난번처럼 건넛집에서 밥 얻어먹고 있나 싶어 가 봐도 없었다.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녀도 근처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몸 상태가 좋아져서 신나서 멀리 놀러갔나 보다 하면서 조금씩 반경을 넓히면서 찾아보다가 나중에는 차로 이동하며 찾아다녔다. 그래도 보이지 않았다.


2주가 지나고 3주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났을 때는 인정해야 했다. 한발이에게 큰 일이 생겼음을. 로드킬을 당한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잡혀갔을 수도 있다. 동네에 목줄 푼 채 돌아다니는 큰 진돗개가 있는데 그 녀석에게 물려죽었을 수도 있다. 겨우 살려놨는데, 이제 정말 잘 돌봐줄 거라고 다짐했는데, 한발이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입양을 고민했을 때 확 저질렀다면, 이것저것 망설이지 않았다면 한발이가 살아있을 텐데. 내가 또 망설이는 바람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았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돌봐온 아이고 겨우 하나 남은 노랭이 아기인데 결국 또 잃었다.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아픔을 견디면서 캣맘, 캣대디로 살 수 있는 건지, 왜 내가 돌보는 아이들마다 불행해지는 건지,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지 정확한 대답을 얻고 싶었지만, 누구도 답해 줄 수가 없는 문제였다. 정말 지쳐서 더는 못하겠다고 정말 다 사라져버리면 좋겠다고 그렇게 속으로 외쳤다.


정말 그렇게 되길 바랐던 건 아닌데, 그냥 너무 화가 나고 슬퍼서 그런 마음을 잠깐 먹은 건데, 저주에 걸린 것처럼 이방인의 배가 붓기 시작했다. 배를 제외하고 다른 부분은 바짝 말라가면서 배만 풍선처럼 매일매일 부풀었다. 한발이가 사라져서 그런 것 같았다. 그립고 애타는 마음이 병이 되어 온 것 같았다. 복막염이 분명했다. 그래서 더 절망했다. 고양이 복막염은 약이 없다. 중국을 통해 승인되지 않은 불법 약을 써야 하는데, 가격이 상상 이상이라고 알고 있었다. 


나는 매일 부풀어 오르는 이방인의 배를 보면서 빌고 또 빌었다. 이방인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고마운 게 있다면 사라져 주길. 제발 내 앞에서 죽지 말아주길 절실하게 기도했다. 누구에게 하는 기도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빌었다. 그런데 이방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출근하는 나를 보고 조그맣고 가는 목소리로 ‘에에엥-’하고 길게 울었다.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애써 무시하고 책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는 학생들마다 “선생님, 밖에 고양이가 아픈 것 같아요.”하고 말했다. 나는 “어. 많이 아파. 죽을 지도 몰라.”하고 건조하게 말했다. 감정을 실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너를 모르고 너를 사랑하지 않아.’하고 속으로 되뇌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했다.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이방인이 아플까 봐 그런 게 아니라 아픈 이방인을 보고 고통스러워하는 나 자신이 안쓰러웠다. ‘제발 부탁이다. 떠나 줘. 네가 나에게 베풀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친절을 보여 줘.’ 소리 내서 말할 수는 없었다. 축구공만큼 부푼 배를 안고도 밥을 먹으러 오는 아이에게 그런 모진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날은 좀 달랐다. 이방인이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1년이 넘도록 내가 다가가면 도망 간 주제에 이제 와서 나에게 다가 오다니. 손을 내밀어 머리를 쓰다듬으니 움찔움찔 하면서도 가만히 손길을 받아냈다. 나는 이동장을 들고 나와 이방인을 집어넣고 병원으로 갔다. 


사람 손을 타 본 적이 없던 녀석이라 병원에서 겁을 집어 먹고 극렬하게 버둥거려서 세 명이 달라붙어도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진료 중에 놓쳐서 기계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럴 거면 잡히지나 말든지, 살려달라고 잡혔으면 얌전히 진료를 받을 것이지. 겨우 끌어내어 복수를 빼고 주사를 맞았다. 복막염 검사를 할 건지 물었다. 복막염 때문에 복수가 찼을 수도 있고,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복막염이면 치료가 가능한지, 신약을 쓸 수 있는지 물었다. 이 병원에서는 신약은 쓰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말에 일단 약만 처방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수의사인 독서모임 회원인 S씨에게 카톡으로 이방인의 상태를 설명하고 신약에 대해 물었다. 신약이 효과가 있는 편이지만, 일단 병원에서는 약이 없다고 했다. 직접 구해서 주사도 직접 맞혀야 한다고 했다. 검색을 해보니 약을 구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은 것 같았다. 문제는 돈. 치료에 적게는 400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까지 든다고 했다. 내가 이방인을 위해 그 돈을 쓸 수 있을까? 쓴다고 나을 수 있을까? 복막염이 낫는다 해도 계속 관리를 해줘야 할 텐데 손도 타지 않는 아이가 그게 가능할까? 그러다 한발이처럼 사라져 버리면?


내 고민을 전해들은 S씨의 남편은 “화수 씨는 길고양이 돌보기에는 너무 여리신 분 같다. 겉으로만 강하지 속은 여려서 고생스러운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른 캣맘들은 정말 강한 사람이 많다고. 일희일비하면 길고양이 돌보는 일은 못한다고 하셨다. 나는 그때서야 내 그릇의 크기를 깨닫게 됐다. 조그마한 밥그릇 주제에 양푼인 줄 착각하고 담을 수도 없는 아이들을 억지로 담으려 하다 다 넘쳐서 버리게 된 것이다. 밥그릇이면 밥그릇답게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떴어야 하는데.... 내 주제를 몰랐기에 고양이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병원에 한 번 다녀온 뒤로 이방인은 다시 나를 피했다. 겨우 잡아서 약을 먹이긴 했으나, 며칠 만에 또 배가 더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잔인해지기로 했다. 이방인을 포기하기로. 그리고 노랭이를 입양하기로.


복막염이라면 전염의 가능성도 있었기에 노랭이를 집안으로 피신시켰다. 노랭이는 살리고 싶었다. 노랭이까지 잃고서는 고양이를 보면서 웃을 자신이 없었다. 혼자 버림받았다는 배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죽을 곳을 찾아 떠난 건지 이방인은 사라졌다.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아니, 고마웠다. 더는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정말 지쳐있었다.


열흘 가량 보이지 않던 녀석이 아무도 없는 마당에 돌아와 내가 만들어 준 집 안에서 동그랗게 고치를 말고 죽어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여기만큼 편안히 죽을 곳이 없었나 보다. 처음으로 안아 본 이방인은 차갑고 딱딱하고 생각보다 더 키가 컸다. 얼굴도 가까이서 보니 그렇게 못 생기지 않았다. 늠름한 사자 같았다. 계속 못난이라고 놀렸던 게 미안해졌다. 코와 입가에 피가 묻어 있어 깨끗이 닦이고 옷을 가져 와 얼굴만 내놓고 몸을 감쌌다. 얼굴을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내가 능력도 마음도 크질 못해서 살려주지 못했다고.


병원에 갔을 때 접수를 하면서 이름을 “이방인”이라고 쓰고 부끄러워졌다. 고양이 이름이 이게 뭐야. 이방인이 뭐야. 1년 넘게 같이 살아놓고 이방인이 뭐야. 사실 내 마음 속에 간직해 둔 이름이 하나 있었다.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이방인’이라고 정했지만, 언젠가 사정이 허락하고 우리가 친해져서, 혹시 내가 아줌마가 아닌 엄마가 되면 붙여주려고 한 그런 이름이 있었다. 소설 『이방인』을 쓴 알베르 카뮈의 이름을 따서 한국식으로 ‘까미’라고 지어주려고 했다. 그 이름을 장례식 때 쓰려고 한 건 아닌데, 결국 죽고 나서야 처음으로 까미라고 불러보게 됐다. 


‘노랭이 가족’이라고 쓴 적금 통장을 헐어 까미의 장례식을 치러 주었다. 얼마 모으지도 못해서 장례식을 치를 돈밖에 없었다. 여기에 복막염 신약을 살 돈이 있었다면 까미는 살았을까? 돈보다는 책임의 문제였다. 내가 처음 룬을 입양할 때 엄마는 말했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아나? 키울 때야 귀엽고 좋지, 그거 죽을 때 어짤래?” 그땐 속으로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하면 되지. 죽고 나서 후회 없도록.’하고 생각했었다. 노랭이가 온 이후 나는 이제야 엄마의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을. 후회 없게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진정 사랑하기에 후회가 남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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