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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Mar 18. 2021

왜 계속 아프고 그래!

돌아가며 아픈 아이들

랏샤를 돌보느라 마당 고양이들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밥 주고 물주고 나면 관심을 차단했다. 일부러 더 그랬다. 랏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다 큰 고양이 셋이니 내가 돌보지 않아도 알아서 잘 지낼 거라 생각했다.


랏샤를 보내고 나서야 마당 고양이들에게 눈을 돌릴 수 있었다. 한 달 만에 제대로 본 한발이의 상태가 심각했다. 구내염이었다. 길고양이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병인데, 입에 염증이 심해서 잇몸이 붓고 피가 난다. 입 상태가 안 좋으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이 심하게 빠졌고, 침을 줄줄 흘리고 다녔다. 그루밍도 못해 털은 떡지고 지저분했다.


급한 대로 비상약으로 가지고 있던 항생제를 먹였지만, 입이 아프니 약도 거부했다. 닿으면 아픈지 기겁을 하고 달아났다. 목욕을 시켜도 가만있던 한발이가 나를 할퀴고 도망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결국 병원에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가는 김에 검진도 해볼 겸 노랭이도 데리고 갔는데, 한발이는 증상이 많이 진행된 상태였고, 노랭이에게도 약하게 구내염 증상이 있었다. 치료를 하고 처방을 받아왔지만, 앞으로가 막막했다. 구내염은 완치가 되는 병이 아니다. 전 발치를 해도 잇몸에서 증상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발치를 할지 문의했는데 선생님은 부정적이었다. 발치가 정답은 아니고 처방사료와 약, 수액으로 관리를 해주는 게 아이 몸에도 더 나을 거라고 하셨다. 문제는 얘네들은 바깥에 사니까 언제든지 감염의 위험이 있고 재발도 쉽다는 것이다. 첫째 고양이 룬은 고양이 면역결핍 바이러스(FIV)로 인해 만성 구내염을 앓고 있는데, 약을 끊지 않고 먹고 있으며 2주에 한 번 이상 수액을 맞으며 관리를 해주고 있어서 증상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내가 한발이와 노랭이를 그렇게 관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어쨌든 계속 병원을 다녀야 하니 예방접종을 시작했다. 이미 걸린 병은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병이라도 걸리지 않아야 돌볼 수 있을 것 같았고, 병원에서 예방접종이 완료되어야 한발이 중성화 수술을 해 줄 수 있다고 해서다.


예방주사를 맞고 온 후 3일째 되는 날, 노랭이가 이상했다. 내가 가도 모른 척 가만히 있고, 움직임이 없었다. 부르면 눈만 깜빡대고 다가오지 않았다. 예방접종도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있다고 들어서 병원에 전화해보니, 맞고 나서 바로 증상이 오면 부작용이지만, 며칠 있다 그러는 건 예방주사 때문이라고 보긴 힘들다고 했다. 컨디션이 안 좋은가 싶어 며칠 쉬면 괜찮겠지 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노랭이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이름을 부르며 주변을 찾아다니다 빌라 뒤편 풀숲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왜 거기 혼자 있어.”하고 안아들고 마당으로 데려왔는데, 수업하다 나가보니 또 없었다. 혹시나 싶어 풀숲에 가보니 거기 또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아.... 저게 죽으려고 저러는 구나.’


그 많은 길고양이들은 어디 가서 죽는지 궁금해 한 적이 있다. 로드킬 당해 죽는 아이들의 사체는 간혹 보지만, 아파서 죽거나 굶어 죽은 사체를 본 적은 없다. 고양이 카페에서 게시글로는 접한 적이 있는데 내가 본 적은 없었다. 아마도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에 가서 죽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고양이과 동물들은 아픔을 잘 숨긴다. 야생 시절에나 필요했던 못 되먹은 습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어쩌면 길고양이들에게는 지금도 필요한 습성일지 모른다. 노랭이도 그런 것 같았다. 아픈 걸 들키지 않으려고 풀숲에 숨어있는 게 아닐까. 그러려면 멀리나 가지 집 바로 앞 빌라 뒤에 가 있을 건 뭐람. 내가 못 찾는 데로 멀리 멀리 갔으면 마음 아플 일은 없을 텐데. 원망스러웠지만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범백을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선생님 추측으로는 닭 뼈 같은 먹으면 안 되는 걸 주워 먹어 장에 탈이 난 것 같다고 하셨다. 노랭이가 아프기 전 날, 치킨박스를 뜯어 먹은 흔적이 데크 여기저기서 보였던 게 기억이 났다. 예방접종 때 몸무게를 쟀었는데, 일주일 만에 700g 빠져서 홀쭉해진 노랭이를 보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저렇게 놔두었다가 죽어버리면 그 죄책감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입원을 시켜놓고 집에 와서 고양이 카페에 글을 올렸다.

“마당 고양이가 아플 때 어떻게 하실 건가요? 입양? 마당에 놔두고 병원 치료?”


당연히 입양하라는 댓글이 달릴 줄 알았다. 그럼 못 이긴 척 하고 노랭이를 집안에 들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댓글을 달아준 6명 모두 “마당에 놔두고 돌보라”고 했다. 집안에 아픈 성표 셋을 키우고 있으면서 성묘를 들인다는 것은 집고양이들을 힘들게 할 게 뻔하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또 노랭이만 입양하면 엄마 찰떡인 한발이는 어쩔 것인가. 순한 아이니 한발이까지 입양한다 쳐도 남은 이방인이 문제였다. 셋이서 의지하면서 1년 넘게 살아왔는데, 노랭이와 한발이만 집 안에 들인다는 건 이방인에게 떠나라는 말과 같았다. 이방인이 여전히 나를 경계한다고 해서 정이 들지 않은 건 아니다. 노랭이와 한발이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방인도 식구라 생각해왔기 때문에 도저히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상태가 나아진 노랭이를 퇴원시켰다. 집 안에 데리고 들어갈까 하다가 노랭이가 한발이 보고 싶어 할 것 같아 마당에 풀어주었다. 역시나 만나자 마자 물고 빨고 하는 녀석들을 보니 하나만 떼어놓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아무래도 마당에서 키우되 내가 좀 더 신경 써서 돌보는 게 모두를 위해 좋은 선택이었다. 얼마 전에 새로 지어준 마당 집에 문도 달고 좀 더 튼튼하게 보수해 주었다.


다행히 며칠 더 약을 먹고 노랭이는 회복했다. 밥도 잘 먹고 똥도 잘 싸고 활력도 생겼다. 노랭이와 한발이의 마지막 예방접종도 무사히 마쳤다. 한발이는 접종하면서 수액도 맞고 항생제 주사도 맞았더니 구내염이 많이 나아서 침을 흘리지 않고 얼굴도 말쑥해졌다. 조금만 더 살이 찌면 중성화 수술 날짜를 잡아야겠다고, 그 다음엔 이방인을 포획틀을 빌려서라도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그렇게 계획을 세웠다. 결국 아무 의미 없어질 그런 계획을 세우면서 잠깐 행복했었다. 아주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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