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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Mar 15. 2021

보낼 수 없어 생기는 병

펫로스 증후군

처음에는 밤마다 울었다. 남편이 잠들고 나면 소리죽여 눈물을 흘렸다. 나는 힘들고 아픈 걸 남에게 잘 드러내지 못한다. 가볍고 경쾌한 사람으로 보이길 바라다보니 어느 순간 그렇게 돼버렸다. 힘들 때는 그냥 혼자 삭히는 게 훨씬 회복이 빠른 편이라 누군가의 도움을 크게 바라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낮에는 밝게 웃고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저녁에는 남편과 즐겁게 밥을 먹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러다 한밤중에 혼자 SNS를 뒤적이다, 웹툰을 보다, 검색을 하다 고양이와 관련된 무언가만 보면 울컥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한참 울다 지치면 잠들었다. 그런 밤이 반복되던 어느 날 문득 ‘랏샤가 어디 다른 곳에서 다시 태어나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종교도 없고, 환생이나 영혼 같은 걸 믿지 않는다. 그런데 자꾸만 그 생각이 떠나질 않는 것이다. 어딘가에 랏샤랑 꼭 닮은 고양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빨리 찾지 않으면 그 아이도 죽어버릴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날부터 자기 전에 2-3시간씩 웹서핑을 하며 전국의 보호소를 뒤지고, 고양이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를 들락날락 거리면서 랏샤랑 조금이라도 닮은 아이가 없는지 찾아다녔다. 당연하게도 그런 아이는 없었다.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자, 입양 홍보를 하는 게시물 중에 5월 25일이나 6월 26일에 태어난 아이를 찾았다. 5월 25일은 랏샤의 생일이고, 6월 26일은 랏샤가 떠난 날이다. 그렇게 찾은 고양이 중에 고등어 태비의 아이가 있었다. 나는 매일매일 그 고양이의 사진과 게시글을 읽으며 랏샤와 비슷한 부분을 찾으려 애썼다. 하나라도 비슷한 게 있으면 랏샤라고 생각하고 데려오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당연히도 랏샤와 닮은 점은 없었다.


다음에는 스코티시 폴드를 검색했다. 생김새가 비슷하면 랏샤와 성격이나 습관이 달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입양홍보에 올라온 글에 연락을 한 적도 있다. 그중 2개월 된 새끼가 있어 입양신청서를 보내기로 마음먹고 글을 작성한 후,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물었다.  

“나 새끼 고양이 데려와도 돼?”

남편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 랏샤 생각나서 안 되겠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데려올게.”

“남아있는 애들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지. 쟤들 또 아프면 어쩔래?”


그 말을 듣고 나니 무서워서 입양신청서를 보낼 수가 없었다. 감당하지 못할 일을 벌여서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어놓고 또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려고 하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후로도 입양게시판을 떠날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놓치면 랏샤를 지나칠까 봐 스마트폰 중독자처럼 틈날 때마다 게시글을 뒤졌다.


나중에는 초조해졌다. 이러다가 내가 영영 잘못될 것만 같았다. 어서 내 옆에 랏샤가 돌아와야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달을 새벽까지 울면서 랏샤를 찾아 헤매고 낮에는 또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을 대하면서 나도 조금씩 이상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 누군가에게 말하고 도와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나는 엉뚱하게도 펫샵에 전화를 걸었다.

“갈색 아메리칸 숏헤어 무늬에 스코티시 폴드인 고양이 있나요? 사이트에 있는 OO이라는 아이 보고 전화드렸어요.”

“아, 네. 그 아이는 입양되었고요. 지금 그 색깔은 없어요. 혹시 회색은 싫으세요?”

“그럼 갈색 아이는 언제 입양할 수 있나요?”

“몇 개월 기다리셔야 될 거예요. 예약해놓으실 수도 있고요.”

“네, 생각해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지금 세일 기간인데 예약하시면 지금 가격으로 드려요.”


전화를 끊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정말 미친 거 아닌지 손이 벌벌 떨렸다. 그때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내가 아이를 사려고 하다니. 그것도 색깔, 모양, 가격을 얘기하면서 물건 고르듯이 아이를 예약 구매하려고 하다니. 내가 이런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걸 랏샤가 바랄까. 엄마가 자기를 잊고 자기랑 똑같이 생긴 아이를 쇼핑하러 가는 사람이 되길 랏샤는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럴 시간에 형아들이랑 누나 머리 한 번 더 쓰다듬어 주길 바랄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사실 몇 달 전에 랏샤가 죽었어.”

“아이고 우짜노. 그 제일 예쁜 거 그거 아이가.”

“응. 갑자기 아프게 돼서 한 달 앓다가 갔어.”

“우짜노. 우짜노. 니가 많이 아팠겠네.”

“응.”

“그래서 내가 키우지 말란기다. 보내기가 너무 힘들다이가.”


어린 시절 나는 버려진 동물을 집으로 데려가거나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가는 일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야단을 치면서 갖다 버리라고 했으나 결국 그 아이들을 정성으로 돌보고 죽을 때 가장 슬퍼하는 건 엄마였다. 그랬기에 내가 고양이를 키운다고 했을 때 반대를 많이 했다. 남편에게 절대 못 키우게 하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고. 그렇지만 집에 올 때마다 내 고양이들을 손주들처럼 예뻐하고, 안 보면 보고 싶다고 전화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런 엄마에게 말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누군가 랏샤가 떠난 것을 묻지 않는 이상 한 번도 내 의지로 말한 적이 없었는데, 입 밖으로 꺼내고 나니 그 사실이 받아들여졌다. 랏샤는 이 세상에 없고, 다시 태어나지도 않는다. 랏샤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너무나 간단하고 정확한 진실을 받아들이는데 몇 달이 걸렸다.

 

『인생수업』을 쓴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이 죽음을 수용하면서 5단계의 변화를 걸친다고 했다. ‘부정-분노-타협-절망-수용’이다. 이건 꼭 죽음을 수용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나는 랏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죽음 자체를 믿지 않았고, 나의 잘못으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화가 나서 자신을 미워했다. 노력하면 랏샤와의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그럴 수 없다는 것에 절망했지만, 결국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랏샤가 떠난 뒤로 모든 모임을 중단하고, 책방 운영도 멈췄다. 사람들을 최대한 덜 만나고 싶었다. 괜히 사람들이 미웠기 때문이다. 나는 9년간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들은 나의 슬픔에 조금도 공감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진심 없는 위로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냥 혼자서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걱정해주었고, 랏샤를 예뻐했던 사람들 중에는 진심으로 울어준 사람들도 있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였기에 랏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너무 외롭게 보낸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떠나기 전에 인사하게 할 걸 후회도 됐다. 책방 책장 한 자리에 랏샤의 제단을 조그맣게 만들어 두었는데, 그곳에 쪽지를 써 놓고 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올 때마다 제사를 지낸다고 큰절을 두 번씩 하고 가거나, 간식을 사다 올려주기도 했다. 나는 그럴 때 모른 척을 했다. 아는 척을 하면 울 것 같아서 고맙다는 말은 속으로만 했다. 함께 슬퍼해도 괜찮았을 텐데 랏샤의 죽음을 인정하기 싫었던 마음에 숨기기만 했고, 그 때문에 마음이 더 곪았다. 


나는 아직 랏샤를 완전히 보내주지는 못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랏샤를 위해 쓰기로 한 이 글을 마칠 때쯤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글을 마치면 작은 책으로 묶어 랏샤의 유골과 함께 마당 제일 큰 나무 금목서 밑에 묻어주려 한다. 쑥이도 있으니까 심심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랏샤의 사진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될 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아직은 그게 쉽게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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