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못 해 먹겠네…."
밤낮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암암한 방 안 침대 위. 인상을 잔뜩 찌푸린 해주가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침대맡에 널브러진 빈 약봉지들과 비워진 술병 하나. 분명 약을 한 움큼 집어삼켰는데, 자고 일어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깨어나 버렸다. 목만 조금 따끔한가.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되냐….' 휴대전화의 전원을 켜, 날짜를 확인한다. 이틀이 지났다.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다시 살아가야 한다니…. 머리가 욱신거린다.
부재중 전화 1건, 문자 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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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같이 어두운 방을 벗어나 주방으로 향한다. 풀옵션이라는 말에 작은 기대나마 품고 들어 온 집이지만, 얼마나 오래된 건지 에어컨과 냉장고, 벽지마저 색이 모두 누렇게 바랬다. 이따금 코를 스치는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ㅡ지하실의 눅눅한 곰팡내까지 더해져 고약하기까지 하다ㅡ에 불쾌함이 올라와도,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월세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살림살이는 처음 들어왔을 때 그대로이다. 침대와 밥상, 냄비까지 있었기에 해주가 들여온 거라곤 이불과 베개, 세면도구 정도가 전부였다.
대낮에 눈이 떠져 딱히 할 것이 없다. 뭐라도 먹어볼까 싶어 냉장고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으…. 이놈의 냉장고' 이를 악물고, 있는 힘껏 두 팔로 떨어트려서야 겨우 열었다. 반쯤 남은 2L 생수병과 먹다 남은 쌈장, 바닥을 드러낸 김치통, 그리고 달걀 몇 개…. 별 소득 없이 문을 닫는다. 벽면을 더듬어 주방 스위치를 켠다. 갑자기 밝아진 탓에 눈앞에 지렁이 같은 게 둥둥 떠다닌다. 찬장을 열자 쌓여 있던 과자와 라면들이 후드득 떨어진다. '아 진짜….' 쏟아진 것들을 대충 밀어 넣고, 라면 하나를 집어 든다.
보글보글. 물이 끓어 넘치려는 데도 멍하니 라면 봉지만 만지작거리는 해주. 약기운 때문인지, 속이 메슥거리고, 지끈지끈 두통의 강도도 세진다.
'으….'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도로 침대에 털썩 드러눕는다. 곧이어 올라오는 구역감에 입을 틀어막은 채 화장실로 달려간다.
"우웨엑-"
틀어막은 입 밖으로 토사물이 비집고 나오려 한다. 급한 대로 머리를 들이밀어 변기 뚜껑을 열자, 개방된 둑처럼 온갖 것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욱. 웨엑-"
다시 한번 왕창 쏟아 내곤,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벽을 더듬거리며 화장실 스위치를 켠다. 환해진 불빛 아래 적나라한 몰골을 바라본다. 옆으로 닦이다만 침 자국, 움푹 팬 볼, 광대까지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앙상한 쇄골이 드러날 만큼 목이 늘어난 티셔츠. 풀린 눈으로 찬찬히 바라보며, 또다시 현실을 실감한다. 수전에서 쏟아져 나오는 차디찬 물로 얼굴을 닦아내고, 두 손에 모아 입안에 남은 잔여물을 헹궈낸다. '이 정도면 됐지.' 터덜터덜 다시 침대 위에 쓰러진다.
'다 싫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중, 드르륵 진동 소리가 몸을 타고 흐른다.
[아빠]
아빠라는 글자만 봤을 뿐인데 온몸이 경직됐다. 해주의 기억 속에 아빠는 한 번도 따뜻한 품을 내준 적이 없었다. 쓰다듬을 받은 적도, 잘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매일 엄마와 싸우고, 엄마가 집을 나가면 그 화풀이로 어린 해주를 사정없이 때려댔다. 엄마가 들어오지 않으면 안 온다는 이유로, 돈이 떨어지면 나가서 돈이라도 벌어오라는 이유로, 새로 만나는 아줌마랑 싸우면 이게 다 너 때문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맞았다. 해주가 독립을 하며 물리적인 거리는 멀어졌지만, 수시로 전화를 걸어 아쉬운 소리를 해댔다. 오늘 역시 같은 용건일 걸 알면서도 두려움에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누른다.
"어. 뭐 하냐?"
"저, 그냥 있는데…."
"어, 그래. 그 민지 있잖아? 민지가 내일 생일인데, 아빠가 지금 당장 현금이 없어서 말이야. 한 10만 원만 보내라. 그래도 네 동생이잖냐."
"저도 돈 없어요…."
"10만 원도 없다고? 너 또 수급비 아무 데나 막 썼지? 잔말 말고 빨리 보내라. 아빠 계좌번호 알지? 바로 보내~? 응? 끊는다."
뚜뚜뚜-
"동생은 무슨…. 내 생일은 언젠지도 모르면서…. 짜증 나."
민지라는 애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집을 나간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아빠가 데려온 아줌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다. 나와는 6살 차이 나는 여자애.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물어보지도 않고 덜컥…. 그 아이가 태어나자 나는 언제나 늘 뒷전이었다. 아줌마는 동화 속 계모처럼 아빠 앞에선 나를 챙겼지만, 아빠가 없을 땐 투명 인간보다 못한 취급을 했다. 좋은 거, 맛있는 건 모두 그 아이에게. 먹고 남은 음식에 랩을 씌워 두면 나는 배가 고프니 그걸 맛있다고 싹싹 비웠다. 옷소매가 반 뼘 정도 올라가면 그때야 한 번씩 내 취향 따위가 고려되지 않은ㅡ취향이 없었던 거 같기도ㅡ옷을 사다 주곤 했는데, 그것도 새 옷이라고 얼굴을 파묻으며 기뻐했더랬다. 매년 민지의 생일이 되면, '넌 별로 안 좋아하지?'라며 그들끼리 하하 호호 놀이공원에 갔다. 밤이 다되어서야 돌아온 그들과, 잠이 든 채 아빠 품에 안겨 들어오던 너. 그 애는 잠꼬대하듯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내려다보곤 했다. 그런 아이를, 동생으로 받아들일 수도, 좋아할 수도 없었다. 그저 어른들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만 낮추어 살았다. 아니, 어쩌면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의 눈치마저 살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학교만 나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가야지.' 그렇게 버틴 게 자그마치 15년이다. 해주에게 그 15년은 인생에서 송두리째 걷어내고 싶은 암흑의 시간이었다.
10만 원을 송금했다. 잔액 175,200원. 매달 기초 수급비가 들어오지만, 그 돈은 월세 30만 원과 관리비를 내고 나면 30여만 원이 남는다. 아빠가 매달 10~20만 원 정도 가져가면, 수중엔 대략 10만 원 남짓 남는다. 이 돈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외식은 사치고, 쇼핑이나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다. 이게 사는 건가? 계속 살 필요가 있을까?
이번이 세 번째 자살 미수다.
학창 시절 지속적인 괴롭힘에 못 이겨 처음 손목을 그었다. 피를 보면 기절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고 살아 있음을 느꼈다. '왜 안 죽지?' 하며 몇 번 더 그었다. 하지만 내가 나를 죽음에 이를 정도로 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프기도 했지만, 일정 세기 이상은 정말 죽을까 봐 겁이 났다. 결국 지울 수 없는 상처들만 남길뿐 죽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그런 나를 안쓰럽게 대하고, 다독여주었다. 그렇게라도 누군가의 온기를 빌려 내 안의 허기를 채웠다.
또 한번은, 모든 문을 닫고 가스레인지 불에 종이를 찢어 태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가 난다는 주민 신고에 너무 일찍 발각됐다. 차마 죽으려고 했다는 말은 못 하고, 놀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고 둘러댔다. 소식을 듣고 집에 온 아빠는 해주를 보자마자 발로 걷어차고, 연신 뺨을 때렸다. 제정신이냐 소리 지르며, 해주의 비명이 새어나가기라도 할까 이불을 덮어 죽어라 밟아댔다. 아줌마와 민지는 그런 행동을 단 한 번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모른 척 문을 닫고, TV 소리를 키울 뿐이었다.
아빠는 그런 해주를 이해하려 애쓰거나 위로해 주기는커녕, 미쳐서 저런다며 서둘러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과, 몇 주의 순종적인 병원 생활로 다행히 빠른 퇴원이 가능했다. 퇴원 후 하고 싶은 것을 적으면 삶의 의지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의사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살리려는 의사 앞에 앉아, 이전보다 더욱 확실하게 죽겠다고 다짐했다. 자살 실패 후 남는 건, 생각보다 쉽게 죽지 않는다는 허무함과 자해에 의한 고통, 그리고 '자살하려던 애'라는 지저분한 낙인이다.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친 자에게, 전보다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두 번 다시 미수에 그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섰다.
그로부터 한동안은 잠잠했다. 아빠와 아줌마의 감시 아래 1~2주에 한 번씩 병원에 다녀야 했기 때문에.
요즘 어떠냐는 의사의 말에 '저 멀쩡해요. 안 죽을게요.'와 같은 기계적인 말만 반복했다. 그나마 약을 먹을 땐 충동이 잦아든다. 자기 전 약을 먹고 30분이 지나면 맥없이 풀썩 쓰러졌고, 눈을 뜨면 아침이었다. 병원에 가는 날 외엔 방문을 나서지 않았다. 한 번은 방문을 잠갔다가 또다시 잠그면 손잡이를 뜯어버린다는 말에 숨이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뛰어내릴까, 편의점에 간다고 하고 차도에 뛰어들까, 고민도 했지만, 그건 도저히 무서워 실행할 수 없었다. 그렇게 꼬박 1년을 병원에 가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 보냈다. 그리고, 자립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미성년의 나이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많지 않았다. 패스트푸드점, 전단, 편의점, 서빙 등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그와 동시에 가출을 반복했다. 아빠가 없을 때 옷가지만 몇 개 챙겨 벌어둔 돈으로 무인텔에 머물고, 때론 가출팸과 어울리며 생활했다. 가출팸과 어울리는 건 해주의 성격과 맞지 않아 몇 번 나간 게 전부였다. 아빠에게 월세 보증금을 부탁했지만, 역시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그 후로 아득바득 돈을 모아 아빠와 멀리 떨어진 작은 단칸방으로의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