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결심

by 화유

도시에선 도저히 답이 안 나왔다. 죽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여기서 더 살 이유도 없었다. 마지막 여행 겸 완전히 사라지기 위해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짐이랄 것도 없어 집 나올 때 들고 나온 그대로를 가방에 욱여넣었다.

"그래, 바다 좋다."

내일 바로 떠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평일이라 그런지 선택지는 많았다. 그런데 막상 어디를 가야 할지는 몰랐다. 스크롤을 내리며 역이름을 훑는다.

'…. 아! 진항!'


아빠, 엄마와 함께 갔던 바닷가. 그나마 행복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그곳으로 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일 아침 9시 10분 기차표를 예매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이른 시간을 선택했다. 계약 때 이후 연락한 적 없던 주인아저씨에게 내일 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잠시 후 '그래요.'라는 간단한 답장이 도착했다. 그렇다, 이렇게 내가 갑자기 사라져도 아쉬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답장까지 받고 나니 더 미련이 없어졌다. 나는 내일 이곳을 영원히 떠난다.



다음 날 아침


얼마만의 여행인지,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는 사이 아침이 밝았다. 불면증을 달고 살아서 하루쯤 뜬눈으로 지새우는 건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어제 싸둔 짐을 다시 확인하고, 냉장고에 남은 물을 이에 부딪쳐가며 탈탈 털어 마신다. 소슬해진 날씨와 도착지의 알 수 없는 상황을 대비해 바스락거리는 검은색 후드 점퍼를 걸쳐 입는다. 현관 안쪽에 놓인 두 켤레의 신발 중 하나를 비닐에 담아 가방에 밀어 넣고, 잘 신지 않아 여전히 뒤축이 빳빳한 운동화에 발을 넣는다. 집안을 잠시 둘러본 뒤 문을 나선다. 이제 안녕이다.

기차역까지는 버스로 15분. 아직 열차 시간까지는 1시간 이상 남았지만, 지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조금 일찍 움직인다. 골목길을 돌아 대로변으로 나오자 출근하려는 사람들로 정류장이 북적거린다. 해주가 탈 광역버스는 정해진 구역이 있어 줄의 맨 끝에 가서 선다. 버스를 기다리는 모두가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기도, 화면을 보며 어깨를 들썩 거리기도 한다.

해주는 그 흔한 메신저도, SNS도 지운 지 오래다. 자신의 삶은 이렇게 고달픈데, 다른 이들은 모두 행복한 것 같아 스스로 더 비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차피 연락하는 사람도 없지만…. 세상과 등 진채 철저히 고립된 삶을 선택했다. 언젠가 일을 해보려고 했지만,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곤 서류에서부터 번번이 탈락하는 바람에 더 시도하지도 않았다. 매월 숨만 쉬어도 지급되는 기초 생활 수급비조차 끊길까, 노력을 덜 한 탓도 있다. 어차피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있기만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점점 삶의 의미를 잃어가게 했다. 왜 살아 있어야 하는지를 찾는 게 더 어려운 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니, 죽음을 택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은가?

쉬익- 가스 빠지는 소리와 함께 앞사람의 구두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혹여나 줄을 이탈할까 싶은 조바심에 바짝 따라붙어 계단을 오른다. 출근 시간대라 이미 많은 사람이 먼저 타 있었다. 다행히 빈자리가 보여 가방을 앞으로 돌려 앉는다. 흘긋 본 안쪽 자리 남성은 콩나물 같은 이어폰을 끼고, 창문턱에 팔을 올린 상태로 눈을 감고 있다. 15분이면 깜빡 잠들 수도 있다. 해주는 가방을 움켜쥐고, 눈을 부릅떠 전광판을 응시한다.


“삐빅-”

버스에서 내린 해주는 좌우를 살피며 기차역을 찾는다. 이렇게 광활한 곳에 혼자 올 일은 없었기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때마침 눈에 들어온 입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간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이 즐겁게 웃으며 벤치 곳곳에 있다. 그들을 뒤로하고 최대한 구석진 곳을 찾는다. 열차 시간까지 50분. 멀뚱히 있기는 어렵겠단 생각으로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을 향한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삼각김밥 하나와 컵라면 작은 컵, 큰 사이즈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생수를 계산했다. 전자레인지가 있는 귀퉁이로 가 컵라면에 물을 따르고, 닫힌 뚜껑 위에 삼각김밥을 올린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편의점 바깥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표정을 살핀다. 주로 혼자인 사람들은 통화를 하거나 무표정하게 휴대전화를 본다. 둘 이상의 사람들은 대화가 끊길세라 두 입이 바삐 움직인다. 그중 손뼉까지 치며 웃는 사람을 보고 있자니, 공허함마저 올라오지만, 잠시뿐인 감정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해주도 친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초등학생 시절 집에 놀러 갈 만큼 친한 친구가 있었다.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해주의 가정사를 알게 된 친구 부모님은 ‘그런 애랑 놀지 말라’며 친구를 크게 꾸짖었고, 그날 이후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그 애는 다른 친구들에게 해주를 욕하며 그럭저럭 지내오던 친구들과의 사이조차 멀어지게 하였고, 그 후로 해주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었다.

미지근해진 삼각김밥을 거두니, 뚜껑이 절로 열리며 해주의 얼굴로 하얀 열기가 피어올랐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먹는 조합이지만, 여전히 맛이 좋다. 해주에게는 이게 만찬이고, 산해진미이다.

반쯤 남은 커피를 들고, 열차가 들어오는 플랫폼 앞에 섰다. 어젯밤 ‘기차 타는 법’, ‘기차 음식물 반입’, ‘기차 자리 확인하는 법’ 등을 검색했던 터라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린다. 저 멀리 다가오는 기차 소리에 캐리어 손잡이를 내리는 사람들과 벤치에서 일어난 사람들이 탑승 위치로 모여든다. 어릴 적 아빠와 엄마를 번갈아 올려보며,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처음 타는 기차에 신이 나 어쩔 줄 몰라하던 마음. 그 순수했던 마음을 품어 본 적도 없었던 것처럼 이제는 멀뚱한 표정으로 기차를 바라본다.


“창 측…. 12D…. 여기다.”

가방을 벗어 다리 아래 내려 두고, 간이 책상을 펼쳐서 들고 있던 커피를 올린다. 정차해 있는 기차 안에선 시선 둘 곳이 마땅치 않다. 자리에 놓인 책자를 펼쳐 좌르르 넘기는가 싶더니, 얼마 안 가 도로 자리에 둔다. 잠시 후 기차는 남겨진 사람들을 두고, 홀연히 자리를 떠난다. 점차 속도가 붙으며 풍경이 시간이 되고, 그 시간마저 느껴지지 않는 순간에 이른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진항역에 도착하겠습니다. 진항역에 내리실 손님은 안녕히 가십시오. 고맙습니다. ”

깜빡 잠이 들었던 해주는 안내 방송 소리에 눈을 떠 내릴 채비를 한다. 2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그동안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시간은 흘러갈 뿐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기차가 서서히 정차하고, 저마다의 기대에 부푼 사람들과 뒤섞여 계단을 내려간다.

“여기구나.”

정해둔 목적지가 없었기에, 어디부터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덜컥 혼란스러웠다. 모두가 떠나간 플랫폼의 텅 빈 벤치에서 지도 앱을 살핀다. 진항에 이렇게 많은 바다가 있다니, 어릴 적 갔던 바다가 어디였는지 생각해 내는 것은 무리였다. 거리뷰로 해안가를 미리 걸어본다. 그중 어느 한 지점이 해주의 눈에 들어온다. 녹음이 에워싼 바다. 그곳으로 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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