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바다로

by 화유

이곳에 온 건 두 번째이지만, 처음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진항역은 탑승한 기차역에 비해 작고 초라했다. 이렇다 할 음식점도, 그 흔한 프랜차이즈도 보이지 않는다. 역에서 나와 처음 본 풍경은 낮은 건물들과 한산한 거리, 뜨문뜨문 보이는 사람들과 널브러져 털을 고르는 고양이가 전부였다. 다른 세계에 와있는 듯 낯선 풍경에 잠시 멍했다가, 은은하게 풍기는 바닷냄새에 괜스레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하-”

도시에선 숨조차 제 마음대로 쉬어보질 못해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그 암울한 곳을 떠나왔다는 실감이 났다. 이곳에선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희망마저 느꼈다. 마지막 기억이 나쁘지만은 않았으면 하는 알량한 생각도 들었다. 며칠이 걸릴지 모르겠다. 언제쯤 끝내야 할지, 당장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미지의 영역이다. 목적지만을 향해 달려왔을 뿐, 도착해서 무엇을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즉흥적인 성격이 이럴 때 참 곤란하다 싶다. 아무렴 어떨까. 왔으면 그만이지. 벤치에서 보았던 ‘신포 해변’을 검색한다. 버스로 30분. 배차 간격 15분. 도보 1시간 40분. 급할 거 없으니 일단 걷기로 한다. 간지러운 햇볕을 맞으며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다. 가는 길에 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천천히 바닷가를 구경해야겠다는 나름의 짧은 계획도 세웠다. 이렇게 장시간 걷는 게 처음이라 힘들면 쉬어갈 요량이다. 편의점에서 샀던 물도 그대로여서 어딘지 모르게 안정감이 들었다. 이 정도면 됐지 뭐. 이렇게 여유로운 기분이 얼마 만인지 낯설고도, 한편으론 서글픈 마음까지 든다.


지도 앱에서 도보 경로를 선택하고, 방향만 잠깐씩 들여다보며 천천히 걷는다. 진항의 많은 해변 중 ‘신포 해변’을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푸른 공원이 바다를 안고 있는 듯한 안락함과 ‘신포리’라는 마을 이름이 썩 마음에 들었다. 한참을 걸은 것 같은데, 마땅한 음식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평일 낮에 열린 곳이 많지 않은 건지, 해주가 살던 동네가 교차하며 이질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몇 블록 더 걸으니, 노란불이 켜진 <숙희네 밥상>이 눈에 들어왔다. 정겨운 이름이 왠지 맛집일 것 같다. 문을 열자, 달랑달랑 현관종 부딪히는 소리와 주인아주머니의 밝은 미소가 해주를 반겼다.

“몇 분이셔요~?”

“저, 혼자요.”

“어서 와요. 편한데 앉아요.”

4인 테이블 6개가 놓인 작은 규모의 식당. 손님은 대낮부터 소주잔을 기울이는 아저씨들과 해주. 이렇게 두 팀이다. 세련되지 않은 인테리어이지만, 메뉴판은 새로 한 건지 잉크색이 진하다. 일반적인 백반집 메뉴들…. 제육볶음, 해물된장찌개, 김치찌개, 도루묵찌개, 회덮밥…. 새로운 도전을 경계하는 터라 그나마 실패가 낮은 메뉴를 주문한다.

“뭐 드실래요?”

“김치찌개요.”

“그래요. 물은 셀프~!”

“아 네. 감사합니다.”

잠시 후 갖은 반찬들이 깔리고, 해주 앞으로 세월이 깃든 양은 냄비가 놓인다. 그러고는 의문의 접시가 함께 놓였다. 채소와 빨간 양념, 회로 보이는 것이 담긴…. 이게 뭐지….?

“뜨거우니까 조심. 그리고 이건 서비스! 가자미회.”

“앗…. 감사합니다.”

가자미회라니, 처음 보는 비주얼이라 먹고 싶은 마음은 선뜻 안 들었지만, 주신 마음을 생각해 긴장하며 한입 넣어 본다. 어라? 꽤 신선하고…. 맛있다. 회가 서비스라니…. 이거 비싼 거 아닌가…. 왜 주신 거지…. 예상치 못한 서비스에 고마움보다 의문이 넘친다. 이런 모습은 참 별로다.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허기진 속을 달래기엔 충분했다. 가게를 나와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진한 해초 내음이 코를 찌른다. 오후 3시. 바다에 다다랐다. 나란히 정박한 낚싯배들이 보인다. 낚싯배들을 보고 있자니, 어릴 적 낚시터에서 작은 낚시 의자에 아빠와 함께 앉겠다고 조르던 기억이 난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애써 기억을 외면한다. 다 옛일이고, 그런 추억은 지금의 해주에게 아무 쓸모가 없었다. 환하게 웃으며 간지럽히던 아빠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엄마의 존재도…. 이제 해주 곁엔 그 누구도 없다.

오는 길에 보았던 공원이 궁금해 잠시 돌아보기로 한다. 바닷가 앞 공원이라….

‘이런 곳에 살면 기분이 어떨까?’ 상상해 봤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젓는다.

“내가 무슨….”

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한다. 잠은 어디서 자야 할지, 또, 생활비라도 벌 겸 일거리도 찾아야 했다. 이런 곳에서는 일거리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앞이 깜깜하고 막연했다. 살려고 온 곳이 아니기에,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조금씩 어둠이 드리우고 있었다. 우선, 잘 곳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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