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민박집 중 가장 단출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얼마나 머물게 될지 모르기에 다소 오래되어 보이는 집을 선택했다. 어딘가에나 있을법한 초록색 철문에 낮은 담벼락이 둘린 아담한 민박집이다. 해주는 조심스레 대문을 열고, 안쪽을 향해 외친다.
“저기요~ 계세요?”
“…”
“안 계세요~?”
“…”
“누고?”
발걸음을 돌리려던 차에, 안에 있던 사람의 그림자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차분한 말투에 곱상한 모습의 할머니가 나타났다. 민박집 외관에서 풍기는 세월만큼 연세가 지긋해 보였다.
“방 보러 왔능교”
“아 네, 저 일단 일주일….? 정도 지내려고요.”
“일주일? 여행 왔나 비네”
“아 네…. 하루에 얼마….”
“일단 안으로 들어 오소.”
“네? 아 네….”
“서울에서 왔나 비네. 혼자 왔나?”
“네.”
할머니의 뒤를 따라 걸으며 짧은 대화가 오갔다. 가장 안쪽 문을 열며, 방문 안에 걸려 있던 열쇠를 해주의 손에 건네준다. 열쇠를 만져본 지도 오래라 괜히 만지작거린다.
“아침은 6시에 줄 끼고, 못 인나면 없는 기다.”
“아, 네….”
아침을 준다니 그만큼 방값이 비싼 건 아닐까 내심 걱정됐다. 다른데 보고 오겠다며 다시 나갈까? 하는 생각 중에 주인 할머니가 말했다.
“밥 묵었나?”
“아뇨 아직….”
“안 그래도 과메기 한 짝 다 우야나 했는데 잘 됐다. 짐 두고 건너온나.”
“아…. 네, 잠시만요.”
배가 고팠던 해주는 할머니의 제안을 덥석 물었다. 매고 있던 가방을 방문 안쪽에 내려두고선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 문을 연다.
“헐….”
철로 된 화장실 문은, 열기 전부터 불안했다. 문을 열자 차디찬 공기와 함께 이곳저곳 벗겨져 속이 다 드러난 타일 바닥이 보였다. 최대한 닿지 않기 위해 발뒤꿈치를 세워가며 손을 씻었다. 수건도 얇디얇아 제 역할을 못 하는 듯했지만, 적당히 물기를 닦고 나왔다. 당장이라도 옷을 갈아입고 싶었지만, 할머니가 기다리실까 싶어 겉옷만 벗어 서둘러 건넌방으로 넘어간다.
주인 할머니가 사용하는 방은 제법 넓었다. 두툼한 요와 꽃분홍색의 솜이불, 몇 번은 다시 꿰맨 듯한 베개와 막대 같은 작은 베개 하나, 원목 장과 협탁 위 작은 TV, 액자 몇 개가 살림 전부인듯했다.
“왕왕!”
작고 하얀 개 한 마리가 낯선 해주를 보고 짖었다. 할머니의 “괘안타” 소리에 짖기를 멈추고 할머니 무릎으로 올라가 앉는다. 할머니는 저리 가 있으라며 다시 내려놓았다. ‘낑-’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드리니 괜스레 측은하게 느껴졌다.
“배고프자? 자, 무 바라”
“아…. 저 이거 안 먹어봤는데….”
“그래도 한입 무 바라, 자-”
엉거주춤하게 앉은 자세로 입을 크게 벌렸다. 자리에 앉으며 내려다본 밥상 위엔 처음 보는 음식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해주가 먹을 수 있는 거라곤 밥과 김치 정도가 다였다.
입에 욱여넣어진 과메기의 비린내와 낯선 물컹함에 놀란 해주는 헛구역질과 함께 입에 넣은 그대로를 뱉어버렸다.
“웩-”
“만다꼬 올리나. 귀한 긴데”
“죄송해요. 못 먹겠어요. 그냥 밥이랑 반찬 먹을게요.”
“묵을 줄 모리네. 알았다. 니 맘대로 무라.”
손바닥에 다시마와 과메기 두 점, 마늘종, 편 마늘, 초고추장을 잔뜩 얹고 한데 모아 우걱우걱 맛있게 드시는 주인 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덩달아 침이 꼴깍 넘어갔지만, 그렇다고 저 비린 것을 다시 입에 넣고 싶진 않았다. 방 안에는 어색한 공기와 음식 씹는 소리뿐이었지만 딱히 불편하진 않았다. 그저 허기를 달래려 허겁지겁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뭐, 제대로 먹기는 했나. 미안코로. 가봐래이.”
“아니에요.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됐다 마. 내가 할 끼다.”
“아, 네….”
주인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긴 척 방을 나왔다. 밤바람이 쌀랑해 몸을 웅크렸다. 찌르르 찌르르 귀뚜라미 소리도 어쩐지 더 선명하게 들렸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은 유난히 까맣고, 어둠 속에 뿌려진 별은 더없이 반짝였다. 이 시간이 이렇게 어두웠던가. 어촌의 어둠은 빠르게 찾아왔다. 끈적해진 몸을 닦으러 화장실에 들어가려다 이내 포기하고 옷만 갈아입은 채 잠을 청한다.
다음날
“인났나?”
“…”
“뭐 하노, 퍼뜩 안 인나고.”
“아…. 네, 저 좀 더 자려고요….”
“해가 중천인데 만다꼬.”
“네…. 일어날게요.”
어제 하루 종일 걸어 해주의 몸은 천근 같았다. 바닥에 달라붙은 것처럼 팔을 들기조차 버거웠다. ‘그래도 어른 말씀은 들어야지’라는 생각에 이불을 정리하고, 문밖으로 나간다.
“오늘 뭐 할라꼬.”
“마트에 다녀오려고요.”
“만다꼬 가는데?”
“아…. 저 화장실 청소 좀 하고 싶어서요.”
“화장실? 아~ 그기 드라븐게 아이라 오래돼서 그칸다. 그래도 할라믄 하고.”
“아 네…. 근데 가까운 마트는 어디 있어요?”
“요 골목 지나믄 슈퍼 하나 있다. 그기 가믄 다 있다.”
“네, 그럼 잠시 다녀올게요.”
“올 때 오이캉 정구지 좀 사다 줄 수 있나?”
“오이랑…. 뭐라고요?”
“정구지. 정구지라 카면 안다.”
“아 네…. 오이는 몇 개나요?”
“서너 개믄 된다. 진포 할매라고 하믄 알 끼다.”
“아, 네”
끼익- 철컥. 할머니가 집에 계셨지만, 독립 후 두세 번씩 문단속하던 버릇이 몸에 배어 민박집 문도 힘을 실어 단단히 닫았다. 고개를 돌려 슈퍼가 있다는 골목을 바라본다.
“요 골목 지나서라고 했는데…”
슈퍼를 향해 가던 중 골목 끝에서 누군가와 세게 부딪힌다.
“아!”
“악”
“뭐야!”
“어디 다쳤능교. 미안합니더.”
“씨….”
“처음 보는데…. 어디 왔능교?”
“됐어요.”
“와이리 뭐라 카는데. 아이고 내도 됐심더.”
“하….”
아침부터 일진이 사납다며, 괜히 옷에 붙은 먼지를 터는 민석. 분명히 서울 말씬데, 여행을 왔나, 아니면 이사를 왔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해주를 한 번 더 흘긋 보고 지나간다.
<수영이네 슈퍼마켓>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어? 사투리 안 쓰시네요?”
“아, 썼다 안 썼다 해요.”
“아 네…. 저, 혹시 락스랑 청소 솔 어디 있어요? 고무장갑도요.”
“생활용품들은 다 저쪽 뒤에 있어요. 어디 왔어요?”
“아 저는 여기 진포 민박이요. 아참. 할머니께서 오이랑 정구지? 사 오라고 하셨는데”
“아~ 오이랑 부추? 부추가 여기 말로 정구지예요. 호호. 따로 담아 줄게요.”
주인아주머니는 늘 해오던 일인 양 오이 세 개를 들었다 한 개를 더 들고, 부추와 함께 검정 비닐봉지에 담았다. 해주가 가져온 물건들은 조금 더 큰 비닐봉지에 담아 한 손에 잡을 수 있도록 한데 모아 건넨다.
“고맙습니다. 다해서 얼마예요?”
“할머니 집에 온 거면 내 손님이기도 해요. 오늘은 그냥 가요. 할머니한텐 비밀!”
“아? 네…. 감사합니다. 할머니께 잘 전해드릴게요!”
“그래요. 또 봐요!”
검은 비닐봉지 두 개를 흔들며 왔던 길로 돌아간다. 동네 구경도 할 겸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담벼락 사이로 기어코 피어난 들꽃과 유유히 걸어가는 삼색 고양이, 조르르 모아둔 화분들, 정체 모를 나무 의자 하나, 골목 끝에 세워진 해안 둘레길 안내 표지판.
‘평일 아침엔 동네가 한적하구나.’ 불어오는 바람 따라 바다 내음이 밀려와 해주의 코를 스친다. 어쩐지 상쾌한 기분마저 든다.
<진포 민박>
“왔나”
“왕왕!”
“개안타-”
상반신만 한 큰 물뿌리개로 화단에 물을 주던 할머니가 해주 쪽을 쳐다보며 말한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는데, 담벼락 너머에 숨겨진 화단이 참 예쁘다. 오래된 민박집 이미지와는 다르게 안마당은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이다. 마루에 편히 뻗치고 누운 강아지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따라 흥얼거리는 할머니가 괜스레 귀엽게 느껴졌다.
“예뿌자? 코스모스도 국화도 언제 질지 모르니까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두래이.”
“정말 예뻐요…. 아참, 이거요.”
해주는 오이와 부추가 담긴 봉지를 들어 보였다. 손이 없던 할머니는 저기 두라며 고갯짓으로 주방 쪽을 가리켰다. 시선을 따라 들어간 주방 역시 살림이 간소했다. 아마도 할머니 혼자 살고 있는 모양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간소한 살림과는 다르게 누가 다 먹나 싶을 만큼 많은 반찬통이 보였다. 앞쪽 공간을 벌려 오이가 담긴 비닐봉지를 밀어 넣고 문을 닫는다. 주방에서 바라보는 마당은 더없이 예뻤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구석구석 할머니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어 보였다.
“할배가 좋아했지. 오이소백이.”
“아….”
“이맘때쯤 꼭 찾더라니께. 할배 간 지 오랜데도 그 습관이 여적까지 있데이.”
“…. 저도 좋아해요. 그…. 오이소박이.”
용기인지 위로인지 모를 말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 저 그러면 청소하러 가볼게요!”
“오야. 드가라. 필요한 거 있으모 말하고.”
할머니 얼굴에 번지던 옅은 미소를 보니 얘기하길 잘했다 싶다. 아차! 대문은 잘 닫고선 방문은 열어두고 갔다. 하여튼 이 깜빡이…. 봉지에 담긴 청소 도구들을 꺼내고, 창문을 활짝 열어 화장실 청소를 시작한다. 곰팡이 제거까지 하면 좋겠지만 그럴 여력은 없었다.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락스를 뿌리고, 쪼그려 앉아 구석구석 문질렀다. 벌써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걸 보니 이렇게 많이 움직였던 게 언제인가 싶다.
화장실 청소를 마음먹은 건 더러워 보여서도 있지만, 처음 본 해주에게 돈보다 따뜻한 정을 먼저 보여준 할머니 때문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건네는 따뜻함을 거부 없이 그대로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주인 할머니였기 때문일 거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손등으로 대충 넘기며, 닦던 중 밖에서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왔어요~”
“왔어요? 어제 젊은 처자 왔다 아임니꺼.”
“그래요?”
“하모 예. 지금 변소 청소 중이라예.”
“하이고. 하하. 오자마자 고생이네! 그래. 내 뭐 도와줄 거 없나 보자.”
“아이고 됐심더. 요 앉아서 구름이랑 꽃구경이나 하이소.”
구름이. 할머니의 반려견 이름인 모양이다. 복슬복슬 하얀 모습이 구름을 닮아 지어진 이름이겠지. 새로 온 이에게 짖지 않는 걸 보니 아마도 자주 보던 사람인가 보다. 점잖고 낮은 노년 남자의 목소리. 할머니의 친구이신가? 동생? 오빠? 존댓말을 쓰는 걸로 보아 예를 갖추는 사이인 것 같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다 보니 엉덩이가 바닥에 닿았는지도 몰랐다.
“으앗!”
방문을 걸어 잠그고, 엉덩이 모양대로 젖은 옷과 속옷에서 쏙 빠져나온다. 온몸 구석구석 옅은 노란색의 얼룩이 보인다. 어떤 것은 진하고, 어떤 것은 거의 살색에 가깝다. 화장실이 조금 기울어진 탓에 비스듬한 자세로 샤워기 물을 튼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을 따라 머릿결을 넘기며 뜨끈해진 머리를 식힌다. 개운함에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머리카락이 머금은 물기를 탈탈 턴다. 수건은 화장실에 있던 하얀 비누로 빨고, 있는 힘껏 쥐어짠 뒤 탁탁 털어 마루로 나간다.
“안녕하세요.”
“어! 아가씨군요. 반가워요. 난 저기 철물점 할아버지야. 여기 할머니 남자 친구.”
“아이고 남사스럽게 그런 말을 하고 그란대요.”
“어차피 알 거 미리 알려주면 좋지. 안 그래요? 하하.”
“아 네. 저도 반갑습니다. 박해주라고 해요.”
“해주. 예쁜 이름을 가졌네. 우리 앞으로 자주 봅시다! 뭐 고장 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하하.”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