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이주해 온 바닷가 마을은 민석에게 낯섦 그 자체였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집안의 가세가 급격히 기울며 도망치듯 이 지역으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당시 부모님은 어린 민석을 책임지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기 바빴다. 그래서 옆집에 맡기거나, 어머니의 일터였던 모텔과 식당 한쪽에 앉혀두고 일을 하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뱃사람들조차 힘들어한다는 원양어선을 타며 뱃멀미를 달고 사셨다고 했다. 어선을 타고 나가면 오랜 기간 볼 수 없어, 민석과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민석은 부모님과 어릴 적 기억을 내심 좋아했다. 어린아이들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을 들락거리며 특별한 아이가 된 양 재미마저 느꼈더랬다. 아버지가 큰 배를 타고 머나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도 멋지게 느꼈다. 돌아올 때면 신기한 간식과 선물들을 가져왔던 기억 또한 선명하다. 그러나 그 기억은 두 번 정도가 다였다.
여느 때처럼 새벽께 조용히 나갈 채비를 하던 아버지는 어렴풋이 잠이 깨 반쯤 뜬 눈을 한 민석에게 손을 흔들며 나갔고,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여느 날처럼 민석을 데리고 식당 일을 하던 어머니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쓰러졌다. 아버지가 작업 중 바다에 빠졌고,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거라며 장례식을 치르지 않은 어머니는 며칠 앓고 일어나 전보다 더 악착같이 일을 했다. 그렇게 젊은 시절 고생만 하며 민석을 홀로 키워냈다. 밤낮없이 일하며 민석을 학교에 보냈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작은 슈퍼도 열었다. 이제 그 슈퍼는 신포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랑방이 되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민석은 다행히 밝고 긍정적인 청년으로 성장했다. 마음이 맞는 동네 친구들을 사귀어 무탈하게 학창 시절을 보냈고, 정겨운 이웃들의 도움으로 진항에 완전히 동화되었다.
대명 - 주말인데 뭐 함. 심심한데 술이나 마셔?
범식 - 4시에 심심한 게 맞냐?
대명 - 술 마시기 딱 좋은 시간인데 왜.
범식 - 아니 좋다고.
민석 - 뭐 하냐 니들ㅋㅋ 슈퍼로 온나.
범식 - 바로 감.
대명 - ㅇㅇ
민석과 친구들은 민석 엄마의 슈퍼이자 민석의 집 앞에서 자주 모이곤 한다. 천막 아래 놓인 노란 장판의 평상이 이들의 아지트인 셈이다. 제일 먼저 도착한 범식은 자연스레 밖에 있던 택배를 가게 안에 들여두고, 문 안쪽에 세워둔 밥상을 평상 위에 펼친다.
“어무이. 지 왔어예! 석이 안 나오고 뭐 합니꺼?”
“오야. 왔나? 금방 나온다. 요 앉아라.”
“치킨 사 왔는데 같이 드실라예?”
“아이다. 엄마는 속이 안 좋아서 생각 음따. 니들 많이 무라.”
“왔나? 뭐고. 반반이 아이네. 센스가 없나. 이래가 여친 생기겠나.”
“뭐라노. 치킨은 무조건 찍먹 아이가.”
“닌 대명이한테 좀 배워야 한디. 뭐 묵을 끼고. 소주? 맥주?”
“오자마자 갈구나. ㅋㅋ 맥주 가자!”
“야는 안 오고 뭐 하는데. 인마 이거는 한 번도 제시간에 온 적이 없다. 엔간하네.”
민석은 냉장고를 열어, 맥주 두 캔과 콜라 한 병, 종이컵을 들고 평상에 오른다. 이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민석의 엄마는 ‘필요한 거 있으면 다 가져다 먹으라.’라는 말과 함께 문을 닫는다. 범식의 구멍 난 양말을 발견한 민석은 손가락으로 구멍을 확 넓히며 자지러진다. 이런 민석에게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닌지라 범식은 혀를 차며 구멍 사이로 발가락을 쭉 내민다. 이들이 깔깔거리며 웃던 중 범식이 한 여자를 발견하며 민석에게 눈짓을 보낸다. 민석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범식은 입 모양으로 ‘뭐고. 니 아나?’라고 하지만, 민석의 눈은 여자를 쫓느라 보지 못했다. 여자는 슈퍼 안으로 들어갔고, 범식은 민석의 옆구리를 찌르며 누구냐고 묻는다. 이때 대명이 도착한다.
“니들 붙어서 뭐 하는데.”
“조용하고, 마 앉아라.”
“맥주 가가 올게.”
“아, 아이다. 내가 가 올게. 니 여 있어라.”
“뭔데.”
“몰라.”
민석은 여자를 따라 황급히 가게 안으로 들어가, 계산대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엄마가 민석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자, 그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아무 말 말아달라’ 사인을 보낸다. 먼저 들어온 여자는 냉장고에서 바나나 우유 한 개와 생수 한 병을 꺼내 계산대 위에 올려둔다.
“얼마예요?”
“2,500원이에요. 여기 빨대.”
“아…. 저, 니 내 알제? 요 앞에서 부딪혔던.”
“니가 누군데?”
“나? 나는 저기…. 김 민석이라고 그…. 여기 아줌마 아들이다.”
“아…. 그래…. 여기요.”
여자가 잔돈을 거슬러 받고, 자리를 벗어나려 하자 다급해진 민석은 속사포로 말을 건넨다.
“넌, 이름이 뭐고?”
“…. 박 해주. 이제 가도 되지?”
“어? 어…. 그래. 잘 가래이. 또 온나!”
문이 닫히자,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엄마는 민석의 표정을 살피며 등짝을 때리고 웃는다. 민석은 멋쩍은 얼굴로 따가운 등을 매만지며 냉장고 앞으로 간다. 문을 연 상태로 잠시 찬 바람을 맞더니, 차가운 맥주 한 캔을 얼굴에 문지르며 밖으로 나간다.
“뭐고. 뭐고. 뭔 말했는데.”
“누고. 쟤는.”
“나도 잘 모른다. 요 앞에서 마주쳤는데 서울말 쓰대.”
“아, 여행 왔나? 근데 왜 혼자고.”
“모르지. 아무튼 구면이라 인사한 기다.”
“에? 이놈 보소. 뭔가 구린내가 나는데…. 니 반했제?”
“아, 아이다. 반하긴 뭘 반하나! 쟈가 누군지 알고.”
“맞네. 임마 반했네. 민석이 좋아하는 사람 생깄….”
혹여나 해주에게 들릴까 민석은 양손으로 대명의 입을 꽉 틀어막는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막힌 소리를 내며 놀려대는 대명과 그 꼴이 우스워 배를 잡고 웃는 범식. 작은 바닷가 마을로 여행 온 커플이나 가족은 많이 봤지만,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혼자인 게 내심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매일 반복되던 지루한 일상에 자그마한 호기심의 싹이 싹트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