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데서 왔노?

by 화유

“내 왔데이~”

“만다꼬 인자 오나. 퍼뜩 안 오나?”

조업에 나섰던 어선들이 한 채 두 채 들어오고, 그제야 위판장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나무판자를 바닥에 툭툭 던지는 소리, 앉은뱅이 의자 하나 놓고 한 폭[[ 자망(그물)의 1개 단위]] 두 폭 자망[[ 그물]] 개키는 할매들과 배에서 생선을 부지런히 내리는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해주는 어딘가 낯선 컨테이너 앞으로 간다. 문 앞에 붙은 ‘사무실’이라는 글씨를 확인하고서야 똑똑 노크한다.

“저…. 안녕하세요. 혹시 일거리가 있을까 해서요..”

“일거리예? 얼매나 할 낀데.”

“어…. 글쎄요…. 한…. 일주일?”

“쩌 가가 정옥할매 찾으소. 그 할매가 일 알려 줄 텡께. 하라는 대로만 하소. 참, 여는 일당 아이고 주급.”

“아 네, 고맙습니다.”

어디 사는지, 경력은 있는지, 근무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시급은 얼만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면접에서 으레 오가는 그런 대화는 없었다. 그저 일을 구하는 사람과 일을 주는 사람이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대화였다. ‘여긴 이력서 같은 것도, 신분 확인도 필요 없나 보네….’ 머리를 갸우뚱하며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안녕하세요. 정옥 할머니…. 는 어디 계세요?”

“눈데? 새로 온 기가.”

“네, 저기 사무실에서 ‘정옥 할매’라는 분 찾아가라고 해서요….”

“내다. 내가 정옥 할매래이.”

“아, 안녕하세요. 저는….”

“쪼매 바쁜께, 저 가가 지저분한 것들부터 옮기도.”

“아 저기요? 네.”


한쪽에 마구잡이로 쌓여 있는 나무상자들을 맨손으로 들어 올리기 시작한다.

“아야!”

거친 이음매 사이 뾰족 튀어나온 가시에 푹 찔렸다. 피가 볼록 피어올랐지만, 대번 별일 아니라는 듯 쪽 빨아먹는다. 뒤이어 다음 상자를 옮기려는데, 누군가 밀치며 해주의 앞을 가로막는다.

“나온나. 다룰 줄도 몰라서 찔리싸고. 장갑을 끼든가.”

“…. 무슨 상관이야.”

“뭐라꼬?”

“신경 끄라고.”

“와 그라는데? 아침에 뭐 잘못 무…”

더 이상 말 걸지 말라는 듯 해주는 휙 하고 돌아서며, 장갑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

“뭐고, 진짜….”

어중간하게 굽은 자세에서 눈은 해주 뒤를 쫓는다. 다시 와서 옮길까 싶어 남은 판자들을 재빠르게 옮긴다. 장갑을 끼고 돌아온 해주를 보고 다시 말을 건다.

“와 이리 못됐노. 내가 뭐 잘 못했나.”

“아니. 난 일하러 온 거니까. 관심 끄라고.”

“??? 뭐라노 이 가시나가. 니한테 관심 없그등.”

“없다니 다행이네. 그러니까 그냥 저리가.”

“허…. 뭐 이런 가시나가 다있노.”

진항에서 저렇게 날 선 사람을 찾아보긴 어렵다. 단지 도와주려 했을 뿐인데,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온몸에 가시를 잔뜩 세우며 쉭쉭거리는 고슴도치가 따로 없었다.


“저거 가서 몇 개 더 가 온나.”

“아, 네”

능숙하게 일하는 할머니들의 지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어데서 왔노?”

“저…. 서울이요.”

“근데 만다꼬 여서 일하노. 이사 왔나.”

“아뇨…. 이사는 아니고…. 잠시 내려왔어요.”

“내는 정말순. 이 짝은 알제? 박정옥.”

“오야. 내는 정옥 할매라 캐라.”

“안녕하세요. 저는 박해주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부탁은 무신. 우리 하는 거 보고 잘 따라 해래이. 오늘은 별거 없고, 대충 마무리만 하믄 된다. 내일부턴 5시 좀 안 돼가 오고.”

“네.”


할머니들의 일을 지켜보던 해주는 눈치껏 하나둘 따라 하기 시작했다. 가끔 멈칫거리고, 방해가 되는 듯싶었지만, 딱히 혼나지는 않았다. 첫날이라 그런지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그저 부모의 입 모양을 따라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할머니들의 움직임을 따라 거드는 게 다였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나자 다른 직원들이 인사를 하며ㅡ몇몇은 옷을 갈아입고ㅡ자리를 떠났다.

“아나. 저건 니 몫이데이.”

“아…. 감사합니다.”

정옥 할매가 가리키는 손끝에 놓인 검은 비닐봉지가 때마침 바스락거린다. 아직 살아 있는 건지 옅은 파닥거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할머니 가져다 드려야겠다.’ 해주도 눈치를 보다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한다.

“욕봤데이~”

“오야~ 낼 보이시더.”

“조심히 들어가세요.”

“오야~ 내일 안 나오는 거 아이제? 하하.”

“늦지 않게 올게요.”


“지금 어데 있노?”

“저, 바다 앞 진포 민박에 묵고 있어요.”

“진포? 거 우리 언니넨데.”

“정말요? 어쩐지…. 좀 닮으신 거 같아요. 신기해라….”

“여그 쫍아가 한 다리만 건너도 다 안다. 하하. 아, 그라모. 이거 더 가가라.”

정옥 할매는 손에 쥐고 있던 비닐봉지에서 도루묵 한주먹을 꺼내, 해주의 비닐봉지 속으로 옮겨 넣었다. 제법 묵직해진 탓에 비닐봉지 하나를 더 가져와 야무지게 손잡이를 묶어 들려준다. 비닐봉지를 보고 있던 고개를 들었을 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위판장 입구까지 정옥 할매와 단둘이 걸어야 했다. 어색함이 느껴지던 차에 할머니의 시선이 다른 길을 향하자, 꾸벅 인사를 하며 민박집 방향으로 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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