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 가니라이."
말순 할매는 매번 가장 늦게 퇴근한다. 뒷정리를 도맡아 하고, 다음 날 할 일을 수월하게 하려고 몇 가지 준비를 하고 가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마친 뒤, 짠 기로 쪼글쪼글해진 양손을 털고, 제 몫의 파지 가자미 몇 개를 끈으로 동여맨다. 빌어묵을 영감탱이 밥시간 놓칠세라 굽은 등을 채 펴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영감요. 내 왔니데이.”
“…크흠”
“내 바로 저녁 준비합니데이.”
언제나처럼 대답 없는 할아버지에게 인기척 하듯 말을 건다. 화투치고 앉아 있을 게 뻔하니 혼나기 전에 치우라는 일종의 신호이다. 곧장 주방으로 가 냉장고에 있던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로 올린다.
“타다닥-”
레버를 돌려 가스불을 켜고, 하얗게 일어난 나무 도마를 꺼낸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감자채볶음을 할 생각이다. 냉장고에서 자투리 채소들을 꺼내 숭덩숭덩 채 썬다. 이가 약해 입이 짧은 양반이지만, 할머니가 해주는 된장찌개와 감자채볶음만 있으면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다. 젊을 적 도박으로 집안 돈깨나 말아먹은 인간인지라 아무리 생각해도 밉지만, 그런 영감이라도 옆에 있으니, 한편으론 안심된다. 이젠 다 늙어서 도박장에 가도 끼워주질 않으니, 한편으로 안 된 마음마저 든다. 펄펄 날아다니던 영감이 저러고 있는 걸 보니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이 참으로 야속하다.
"지름이 없네."
기름통의 기름을 탈탈 털어 프라이팬에 붓는다. 자고로 감자채볶음은 기름을 많이 둘러야 겉이 코팅되듯 맛있게 볶아진다. 충분하진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름의 요령이 있으니, 맛은 완벽할 거다. 볶아지는 동안 상을 펴고, 냉장고 속 반찬 몇 가지를 꺼낸다. 찬기에 따로 덜지 않고 그대로 뚜껑만 열어 놓는다. 빨간 멸치볶음, 무나물, 콩밥 두 그릇, 그리고 수저 두벌. 혼자가 된 할매들 생각하면 저런 인간이라도 있어 홀로 밥 안 먹는 게 어디냐 생각도 든다. 쓴웃음을 지으며, 완성된 된장찌개와 감자채볶음을 상 중앙에 놓는다.
"영감요. 이거 가가시소."
할아버지는 시장했는지, 주방과 이어진 방문을 냅다 열어 상을 옮긴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들을 보며 침을 꼴깍 삼킨다. 방 중앙에 상을 내려, 먼저 숟가락을 든다. 잘 먹겠다는 말도, 맛있다는 말도 한평생 들어본 적 없었다. 그래도 말순 할매는 할아버지의 표정을 살피고, 작은 끄덕임을 확인한 뒤 안심하듯 숟가락을 든다. 고요함이 싫은 할머니는 곧바로 TV를 튼다. 마침,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다. 밥을 먹다가 웃긴 장면이 나오면 바닥을 때리며 혼자 깔깔 웃기도 한다. 그렇게 말순 할매의 안온한 하루가 저물어 간다.
다음 날
“누고!!! 어디 쥐새끼가 겨 들어왔나, 내 돈 훔치고 무사할 줄 아나?!”
“무슨 일인 겨.”
“아니, 요 우에 있던 돈이 없어졌다 안 카요. 어제 누가 제일 늦게 갔나! 누고!”
“어제예? 말순 할매겠지예. 항상 마지막에 간다 아입니꺼.”
“뭐? 말순 할매? 말순 할매 어딨어! 지금 당장 이리 나와보소!”
“아니, 확실한 기가….?”
“말순 할매!! 당장 이리 오라고!”
“와요. 와 부르는데?”
“내 돈! 돈 어딨는데! 어디다 빼돌렸냐고!”
“난 모르는데? 뭔 소리고. 안에 드가지도 않았다 아입니까.”
“이 미친 할망구가 노망났나. 어디서 잡아떼? 당장 안 가져오면 경찰에 신고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말순 할매. 아이제….? 참말로 말순 할매가 가져간 거여?”
“아니래니께. 내 진짜 아이다. 뭐고 이게…. 아이다 안카나….”
“당장 저 할망구 몸이랑 옷 싹 다 디비바라! 안 그러면 다 같이 공범으로 신고해 버릴라니까!”
“내 진짜 아인데…. 참말로 미치고 팔짝 뛰겠다.”
“할매, 일단 가방이랑 옷이랑 함 보이시더.”
“그래, 보소. 다 뒤져 보소….”
동료들이 할머니의 몸을 더듬거리고, 가방을 뒤엎어 돈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다. 김 반장의 지시에 속옷 안까지 모두 뒤졌지만, 나온 것이라고는 구겨진 만 삼천 원이 전부였다.
“어데 숨겼노. 할배한테 넘긴 거 아이가?”
“맞네, 말순네 도박 빚이 엄청시리 많담서.”
“참말이가? 아이고야. 그리 안 봤는데, 이건 아이다.”
“할매요. 얼른 내놓으시소. 서로 얼굴 그만 붉히게.”
“내 진짜 아니래이. 이를 우야면 좋나. 우야노….”
“당장 돈 내놓던지. 증거를 가 오던지 하소! 그때까지 여 있는 거 암껏도 손대지 말구로!”
“하모…. 내…. 그냥 일찍 드갈랍니더….”
말순 할매는 멍하니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다듬고, 짐을 챙겨 위판장을 나선다. 김 반장이 씩씩대며 노려보고 있던 터라 누구도 나서거나 말릴 수 없었다. 정옥 할매는 화장실에 다녀와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알 길이 없었다. 사람들을 잡고 물어봐도, 대답 없이 자리로 돌아가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한다. 말순 할매도 안 보이고, 아무래도 이상함을 감지한 정옥 할매는 김 반장이 있는 사무실 문을 두드린다.
“말순 할매는예? 어디 갔능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당장 신고할 테니까 그렇게 알라고나 전하셔!”
“신고예? 무신 일인데 그런 험한 말이 나오는 겨 시방?”
“말순 할매가 김 반장 돈을 훔쳤나 벼….” 보고 있던 동료가 말을 보탰다.
위판장이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한없이 걷던 말순 할매는 골목을 돌아서야 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오십여 년 세월을 바친 곳에서 도둑으로 몰린 것도 모자라,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주는 이 없이, 발가벗겨진 듯한 비참함에 흐르던 눈물은 어느새 통곡이 되었다. 티끌 같은 의심 하나로 사람을 이리 잔인하게 내칠 수 있다니…. 그녀는 깊은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겨우 전봇대를 디디고 일어서 손에 닿는 모든 것에 의지하며 집으로 몸을 이끌었다.
영감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또 화투판 구경이나 하고 있을 게 뻔하다. 차라리 지금은 다행이다 싶다. 전화기 옆에 놓인 메모지에 글을 적어 내려간다.
‘찬장 제일 안에 통장이랑 도장있니더. 잘 사시소. 그래도 고마웠시다. 그리고 김반장한테는…. 내 참말로 아니란 말 좀 꼭 좀 전해 주소. 아들한테도 먼저 가 미안타 해주고. 내는 먼저 갑니더.’
거실 한구석 놓인 빨간 끈 뭉치를 집어 든다. 한 번도 이 끈이 다른 용도로 쓰일 거라곤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버릇처럼 뱉어대던 말에 왜 진심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오히려 죽고 싶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끈이 단단히 고정될 수 있도록 방문 고리에 여러 번 동여맨다. 서울에 있는 자식들 얼굴이 하나씩 스쳐 간다. 가슴에 돌덩어리가 얹힌 것처럼 답답하고, 한순간 시야가 뿌옇게 변한다. 눈물이 홍수가 되어 꺽꺽 소리로 넘쳐흐른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곤, 노끈을 더욱 세게 묶는다. 이제, 끈의 반대편에 그녀의 목을 감싼다.
아침 일찍 열린 화투판 구경에 신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현관 턱에 놓인 할머니의 신발을 발견하곤, 이 할망구가 고뿔이라도 걸렸나 괜히 인기척을 내며 들어간다. 할머니가 바로 보이지 않자 어디 있느냐며 방문 손잡이를 홱 잡는다. 순간 무언가에 걸린 듯 무거워진 문을 힘주어 민다. 불길한 예감에 들여다본 방안에는 축 처진 채 매달린 할멈의 손이 하얗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 새끼 어딨냐!! 어딨냔 말이다!!”
“무슨 일이래. 뭔 일났어?”
“김 반장. 이 후레자식이 우리 할망구 죽였구먼. 이 빌어먹을 개새끼가!!”
“뭐? 말순 할매 말이여?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래….”
“할망구가! 지가 지 목을 맸단 말이여!!! 얼매나 억울허고 분허면!!”
“아이고 참말이여? 아이고 사달 났네. 사달 났어…. 잠…. 잠깐만 계셔.”
동료들이 컨테이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책상 위엔 두툼한 은행 봉투가 올려져 있었다. 말순 할매를 몰아세우던 그 돈봉투일 게 확실했다. 자리를 비운 김 반장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찰서에 간다고 달려 나갔으니, 누군가에게 큰일은 큰일이었다. 모든 상황을 본 동료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당장은 못 본 척하자는 사인처럼 고개를 한번 까딱이고선 문밖으로 나온다.
“김 반장이 경찰서에 갔는데…. 아직 안 온 모양이네!…. 우리 여서 일내지 말고, 일단 집으로 가 계셔. 김 반장 마주치면 더 큰 사달 나…. 얼른!”
“우리 말순이…. 말순이 억울해서 우짠댜….” 정옥 할매도 머리를 짚으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아이고…. 아이고…. 억울해서 어쩌냔 말이야….”
여럿이 몰아내는 턱에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은행에서 받아온 커다란 달력 귀퉁이를 찢어 ‘할매 따라간다.’라고 짧은 글을 남겼다. 심심하면 콱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하듯 할머니 코 앞에 들어 보이던 농약병을 기어코 열어젖혔다. 이 농약병만 들이밀면 ‘아이고 알겠다.’라며 못 이긴 척 져주던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할머니를 담은 두 눈을 꽉 감고, 단숨에 농약을 들이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색이 시퍼렇게 질리며, 몸이 뒤틀리는 경련과 함께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두 노인은 세상 떠나갈 듯이 싸우던 시절은 없던 것처럼 둘만의 세상에서 서로의 온기만을 느끼며 한날 함께 그렇게 식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