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by 화유

들뜬 아이들의 조잘거림으로 가득 찬 소풍날 아침. 운동장에 나란히 세워진 대형 버스를 타고, 1시간 거리의 놀이동산을 향한다. 앞 유리에 붙은 '주영고 2-2'를 확인한 해주는 뒤에서 두 칸 앞 안쪽 창가 자리에 앉는다. 뒤이어 들어오는 아이들의 시선을 피하고자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는다. 인원 확인을 마친 선생님도 자리에 앉자, 문이 닫히고 곧이어 차량이 움직인다. 흥분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유독 요란스러워 인상이 찌푸려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맨 뒤에 앉은 일진 무리가 우산 끝으로 해주를 툭툭 치며 말한다.


"해주야~ 도시락 싸 왔어?"

"어?…. 어…."

"우리 출출한데 네 것 도시락 까먹고, 이따가 우리 거 같이 나눠 먹자. 어때? ㅋㅋ"

"ㅋㅋㅋ그래 그거 좋다! 해주 거 나눠 먹자.ㅋㅋ"

"아…. 그래…."


저들끼리의 속셈이 재미있다고 깔깔거리며 웃어댄다. 해주의 도시락을 준대도, 어차피 같이 먹을 일은 없을 거다. 그저 약한 먹잇감을 골려 먹고 싶은 거다. 자신을 왜 싫어하는 지는 모른다. 물어볼 용기도, 의지도 없었다. 그냥 만만한 장난감이 필요했을 테고, 그게 마침 어수룩한 자신이었을 거다.

저 무리는 학기 초부터 '빌려달라'는 말로 많은 물건들을 갈취해 갔다. 다시 돌려달라는 말은 소용없었다. 그 후로 괴롭힘의 강도만 높아졌으니까. 그저 그들에게 고분고분한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만하면, '야! 우리 해주 괴롭히지 마, 너도 혼나고 싶냐?'라며 막아섰기 때문에 당연히 친구는 없었다. 이 사실을 선생님께 말해보기도 했지만, '친구끼리 사이좋게 잘 지내라.'라는 말만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포기하고, 순응하는 게 더 편했다.


"해주야, 우리 해주 반찬 이게 뭐니~ 뭘 먹으란 거니 대체.ㅋㅋ"

"어머니 너무 하셨다. 이거 먹고 해주가 어떻게 놀아요~ㅋㅋ"

엄마를 언급할 때면 주먹에 힘이 들어가지만, 그렇다고 어쩔 도리는 없다.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화살 끝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게 최선이었다.


"엄마 바쁘셔서 내가 대충 싸 온 거야."

"어이구~ 그래쪄요~~~ 암튼 잘 먹을게~? ㅋㅋ"

"뭐 먹을 것도 없다 야. 니들 다 먹어.ㅋㅋ"


그래도 한나는 나를 힘으로 괴롭히진 않는다. 말장난을 한다든지 다른 아이들이 놀릴 때 옆에서 거드는 정도에서 끝나니 그나마 고마운 축에 속한다. 이런 걸 고마워하고 있다니….


"휴…."

"어? 해주 지금 한숨 쉰 거야? 왜? 친구들이 먹는 게 아깝니?"

"아니야 그런 거. 그냥 숨 쉰 거야."

"그래? 오해할 뻔? ㅋㅋ 조심하자!"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본다. 고속도로 위를 거침없이 달리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자신의 처지와 비교되어 그마저 괴로웠다. 자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커튼을 치고 눈을 감는다.


"자, 도착했으니까, 앞에서부터 천천히 내리자~! 앞사람 밀지 말고!"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각자의 짐을 챙겨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해주에게 투명막이라도 쳐진 듯 그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모두가 빠져나간 뒤, 그제야 일어난 해주는 뒷좌석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자신의 도시락을 닫아, 가방 안에 넣는다. 어차피 정리해 줄 거란 기대도 없었다.

"얼른 내려 학생."

"네."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 저마다 무리를 지어 격앙된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다. 그중에 해주가 낄 자리는 없다. 반 아이들이 보이는 근처에 서서 선생님의 예령을 기다린다. 아이들 눈엔 해주가 안 보이는 듯했다. 그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도, 먹을 것을 나누지도, 곁을 내주지도 않는다. 늘 이래왔기에 덤덤했지만, 외부에 나올 때면 기다림의 시간이 더 지옥 같았다. 잠시 후 몇 시까지 이 자리로 다시 모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반 아이들은 손을 잡고 뿔뿔이 흩어진다. 해주는 멀어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주변을 살핀다. 책가방 끈을 잡고 있던 손을 뒤로 젖혀 지퍼를 연다. 두루마리 휴지로 둘둘 감싼 얼음물은 휴지가 모두 젖어 물병을 칠갑하고 있었다. 가방 안이 홍수가 되기 전에 얼른 꺼내어 마른 목을 축인다. 페트병에 맺혀 있던 차가운 물방울이 땀과 뒤섞여 목을 타고 미지근하게 흐른다. 놀이동산을 참 좋아하는 해주이지만, 차마 아는 아이들 틈에 줄을 서고, 짝 없이 홀로 놀이기구를 탈만큼의 배짱은 없다. 놀림거리가 될 게 뻔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혼자 껴있는 게 오히려 스스로에게 형벌을 내리는 꼴일 터였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조금 걷다 보니 커다란 나무를 둥글게 에워싼 벤치들이 보인다.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이 굳이 오지 않을, 숨어 있기 딱 좋은 장소이다. 해주는 그중 가장 안쪽 벤치를 골라 가방을 껴안듯 앞으로 돌려 앉는다. 딱히 할 게 없어 휴대전화 화면을 켠다. 매일 드나드는 커뮤니티에 들어가니 그제야 숨통이 트인다. 이곳에서 세상을 배우기도, 관계를 맺기도, 고민을 배설하기도 좋았다. 때론 그들만의 공공의 적을 세워 함께 힐난하고 난도질하며, 극도의 쾌감을 얻기도 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닉네임 뒤에 숨어 마음껏 활개 칠 수 있음에 안도감을 느끼고, 당하고만 있는 자들을 보며, 알 수 없는 우월감마저 들었다. 그곳에서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돈 좀 있니?"

"아니요…. 조금밖에 없어요…."

"그래? 나오면 100원에 한대야? 그냥 줄래, 맞고 줄래?"

한나와 그 무리가 사복 입은 어린아이 한 명을 벽으로 몰아세우며 말했다. 해주는 엉덩이에 힘을 최대한 빼며 몸이 아래로 미끄러지도록 늘어뜨렸다. 다행히 그들은 해주를 보지 못한 것 같다.

"언니들이 돈이 좀 부족해서 그래~ 좋은 말 할 때 내놓자?"

"저 정말 몇천 원밖에 없어요. 진짜예요. 보내주세요. 엉엉."

"울지 마. 썅. 조용히 안 해?"

후미진 곳이기에 눈여겨보는 이도 없다. 같은 학교 아이들은 그 무리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학교생활이 편하지 않을 것이란 것쯤은 알기에, 보고도 모르는 척 지나갔다. 해주는 갑자기 묘안이 떠올랐다. 조용히 촬영해 커뮤니티에 올리고, 그 무리를 공공의 적으로 만드는 것.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카메라만 보이도록 휴대전화를 빼꼼히 올리고, 녹화 버튼을 눌렀다.

"내놓으라고. 뒤질래?"

"저 정말 가진 게 없어요…. 엉엉."

"야, 잡아."

"으아앙"

녹화 종료. 업로드.


[실시간] 대낮에 삥 뜯는 년들.

교복 입고 애 돈 뺏는 중. 살벌하네.

ㄴ미친 거 아냐?ㄷㄷ

ㄴ엥 이거 진짜야? 대박

ㄴ저 교복 주영고 아냐? 디졌다.

ㄴ쟤네 인생 박제네ㅋㅋㅋ

ㄴ여기 XX랜드 아님? 기사 날 듯. ㅡㅡ


소풍이 다 끝나기 전에 아이들이 소집됐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영상으로 학교 전체가 발칵 뒤집혔기 때문이다. 누가 올린 것인지 당장 찾아내, 영상을 내려야 했다. 학교 교복과 그 교복을 입은 불량한 아이들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을 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올린이가 누구인지는 경찰과 커뮤니티에 협조 요청을 했고, 아이들은 곧바로 학교로 불러들였다. 버스에 올라타자, 선생님이 한마디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덕에 조용히 갈 수 있었다. 학교에 다시 모인 아이들은 각자 반으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고, 선생님의 말씀이 시작되려 할 때 한나가 번쩍 손을 들었다.


"선생님, 이거 아무래도 박 해주 짓 같아요."

"뭐?"

"박 해주 분명 그 벤치에 있었어요. 저 곱창 끈 봤거든요. 지금 하고 있는 저거! 그 벤치에 박 해주밖에 없었다고요. 갑자기 안 보이긴 했지만…. 구도가 딱 그 벤치예요. 박 해주 짓이 분명해요. 박 해주. 박 해주!!! 너 폰 내놔. 내놔 봐!!"

한나가 해주의 휴대전화를 뺏으려 달려들자, 선생님이 재빨리 앞을 가로막으며 해주에게 물었다.

"진짜니? 해주 네가 그랬어?"

"네."

"허, 이거 완전 미친년 아냐?"

"유한나, 조용히 해. 해주 넌 교무실로 따라오렴. 그리고 반장은 애들 조용히 시키고 있어."


사실을 추궁하는 선생님과 그 주위를 에워싸는 다른 선생님들의 눈총에 해주는 숨이 막혀왔다. 이게 자신의 잘못인지 왜 자신이 혼나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잘못을 저지른 건 걔넨데 왜 자신한테 그러는지 정말 몰랐다. 하지만 교무실의 차가운 공기는 해주의 편이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에 잠긴 선생님은 우선 게시물부터 삭제하라고 하였다. 해주는 바로 앞에서 삭제 후 화면을 돌려 보여줬다. 자세한 얘기를 나누자며 끌려간 교장실 앞. 높고 낮은 웅성거림으로 해주가 서 있는 바닥마저 진동하고 있다. 문을 열자,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일시에 굳은 표정을 지으며 돌아봤다. 그들의 눈빛은 며칠을 굶주린 맹수가 눈앞의 사냥감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단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이 깨나 먹은 작자들이 세상 모든 험한 말을 한데 모아 보호막 하나 걸치지 못한 해주를 향해 마구 던져댔다. 그곳에 어른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연락하라는 말에 해주는 자신이 책임지면 되는 거 아니냐며, 차라리 이 자리에서 자퇴서를 쓰겠다고 했다. 어차피 해주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란 없었다. 부모님을 학교로 불러오는 게 학교를 그만두는 것보다 더 끔찍했다. 부모님의 모습을 학교 애들에게 보이는 것도, 개 패듯 맞는 걸 들키는 것도 모든 것이 죽을 만큼 싫었다. 어른들은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오묘한 표정을 주고받았다. 해주는 힘 없이 바람에 꺾인 나뭇가지처럼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저 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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