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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군 Sep 22. 2020

드라마를 찍는다는 것 (2)

드라마 연출을 잘한다는 건 무엇일까. '저 드라마 연출 잘한다'라고 하면 보통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예쁜 그림. 

자연스러운 연기.

대본을 잘 살림.

음악을 잘 씀.

편집이 매끄러움.

흥행할 아이템을 잘 고름.

대본 수정을 재밌는 방향으로 함.


 이 외에도 드라마 감독의 실력을 평가할만한 것들이 더 있겠지만 대략 이 정도로 정리를 해 보자. 

 위의 기준들을 보면 흥미로운 게 있는데, 7개의 요소 중에 감독이 오롯이 혼자 하는 게 딱 두 개 밖에 없다는 점이다. '대본을 잘 살림', '흥행할 아이템을 잘 고름.' 이것을 제외한 나머지 요소들은 모두 그것을 대신해주는 전문가들이 있다. 예쁜 그림 - 촬영 감독. 자연스러운 연기 - 연기자. 대본은 작가가 쓸 거고, 음악은 음악 감독이, 편집은 편집 기사가 맡아서 한다. 때에 따라 감독이 연기자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촬영 감독에게 앵글을 맡기기도 하는데 시청자들은 이들의 역할 분배에 대한 디테일을 알 수가 없다. 그냥 전작과 비교해 상대적인 평가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전 작품에서 연기가 미흡했던 배우가 이번 작품에서 연기를 잘한다면? 그럼 감독이 연기 지도를 잘했나 보다 하는 거다. 그 외에 그들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어떻게 결과물에 도달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어떤 유명한 감독은 특정 촬영 감독에게 영상에 대한 전권을 주고 자신은 대본 수정과 연기만 신경 쓰는 방식으로 연출을 하기도 하는데, 그 디테일을 시청자들이 알 방법은 없다. 그래서 업계에서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과 대중이 '잘한다'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좀 다르다. 


 앞에서 감독이 오롯이 혼자 하는 게 딱 두 개 있었다. 흥행할 아이템을 잘 고르고, 대본을 잘 살리는 것.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감독 입장에선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드라마가 흥행할 것인가? 흥행이 보장된 네임드 작가님과 작품을 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경력과 명성이 쌓이지 않는 이상 그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신인 감독들은 시중에 돌아다니는 기획안 가운데 하나를 잡아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그 선택은 늘 어렵고 결과 예측은 더더욱 어렵다. 무수히 많은 제작사가 신인 작가님들과 계약을 맺고 작품을 준비 중이다. 그 속에서 보석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연차가 차서, 때로는 조급함에, 때로는 캐스팅된 배우가 좋아서, 때로는 윗사람이 책임진다고 해서- 등의 많은 이유로 자신이 보기엔 재미없는 이야기를 선택해 연출을 하는 감독도 있다. 또 때로는 자기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타날 때까지 몇 년을 버티며 입봉을 안 하고 있는 감독도 있다. 그런 환경을 생각해보면 감독의 흥행 감각 - 드라마 보는 눈 - 은 좀 더 평가받아도 좋을만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어떤 감독이 입봉작부터 쭉 연타석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면, 그의 다음 작품 선택에 좀 더 관심을 가져도 될 것이다.  


 대본을 잘 살린다는 건 대본에 쓰여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든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남자 주인공이 A악당을 열심히 쫓지만 끝내 놓친다'라는 단순한 상황을 어떤 감독은 10분짜리 추격전으로 만들고 어떤 감독은 간단한 액션 합 두어 개로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씬을 공들여 찍으면 제일 좋겠지만 문제는 드라마 촬영이 포기와 타협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일례로 러닝타임 2시간 정도 되는 영화 [곡성]의 총 촬영 회차는 100회 차가 넘는다. 그런데 16부작 미니시리즈의 전체 촬영 회차가 보통 100 회차다. 단순 비교를 하면 드라마는 영화보다 8배 더 빨리 찍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영화가 하루 한 씬을 들고나가 찍을 때 드라마는 비슷한 길이의 씬 8개를 찍어야 한다. 또 편성 등의 이유로 러닝타임의 제약도 영화보다 더 많은 편이다. 이처럼 여러 제약이 있다 보니 무언가는 포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생긴다. 드라마 한 회에 60개의 씬이 있다면, 그중 힘을 줘서 찍을 수 있는 건 손꼽을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니 '어떤 씬에 어느 정도 힘을 줄 것인가'라는 판단 자체가 감독의 역량을 가름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문제는, '힘을 준다'는 게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감독은 모든 씬에 자신의 해석을 넣어서 특이한 접근을 하고 어떤 감독은 자신의 존재를 지운 채 대본과 연기가 잘 전달되는데 주력한다고 치자. 전자는 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연출을 잘했다는 칭찬을 들을 기회도 더 많을 것이다. 후자는 드라마가 보기 편하겠지만 감독의 존재감은 떨어질 것이다. 무언가를 선택하면, 무언가는 잃게 되는 셈이다. 

 드라마는 매체 특성상 회차마다 신규 진입자들이 있다. 어쩌다 채널이 돌아가서 만나게 된 시청자들이 그림보다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익숙한 앵글을 선택하는 감독들이 있다. 과장된 조명과 구도로 자신만의 인장을 남기는데 주력하는 감독들도 있다. 그것은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보기 편한 것을 제공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을 탄다. 때론 위태롭게, 때론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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