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드라마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두 매체 사이에는 여러 차이점이 있겠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그들의 기원 - Origin - 에 주목하고 싶다. 다들 알다시피 영화의 시작은 기차가 달려오는 것을 찍어서 이어놓은 활성 사진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놀라서 도망갔다. 그 뒤에 무성영화의 시대가 한참을 이어졌다. 다시 말해 영화는 '보는 것'에서 시작된 장르다.
드라마는 그 기원이 영화와 다르다.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오늘날의 영상 드라마가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이전에도 드라마는 있었다. 바로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연속 이야기'가 그것이다. 저 먼 <우주전쟁>까지 갈 것도 없이, 왜 우리도 어렸을 때 (연식 나온다) 라디오를 통해 <제5 공화국> 같은 것을 듣지 않았었나. 이것은 사실 몇천 년 전에도 존재하던 장르라 볼 수 있는데, 변사, 광대, 소리패 같은 이들이 재밌는 썰을 풀다가 한참 재밌을 때 끊고 돈을 받던 게 바로 오늘날 드라마가 한참 재밌을 때 끝나고 광고가 나오는 것과 같다. 그 시작을 저 옛날 변사로 보든, 라디오의 오디오 드라마로 보든, TV의 소프 드라마로 보든 그 특징은 같다. 바로 드라마란 '듣는 것'에서 시작된 장르라는 거다.
나의 어머니는 TV 드라마를 무척 좋아하셨다. 아침엔 3사를 돌아가며 아침 드라마를 보고 - 마침 30분씩 시작 시간이 달라서 하나 끝나고 채널 돌리면 바로 다음 것을 볼 수 있게 편성되어 있었다 - 그 뒤엔 전날 못 본 다른 채널 미니시리즈 재방송 보고. 저녁밥 다 먹으면 또 3사 돌면서 저녁 일일 드라마 보고, 미니시리즈나 주말 드라마까지 섭렵하시곤 했다. 웃기는 건 TV를 엄청 집중해서 보시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어머니는 설거지하고 청소하면서 드라마를 '들었다.' 어쩌다 눈물씬, 절규씬, 따귀씬 같은 게 나와야 TV로 눈이 간다. 그게 아니면 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설렁설렁 보신다. 아마도 이런 소비 형태가 TV 드라마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사실 지금도 연속극들은 귀로만 들어도 이해가 되는 드라마가 대부분이다. 그런 드라마들은 주된 시청층이 주부기 때문에 처음부터 설거지하면서 '들어도' 이해가 되게끔 설계가 된다. 같은 이유로 이런 드라마일수록 대사가 중요해진다. 왜? 눈으로 안 봐도 재밌어야 되니까. 과거에 최고로 손꼽히던 드라마 작가님들이 자신만의 시그니처 대사 스타일을 갖고 있는 작가님들이었던 건 다 그런 이유에서다.
사실 드라마에서 영상미, 연출 같은 요소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처음으로 HD 방송을 한 미니가 2003년의 <다모>였고 처음으로 4K 화질로 찍은 미니가 2010년의 <추노>다. 드라마에서 영상이 중요해진 것은 그처럼 기술의 발전에 조응해 생긴 일이다. 지금에야 드라마가 방송되고 나면 그것을 보는 일반 시청자들도 영상미가 좋고, 연출이 잘했고- 등을 판단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그런 분위기는 찾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시대가 변해가면서 드라마 연출자들에게 요구되는 것들도 많이 달라졌다.
어떤 드라마가 대사 위주의 드라마라면, 사실 풀숏 - 바스트숏 - 바스트숏만 연달아 붙여도 그 드라마는 충분히 전달이 된다. 업계 사람들끼리 '풀바바만 찍어'라고 할 때가 있는데 그건 그 드라마에 대사가 가득 차서 여백을 넣을 여지가 없을 때다. 이럴 때 연출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주로 연기 조율이다. 어떤 대사를 너무 오버해서 치지는 않는지, 감정이나 딕션이 적절한지 등을 판단하는 것이다.
반면 영상으로 전달되는 정보량이 큰 드라마들이 있다. <다모>, <추노>처럼 시대의 변화를 앞당긴 드라마들이 모두 액션 장르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액션이란 눈으로 봐야만 전달이 되는 장르다. 당신이 만약 찰리 채플린이나 성룡의 영화를 귀로만 들었다고 생각해보라. 아마 그 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의미에서 가장 영화적인 장르는 액션이라고 생각한다) <태양의 후예>는 사랑 이야기에 재난물을 얹었다. 재난물? 당연히 영상 정보가 넘치는 장르다. 이처럼 영상 정보량이 많은 드라마들이 나오고, 드라마 연출자에게 요구되는 능력도 달라졌다. 바야흐로 드라마 연출 2.0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