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림책에 대한 기억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라는 책을 읽고 처음 깨달은 건 나에게 '그림책'의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시절 책을 끼고 살았지만 주로 여백없이 활자가 대부분인 책들이었고, 나이를 먹고는 독신으로 지내고 있으니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거다. 이렇게 좋은 그림책이 많다니. 어린 시절에 이런 것을 보고 컸으면 내가 조금은 더 좋은 어른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유럽...> 을 읽을수록 아쉬움이 커졌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쪼들리며 살았다. 부모님이 책 사달라고 조르는 아들에게 그림책처럼 '잠깐 읽으면 끝나는' 책을 사줄 여유는 없었을 거다. 그보다는 백과사전 같은 것 - 활자가 가득차 있는 - 을 사주는 게 가성비가 좋았겠지. 가성비 때문이든 뭐든 나는 남들 그림책 읽을 나이에 백과사전을 읽고 또 읽었고, 덕분에 뛰어난 지식인이 되었다. 는 물론 아니고, 결론은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통해 일종의 문화격차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가성비 좋은' 유튜브를 열심히 보는 요즘 아이들도, 좋은 그림책을 접할 기회가 더 생긴다면 그들의 세계가 더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육아에 쪼들리는 친구 부부를 떠올리며 한 번 상상해본다.
2. 창의성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다. 드라마는 혼자의 힘으로 만들 수가 없다. 거액의 돈을 끌어와야 하고 수많은 스탭들이 힘을 모아야 하나의 장면이 만들어진다. 상상력을 구현하려는데 제작비 때문에 제동 걸려 본 게 아마도 수백 번은 될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상상하곤 했다. 내가 그림만 좀만 더 잘그렸으면 만화가를 했을텐데. 만화가는 제작비 걱정없이 백만대군의 결투라든가 행성 간의 충돌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유럽...>을 통해 엿본 그림책 작가들의 세계도 만화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온전히 혼자만의 상상을 세상에 펼쳐놓고 공감을 끌어내는 그들을 보며 참 많이 부러웠다. 아마도 그들이 그렇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밑바탕에는, 유럽의 거대한 그림책 시장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생계에 쪼들리며 상상력을 펼치는 건 너무 힘들고, 어떤 예술도 시장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지는 못하니까.
한 명의 크리에이터로서 인상적인 문구들은 다음과 같았다.
ㅡ관찰력은 보는 대상에 감정이입하거나 감탄할줄 아는 능력. 관찰이라는 행위 안에는 사랑의 성분이 있다.
ㅡ상상이란 인간의 언어가 다 담지 못하는 것 밖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수많은 사과가 있지만 사과라는 단어를 듣고 떠올리는 것이 한정적인 것처럼.
ㅡ글과 그림이 각각의 이야기를 해야한다. 동어반복이 되면 안된다.
ㅡ시도하고, 감탄하고, 실패하고, 수정하고, 배우고, 다시 해보는 게 삶이다. 산다는 건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난관을 통과하는 과정이고, 우리는 죽을때까지 성장해야한다.
ㅡ생후 8개월 된 아이의 시점에서 상상해보라. 천장을 보고 있는데 거대한 머리가 시야를 뚫고 들어온다!
ㅡ여백. 심심함. 무계획. 잘 노는 것. 가까이해야할 것들. 그리고 저 존재를 사랑해보겠다는 결심.
ㅡ나쁜 책이란 편견을 강화하는 것. 공주가 왕자를 만나는 건 나쁜 게 아니지만, 그 공주가 결혼 후 살림을 하며 행복하다고 하면 나쁜 책.
ㅡ자신감이 떨어질땐 내가 자신감이 떨어지면 좋아할 사람들을 떠올려라!
ㅡ창작할땐 의심과 떨림이 가치를 만든다. 확신이 오히려 위험한 것. 단, 즐거움을 놓치지 말 것.
ㅡ네 작업 중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향해 가라. 그게 너다.
ㅡ비행기 탈 때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는데, 이유는 공항에서 무료하게 기다리기 때문. 심심함은 아이디어의 원천.
ㅡ숙련을 경계하라. 익숙한 것 속에는 어떤 창의적인 것도 없기 때문에.
ㅡ'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가 당신의 열정이 불타오를 수 있는 일이라는 신호.
ㅡ결국 끈기.
ㅡ행복에 대해 말하는 창작물을 만들고 싶다면 자신이 행복했던 느낌에서 시작해야한다. 자기 자신을 벗어난 창작물은 없다.
3. 이야기의 뿌리, 그림책
한류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제법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드, 영드, 중드 등 각지의 드라마와 영화들이 인기를 얻는다. 문화도 관습도 말도 다른 타 국가의 이야기들이 이렇게 소통되는 건, 이야기라는 장르 안에 어떤 공통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신화와도 같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수만년에 걸쳐 박힌 이야기의 원형들 말이다. 부모님에게 효도한 자식이 복을 받고, 죽음과 질병이라는 재앙과 싸우거나 받아들이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과거를 들여다보고 미래를 준비할 기회를 얻는다. <유럽...>을 보며 나는 이야기의 원형이 바로 그림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살 아이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고 여든 살 노인이 봐도 감동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자라니, 이건 흡사 신과 같은 존재 아닌가. 그러니 <유럽...> 을 통해 엿본 이야기의 뿌리 속에서 내 작업의 힌트를 얻은 건,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성실한 자료조사로 인터뷰를 준비한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