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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이 끝나고 남은 것

by 휘피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지 한 달 정도가 지났습니다. 산티아고에 도착한 뒤 이탈리아를 일주일 관광하고 한국에 왔어요. 한국에 온 뒤엔 운동하고, 자료조사하고, 공부하며 수험생처럼 살고 있습니다. 이번 순례길에서 생긴 가장 큰 결심은 술을 끊기로 한 것인데 지금까지 잘 지키고 있고요. 한국에 온 직후에 집에 있던 술을 친구들에게 모두 나눠주었습니다. 얼마나 개운했는지 몰라요.


20241106_193503.jpg 술 끊을만 하죠?


순례길을 마치고 한국에 오면서 가장 걱정했던 건 베드버그였습니다. 숙소에서 베드버그를 한 번 목격했고 그 뒤에도 깔끔하지 않은 숙소를 몇 번 썼기 때문에, 베드버그를 서울에 있는 집으로 끌고올까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옷은 자주 빨고 건조기에 돌렸지만 배낭은 그렇게 하지 못해서 집에 오자마자 헤어드라이어로 구석 구석 가열해 주었습니다. 현재까지 큰 문제가 없는 걸 보니 다행히 베드버그를 끌고 오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 순례길 중에 베드버그에 물린 분이 있다면 건조기와 드라이어를 활용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이번 순례길에서 저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발이었습니다. 아킬레스건염, 족저근막염을 양발에 단 채로 걷기 시작했는데 걷는 도중 염증이 나아지는 재밌는 경험을 했습니다. 매일 쿨링 젤로 마사지를 해준 게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고 술을 마시지 않은 것도 한 몫 했을 겁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엔 순례길에서 얻은 '걷는 감각'을 잃지 않고자 매일 한 시간 정도를 걷습니다. 보통 노트북을 가방에 넣은 채로 걷는데 순례길에서의 걸음보다 얼마나 가벼운지 모릅니다. 순례길을 가기 전엔 노트북 들고 걷는 게 그렇게 힘들었는데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봅니다.


한강 공원에서


주로 남산, 한강공원 등을 걷는데 새삼 한국도 참 걷기 좋은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다음 번에 걷는다면 서울 둘레길을 걷거나 제주 올레길을 한 번 더 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올레길은 또 걸으면 세 번째인데 요즘 제주도에 관광객이 적어서 상인분들이 힘들다고 하니 괜히 한 번 더 가야되나 싶기도 합니다. 이번 순례길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가 일본에도 순례길이 있다고 추천을 해주었는데 언젠가 그 길을 걸을지도요. 어떤 식으로든, 어딜 걷든 걷는 것과 가까이 있으려 합니다.


술을 끊은지 이제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정리하며 후기의 후기-를 마칠까합니다. 우선 체중이 4kg 빠졌습니다. 저녁 7시 이후 아무 것도 먹지 않다보니 역류성 식도염이 크게 호전되었습니다. 아침에 숙취로 일어나는 일이 없으니 오전 시간을 좀 더 활용하게 된 것도 달라진 점입니다. 한 달 동안 술자리가 세 번 있었는데 저는 물을 마셨습니다. 제가 취하건 안 취하건 분위기엔 별 영향이 없었습니다 ㅋㅋ. 아마도 여러 사람이 마시는 자리라 그랬던 거 같고 멤버가 2~3인 정도로 적으면 조금 어색할 수도 있을 거 같긴 합니다. 그래서 단 둘이 만날 자리는 식사 후 산책하는 걸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다들 더 좋아하더군요. 술을 끊은 뒤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된 건 확실하고, 이 변화를 잘 유지해보려 합니다. 이 글을 보는 분들 중에도 술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실텐데 조금이나마 줄여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생활이 달라져요!

그럼 다들 건강하시기를, 즐거우시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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