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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재건축 - 베테랑2 (1)

by 휘피디

*아쉬웠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다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쉬웠던 점 :

베테랑2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과 싸우는 이야기인가’라는 지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극 중 서도철은 범인을 쫓기도 바쁜데 아들의 학폭 문제로 끊임없이 아내의 전화를 받습니다. 산만하게 전달된 서도철의 감정선은 보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산만하게 전달됩니다. 아들 학폭 해결하는 얘기야? 연쇄 살인범 잡는 얘기야? 이 질문은 영화의 끝에 가서 통합을 시도하지만 그 통합이 매끄럽지 않고 담고 있는 철학도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적 제재를 허용하지 않아서 학폭이 늘어났다는 이야기인가? 학폭을 가만 놔두면 사적 제재처럼 커진다는 얘기인가? 내 아들이 폭행을 당했을 때 사적 제재를 참고 법의 힘만을 믿을 수 있는지 묻는 얘기인가? 나의 폭력성 때문에 아들이 그것을 대물림 당한다는 이야기인가? 영화를 끝까지 봐도 답은 모호합니다. 결국 ‘사적 제재로 인한 연쇄 살인’과 ‘학교 폭력’이라는 두 개의 소재는 매칭이 잘 되지 않았고 영화를 산만하게 만드는 요소로 남았습니다.

이는 빌런의 캐릭터에서도 드러납니다. 박선우라는 인물이 어떤 과거가 있는지 보여줄 필요는 없지만 어떤 것을 지향하고 어떤 능력이 있으며 어떤 매력이 있는 인물인지는 보여줘야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이것을 모두 삭제해버렸습니다. 극을 이끌어가야 할 악역을 단순히 ‘싸움 잘 하는 사이코패스’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호해지고 극의 매력 또한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적 제재 같은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왔다면 빌런이 자기만의 개똥 철학이라도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이러한 사람은 죽인다.” 자기만의 원칙을 만들고 지키는 빌런이었으면 보면서 저건 틀렸다거나 옳다거나 판단이라도 할 수 있을텐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판단을 최대한 피해갑니다.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악인들을 향한, 제법 그럴듯한 사적 제재’를 자극적으로 보여주면서도 범인으로부터 그럴만한 내적 근거를 최대한 감추려 한다는 지점에서 저는 이 영화의 태도를 의심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 영화 자체가 관객의 감정은 끌어올리되 아무런 질문과 성찰도 던지지 않는 사이버렉카와 같은 작전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처럼 모호하게 정해진 빌런의 캐릭터성은 영화 감상 내내 발목을 잡습니다. 박선우는 증거를 남기지 않고 수차례 연쇄 살인에 성공했으니 꽤나 머리가 좋은 악인일 것 같지만, 극 중 보여주는 행동들은 그렇게 똑똑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대신해 감옥에 가거나 죽음에 이를 ‘가짜 해치’를 어렵게 만들어놓고 바로 그날 또 다른 사람을 죽이려 하는 이유가 뭘까요? 가짜 해치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해주는 꼴밖에 안 되는데 말입니다. 서도철의 아들을 납치한 뒤 아들에게 불을 지르게 하려는 행위 역시 어색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보는 고등학생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고 공범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들 중 누군가가 겁나서 자수라도 하면 어쩌려고? 혹은, 서도철이 정말 한 패가 된다면 아들이 살아남을 텐데 그 아들이 경찰에 신고할 가능성은? 이처럼 박선우는 많은 허점을 남겼고 매력 있는 빌런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외에도 아쉬운 점들이 있습니다. 90년대 개그를 하는 오프닝 시퀀스, 박선우가 광수대에 들어가게 된 과정이 다 우연으로 점철된 점, 시체를 주차장에 가져다 놨는데 광수대 형사들이 주차된 차들 CCTV 한 번 돌려보지 않는 어설픈 수사, 허벅지로 목 조른 흔적 하나 보고 박선우를 범인으로 특정하는 급 전개, 동료 형사들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나타나 위기를 해결해주는 점... 등등. 그리고 위에 언급한 많은 이슈들이 대부분 시나리오 자체에서 비롯된 만큼, 프리 프러덕션 단계에서 체크가 됐을 텐데 그대로 진행된 것에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러면 이 이야기를 어떻게 고치면 더 나았을까? 를 생각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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