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80퍼센트는 기나긴 터널이었다
사실 이 글을 발행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참 오랫동안 묵혀왔었고, 정신과 상담을 하는 진료실 안에서, 그리고 내가 몇 년 동안 묵었었던 가정폭력 쉼터 안에서만 나의 이야기들을 실컷 풀어놓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작가가 되어 나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들을 풀어내어보려고 한다.
그렇다. 나는 가정 폭력 생존자다.
나는 나의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에 친부에 의해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억압당했다. 나의 친부는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다. 가족 구성원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친부는 지금도 여전히 정신과 진료를 거부하고 있다. 그 탓에 가정 내 모든 구성원들이 정신과를 다닌다.
더불어 나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7년 넘게 앓고 있다.
아마 기나긴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한 나의 정신이 먼저 백기를 흔들어버린 걸 게다.
나의 의식이 기억하는 한 나는 의대를 가고 싶어했다. 아니 나는 의대를 가고 싶어해야만 했다. 친부의 못 다 이룬 꿈들 중 하나인 의대는 이 집의 첫째였던 나의 첫 번째 퀘스트가 되었다. 의대를 가지 않겠다고 하면 집에서 쫓겨날 것 같았다. 의대에 지망했던 사실은 결국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었다는 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친부는 본인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반박을 여전히 듣는다. 하지만 가정 폭력에 시달렸던 사람은 알 것이다. 나의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에 나의 의사는 전혀 필요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분위기로 체감하고 만다.
가정 폭력을 견디다 지쳐버린 19살의 나에게 찾아온 공황장애와 우울증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의대 지망생’이라는 방패를 무기로 삼았다. 그렇게 나는 수능을 4번이나 볼 수 밖에 없었다. 정신과 진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 친부로 인해 나의 상태는 점차 악화되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책과 강연 등을 읽고 들으며 자살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렸을 때의 아동학대의 기억은 9살 때다.
주변 친지들에 따르면 아마 내가 알게 모르게 겪고 있던 스트레스로 나는 내 눈썹을 뽑는 행동을 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나는 그 날의 기억을 씁쓸하게 웃으며 기억한다.
당시에 살던 집의 안방에서 눈썹을 뽑고 있던 나의 앞에 다가온 친부는 ”이것 봐요!“ 하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나의 머리채를 잡아 안방 장롱 쪽으로 집어던졌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에게 이런 말을 던지며 친부는 안방을 나가버렸다.
“이 년이 부모 죽이려고...”
성인이 된 내가 그 때를 물으며 추궁하던 때에 친부는 관상학적으로 눈썹은 부모를 뜻하는 것이라는 둥 해괴한 말을 해대며 얼버무렸다.
그리고 항상 본인의 말을 듣지 않으면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때로는 탁상시계를 집어들어 내 머리를 내리찍으려 하면서 그만 징징대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 이후에도 항상 집안을 살얼음판을 만들었다. 본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위협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등 신체적 폭력이 계속 되었다.
그리고 어린 나에게 “창년”, “개년”, “썅년”, “바닥에서 굴러먹다 들어온 년” 등 언어적 폭력을 일삼았다.
나는 이 집안에서의 탈출을 꿈꾸며 언제나 나의 감정과 욕구를 꾹꾹 눌러 참고 공부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살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시야가 좁았구나 하는 회한이 든다. 그냥 집을 나가도 되었을 텐데. 그랬다면 내 인생의 80퍼센트가 터널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회한 말이다.
19살 때의 나는 의대를 지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성적이었다. 아무리 공부해도 오르지 않던 성적은 나의 맹목적인 의대에 대한 지향에도 불구하고 나를 항상 힘들게 하는 것 중에 하나였다.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모의고사였던 10월 모의고사 성적이 나오고 나서 친부는 나에게 충격 요법이라는 또 다른 해괴한 변명과 함께 나를 한순간에 무너지게 만들었다.
"너는 여태까지 뭐했니?"
19년 동안의 나의 인생은 그 한 마디로 순식간에 무너졌고, 그 이후부터 나는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했고, 글을 읽지 못하게 되었다. 후에 5년이 지난 24살이 되어서야 책을 읽는 것이 무서워지지 않았을 정도로 그 때 당시 내가 받았던 충격은 엄청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은 지금도 긴 글은 읽기 전에 겁부터 난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공부를 하고 글을 읽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지게 되었지만, 심리적인 요인 때문일까, 긴 글을 읽기 전에는 한숨부터 나온다.
나는 가정 폭력 생존자이다.
가정폭력에서 생존하게 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들도 후에 글로 풀어내보고 싶다.
이로써 나의 숙원 사업이었던 나의 가정 폭력 피해 사실에 대해서 쓴 글을 발행하는 것이 끝이 나서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