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니 나에게 꼭 필요했던 이별
참 좋은 주제다. 이별이라는 것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참 슬픈 것이 이별이지만, 그 이면을 잘 들여다보면 나를 참 많이 성장하게도 하는 것이 이별이다.
나에게 꼭 필요했던 이별은 나의 첫 사랑과의 이별이다.
첫 사랑과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그 고루한 공식은 나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나의 첫 애인은 나와 나이 차이가 참 많이 났다. 하지만 나는 어리석게도 그와 나의 정신적인 연령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그 나이대의 사람들을 내가 보게 되는 시선이 연애 상대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그저 세상에 늦게 태어난 인생의 후배 정도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 그도 나와의 나이 차이를 실감하는 때가 꽤 자주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도 좋아했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그도 싫어했다. 하지만 그 나이차이가 그와 나의 차이를 가장 크게 불러왔던 것 같다.
점점 그가 바빠지자 나에게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왜 더 이상 당신에게 '우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냐고 재차 물었고, 그는 대답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파국으로 치달았던 우리의 관계는 끝내 막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이 세상 어느 이별이 깔끔하다고 하던가. 나의 이별은 처음 겪는만큼 구질구질하고 더러웠다.
모 프로그램에서 이옥섭 감독이 "결핍과 결핍이 만나면 절대 떨어질 일이 없어요. 그걸 너무 충족하기 때문에. 더럽고 징그러워요. 근데 그게 사랑인 것 같아요." 라는 말을 나는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나에게도 존재하는 결핍은 - 그 사람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 이별을 참 힘들게 했다.
하지만 그 힘든 이별에도 끝은 있었다. 끝끝내 연락이 끊기고 서로 메신저를 차단하고 번호까지 차단한 뒤에야 우리는 너와 내가 되었다.
이별의 후유증은 참으로 길었다. 그 사람과 관련된 일에 마음이 일렁이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은 그 사람과 헤어진지 2년이나 지난 후였으니까.
나는 그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계발에 매달렸다. 자격증을 땄고, 공부를 했고, 돈을 벌었고, 일을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자격증을 얻게 되었고, 돈을 모으게 되었고, 이력서에 쓸 몇 줄이 늘어났고, 그 덕분에 또 다른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었고, 다른 공부를 시작하는 데 부담이 생기지 않았다.
나의 이별은 표면적인 것들 뿐만이 아니라 내면적인 성장을 참으로 많이 가져왔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등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서 끊임없는 사유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 나를 타자화하고 객관화하는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벌써 참 많은 주제의 글감을 얻게 된 것 같아 기쁘다. 나의 마음을 둘러보고 싶을 때 와서 내가 썼던 글을 읽어보고 후속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