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것으로부터의 도피, 여행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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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 중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에선 작가의 성향, '호텔을 좋아한다.'에 주목하게 된다. 그는 왜 호텔을 좋아할까.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말한다. 그 집에 살았던 가족의 기억들이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덧붙인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리 애스터 감독의 공포영화, 유전에서 내비치는 공포의 근본 원인은 가족에 대한 무지다. 서로를 이해 못하는 모자, 그 속에서 무심히 죽어간 딸, 늘 방관하는 아버지는 집 안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일 앞에 무력한 존재가 된다. 가족이 힘을 합쳐서 악을 무찔러도 모자랄 판에 서로를 탓하다 무너지고, 불타고 목이 날아간다.
작가는 그런 기억이 있을지 모를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된, 호텔의 순백색 시트를 좋아한다. 하루아침이면 말끔히 청소되는 삭제의 공간에서 안정감과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여행은 왜 떠나는가?라는 물음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왜 떠나고 싶어 하는가?"
나 또한 작가의 말처럼 그에 대한 답을 간단히 내놓을 수 있었다.
"포근함이 좋아서요."
아무리 허름한, 천장 등이 없는 여인숙 수준의 모텔에 들어가더라도 창문을 꼭 닫고, 에어컨 바람에 머리만 내놓은 채 순백색 이불을 덮고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 그곳에는 내 머릿속을 헤집는 아이도 없고 무심결에 상처를 주는 사람의 말, 내가 아무렇지 않게 떠들어 상처 입힌 사람의 상처까지 없기 때문이다. 바깥소리가 시끄러우면 창문을 닫거나 티브이 소리를 키우면 그만이다. 우리는 상처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상처의 기억을 닦아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셈이다.
만화 '바텐더'에서 매일 자신이 싫어하는 일 두 가지를 하는 것은 영혼에는 좋다고 말한 것처럼 여행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도피다. 일상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는 없다. 일상의 부조리와 갈등이 선사하는 내면의 고뇌가 나를 강하게 만든다.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말이 생각난다. 시트가 선사하는 포근함은 기억하되 일상에 충실할 것, 여행을 다녀온 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은 내가 가져야 할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