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일 글쓰기 2주 5일 차

나부터 내 편이 되자

by 휘휘
이뤄지지 않는 일들만 기도가 된다는 걸
나는 말해주지 못했고
다만 미지근한 물 한 병을 건네주고 싶었다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유월 서울 프리즘

19명의 시인이 참여한 한 권의 독립출판 시집,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을 읽었다. 구매 계기는 우연적이었다.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열린 전시회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 날은 대학로에서 독립 출판 문학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메이저 신문사에 기고한 작품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는 고전적 작가의 길에 회의가 들던 참이었다. 요즘의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가에 대한 관심이 극에 달하기도 해서 얼른 사전 예매를 했다.


전시회 겸 홍보전은 대학로 인근 건물 지하에서 진행 중이었다. 고스, 오컬트 풍의 일러스트를 그리는 미술 전공자가 삽화를 맡아 공포 소설을 만드는 출판사도 있었다. 요즘 들어 부상 중인 페미니즘, 퀴어 문학 중 동화 분야에 진출한 작가들이 보여 흥미롭기도 했다.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담뱃갑만 한 사이즈의 시집, 주머니시도 있어 판매자 분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면식 없는 상태에서 이목을 끈 출판 서적은 다름 아닌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이었다.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존재가 있긴 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터라 샘플을 꺼내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시집의 제목이 무색하게 화자는 대부분 해를 끼치지 못하는 존재를 조명한다. 아무 해를 끼치지 못하는 미물에 대해 말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우울한 감성이 담겨있다. 기도를 하는 광화문 광장의 시위꾼들이 기도하는 이유는 기도가 먹히지 않는 데에 있다는 식의 멜랑꼴리가 퍽 와 닿았다. 죽음의 충동을 누르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죽이자 맘먹고 방아쇠를 당기지만, 시늉만 하기에 다행이라 말하는 우울함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밖으로 표출되지 않음에, 표상적인 사고를 치지 않았음에 해를 끼치지 않았다 말한다. 화자는 이미 화자 자신에 해를 입힌 격인데 말이다. 지나친 자기 파괴적 자아 형성은 나 자신을 죽이고 만다.


오늘 아침,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에게'란 책을 소개하는 포스트를 봤다. 자신의 실수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 본인을 갉아먹는 일이 된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지 말라는 거다. 나 자신이 내 편이 되어 나를 사랑하자는 생각으로 살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108일 글쓰기 2주 4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