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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Dec 02. 2020

///매출액.빠르기.오리

시간을 부수던 파도

의외였다.

같이 여행을 가자는 그 친구의 연락은 진짜 '나와 함께 여행을 가자'는 뜻인지 헷갈렸다.

우리가 흘러가듯 하는 그렇고 그런 말들처럼 

그의 인사나 혹은 본인의 휴가 계획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은 흘렀고, 역시나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것은 흘러가는 말인 듯했다.

하지만 처음 말한 여행일로부터 정확하게 일주일 전에 다시 연락이 왔다.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까지 결정하겠노라고 했다.

직장에서 가깝게 지낸 사이라고는 하나, 사적으로 따로 만난 적은 없었고

게다가 나의 퇴사로 인해 이젠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2박 3일의 여행을 떠나자는 그 친구의 말이 당황스러웠던 건

나이는 나보다 '꽤' 어린 그 친구가 

나와의 여행에서 불편함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서로의 관심사를, 여행 스타일을, 하물며 좋아하는 음식도 잘 모르는데 떠날 수 있을까..

내 경험에 의하면,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그런 것들이 매우 중요했다.

친한 사이라도 막상 여행을 떠나면 그런 것들에 대한 마음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들 때문에 불편해지는 경험... 

나의 결론은 이랬다.

함께 여행을 떠나되, 1박 2일로 2,3일 차를 함께 보내는 것.

그 친구에게 혼자 여행할 수 있는 시간도 주고, 

혹시나 나와의 여행이 즐겁지 않더라도 1박 2일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 친구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몰라도, 

그의 여행 제안은 나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아니 정확하게는 거절하기 싫은 손내밈이었다.

겨울의 문턱을 막 넘어선 그 바다는 너무 맑았다.

푸른 하늘이 시린 건지, 바닷바람이 시린 건지 아리송했다.  

우리가 흘려보내는 그렇고 그런 말들의 강이 아니라,

그 친구의 여행 제안처럼 다시 돌아와 철썩철썩 두드리는 바다였다.

결국, 바다는 진심이었다.

바다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강이라 생각한 것은 오로지 내 마음이었다.

우리의 여행 코드는 잘 맞았다.

나의 선택에 그 친구는 맞장구를 쳤고, 그의 새로운 일정이 나는 좋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는 휴대폰으로 지도를 켜서 길안내를 했다.

지도를 보며 길을 찾는 와중에도, 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때로는 말없이 각자의 휴대폰을 보면서 각자의 SNS에 사진을 올렸고

그 친구가 올린 사진을 보고 있으니 마치 하나의 장면을 여러 카메라가 찍는 드라마처럼

이 여행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재미있었다.

회사 이야기, 회사 사람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한 판씩 깨부수며 전진하는 게임처럼 점점 개인적인 얘기를 하게 되었다.

지나간 연애라던가, 현재의 재정 상태라던가, 앞으로의 계획이라던가.

함께 일한 지난 몇 개월보다 그 친구를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고, 심지어 각자 한쪽 팔이 쇠사슬로 묶인 방에서 힘을 합쳐 탈출도 했다.

또한 그가 둘이 걸을 때 항상 왼쪽에 서길 좋아한다는 것과 그만의 사진 보정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바다를 보는 법을 알게 되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 바다가, 이 파도가 시간을 빠르게 부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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